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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May 01. 2024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던지게 될 질문?

존 윌리엄스 <스토너>

흔히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을 가리켜, '인생이 드라마틱하다. 소설 속 주인공 같다'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드라마나 소설 속 인물에게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특별함'이다. 현실이 비루할수록 소설 속에서만큼은 주인공이 고난을 통해 각성하고 변화하는 서사를 보고 싶어 한다. 그래야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의 주인공은 그런 기대를 저버린다. 스토너의 인생은 익히 봐 온 당당한 주인공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불행에 저항하거나 결단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감내할 뿐이다. 그 모든 것을 숙명처럼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보고 있자면 답답하고 안타깝다.  어느 순간도 그의 인생은 빛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는 1965년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50년이 지난 2006년부터 유럽을 시작으로 역주행 바람이 불기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 돌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성공지상주의로 정신없이 달려가던 60~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도무지 먹히지 않았을 캐릭터가 바로 소설 속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주인공을 가리켜 '진짜 영웅'이라 생각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독자에 따라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일수록 작가의 견해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사람들은 스토너를 슬프고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소설 <스토너>는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며 전개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미주리 대학으로 유학 왔으나 부모의 기대가 달리 농과 전공 수업을 듣는 대신 영문학에 매력을 느껴 문학도의 길을 걷게 된다. 어쩌면 스토너 인생에서 자유의지로 관철시킨 첫 도전이었을 것이다.  첫눈에 반한 부유한 가정의 여성 이디스에게 청혼하고 결혼하는 것 까지도 일견 용기 있는 젊은이로 보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적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이디스와 스토너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p.105)


스토너는 소통이 없는 부부관계에 체념하고, 딸에게 애정을 듬뿍 쏟았으나 아내의 방해로 딸과도 멀어지고, 동료 교수의 괴롭힘으로 교수로서의 명성이나 인정도 받지 못하게 된다. 뒤늦게 찾아온 진짜 사랑도 지키기 못한다.  답답한 상황에 대해 거부하고 결단하는 대신 그저 체념하고 수용한다. 그의 인생을 보고 있노라면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런 스토너도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관철시켰던 것이 있었다. 교육자로서의 소신과 문학에 대한 열정이었다. 가르치는 일과 연구하는 일, 두 가지만큼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방식대로 지키고자 했다. 그로 인해 동료 교수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한직으로 밀려나기도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았던 마지막 보루같은 것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놓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여러 말들이 난무한다. 타인의 인생을 이런저런 잣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 평가와 시선에 길들여지다 보면 어느새 내 인생을 내 기준으로 살지 못하게 된다. 남들의 시선에 맞춰 사느라 나를 잃어버린다.  스토너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다는 측면에서 소신을 지킨 셈이다. 그의 인생에 대해 우리가 불행했다, 행복했다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암투병 끝에 죽음을 앞둔 스토너가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세 번이나 던지는, "인생에서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질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눈물이 핑 돈다. 커다란 성취도, 단란한 가족도, 불같은 사랑도 쟁취하지 못했지만, 그는 나름 소신을 지키며 살았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조용히 돌아보는 자신의 인생은 그래서 실패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통틀어 지키고자 하는 그 무엇이 단 하나라도 확실하게 있었던 인생이 어디 흔하던가.  "인생에서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 질문은 어쩌면 작가가 스토너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묻는 질문처럼 들린다.  모두가 성공하기 위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가지만,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인생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얻었는지. 책장을 덮기 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인생은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 끝까지 소신을 지키고자 했던 분야에서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우직한 모습이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스토너가 스토너로 살았다면 나는 나로 어떻게 살 것인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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