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고골 <외투>
몇 년 전 회사일로 유럽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일주일간 머물렀던 소도시에는 이탈리아 유명 의류 브랜드의 본사가 있었다. 때마침 겨울 세일기간이자 본사 특별 행사 주간이었던 터라 그 브랜드의 겨울 모직코트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국내 백화점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파격적 가격이었다. 명성에 걸맞게 그 모직 롱 코트는 가벼우면서도 따뜻했다. 물론 기분 탓이었겠지만, 그 코트를 입으면 은근한 품격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마음에 드는 모직 코트 한 벌로 출장의 피로가 한순간에 사그라졌던 기억이 난다. 안 그런 척했지만 나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치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속물근성이 있음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 이처럼 옷차림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주눅 들게도 하면서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날씨가 추워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 겨울 외투를 꺼내 입기 시작하면 '외투'와 연관된 고전 소설 한 편이 떠오른다.
푸시킨과 함께 러시아 근대문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손꼽히는 '니콜라이 고골'이 1842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 <외투>이다. 짧은 단편 소설 하나가 18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히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프'가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쌩페테르스부르크에서 겨울 외투와 관련해서 겪은 일이 비단 19세기 러시아 사회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21세기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계속되는 소시민의 애환과 비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검약하게 살았고, 자신의 외투가 떨어질 때마다 수선해서 입었던 말단 하급 관리 아까끼는 이제는 외투가 너무 낡아서 더 이상 '수선 불가'라는 이야기를 재봉사에게 들은 뒤 중대 결심을 한다. 몇 달 치 월급과 상여금을 다 끌어 모아 새 외투를 장만하기로 한 것이다. 어렵게 큰마음을 먹기까지의 과정, 새 외투가 만들어지는 동안 무료했던 그의 삶에 생기가 도는 모습, 그리고 외투가 완성되면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의 들뜬 모습은 사실 아까끼 만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우리네 소시민의 모습과 그대로 닮아있다.
'외투'는 상징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로 장만한 '마이카'일 수도 있고, 영끌해서 마련한 '내 집'일 수도 있으며, 내 자식의 번듯한 '성공'일 수도 있고, 나의 '학위'일 수도 있겠다. 이전의 비루했던 자신을 보다 근사하게 해 줄 만한 외적인 장치들일 수 있다. 아까끼가 마침내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한 첫날 평상시에 그를 무시하고 투명인간 취급했던 동료들이 그의 새 외투를 칭찬하고 추켜세우는 모습은 사람을 겉으로 보이는 외형으로 판단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새 외투 덕분에 우쭐해진 아까끼는 동료가 주최하는 그날 저녁 파티 초대에도 응한다. 평소의 아까끼라면 가지 않았을 파티였지만, 그는 외투의 힘을 빌려 용기를 낸다. 하지만 파티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광장에서 강도를 만나 새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외투를 다시 찾기 위해 아까끼는 백방으로 알아보고 고위 관리들을 찾아가지만 차갑게 질타만 받고 돌아온 뒤 병으로 앓아누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후 쌩페테르스부르크에는 밤마다 외투를 빼앗으려는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아까끼의 새 외투와 같은 저마다의 '우상'을 안고 산다. 외투를 장만하고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해하다가도 한순간 외투를 잃고 삶이 휘청거릴 정도로 절망한다. '외투'에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내면과 내공 있는 삶을 원하지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나 홀로 마음을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고작 '외투' 하나 잃어버렸다고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마감하는 아까끼가 일견 한심해 보이지만 실은 그 누구도 '나는 다르다'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의외로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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