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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Apr 17. 2024

'천복'을 따르는 삶의 기쁨과 고통?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천복을 따르라" Follow your bliss!  이 말을 나는 15년 전쯤에 인문학 공부 모임에서 처음 들었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을 함께 읽으면서였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길,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미 있는 길, 자신만의 진짜 꿈을 좇아가는 삶을 '천복을 따른다'라고 캠벨은 표현하고 있었다. 근사해 보였다. 하지만 '참 쉽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임을 이끌어가던 연구원들은 '인디펜던트 워커'이자, 스스로를 '창조적 부적응자'로 명명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애쓰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감탄했다. 또 한편으로는 '무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도전이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과 '진짜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자신의 '천복'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천둥처럼, 사자처럼 망설임 없이 그 길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적성과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치열하게 고민할 시간적 여유도, 의지도 없이 그저 등 떠밀리듯 살아간다. 남들이 이미 가본 길,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을 나의 길이라 여기며 따라가다가 한 순간 회의에 빠진다. "어라, 이 길이 아닌가 봐" 때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길인 '천복'을 발견한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진심으로 산을 좋아하는 등반가는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높은 산에 오른다. 달리기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마라토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달린다. 항해가 좋아 배를 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육지에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붓을 들게 되어 있다. 비행기 조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을 나는 것이 그에게 천복을 따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천복을 발견해 그 길을 따르는 삶이 항상 꽃길과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천복을 따르느라 감수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 보인다.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 하기에 오히려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기도 한다.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가 쓴 <야간비행>의 주인공을 봐도 알 수 있다. 비행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작가 생텍쥐페리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야간비행>에서 우편기를 조종하는 비행사 '파비앵'은 비행기 사고로 결혼 6주밖에 채 안 된 아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실종처리된다. 그가 비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조종칸을 잡고 내려다보는 풍경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작품을 읽다 보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이 있었던 파비앵은 비행사가 아니었다면 결코 겪지 않았을 사고를 겪는다. 악천후를 만나 무선마저 끊기고 기항지를 찾지 못해 헤매던 그의 비행기는 점차 연료가 떨어져 갔다. 파비앵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결국 별빛에 의지해 구름 위쪽으로 비행기의 방향을 튼다.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마주한 구름 위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라고 감탄하며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하늘'과 '별'과 '비행'을 사랑했던 작가 생텍쥐페리는 『야간 비행』 속 조종사 파비앵의 마지막 순간처럼 1944년 정찰 비행을 나갔다가 실종되었다. '천복'을 따라 사는 삶은 기쁨과 함께 고통 또한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행복했을까?


파비앵도, 생텍쥐페리도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헌신하고, 용기 내어 도전한 삶이었기에 어쩌면 후회는 없었을지 모른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서 혹은 고전작품 속에서 타인의 삶과 죽음을 목도할수록 지나온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더불어 남아있는 나날을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인생의 크나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천복'을 따라 살았는가?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집 나간 '천복'이를 찾느라 어영부영하는 사이 세월만 속절없이 갔다.


#생텍쥐페리야간비행 #고전읽기의쓸모 #나는왜고전이좋았을까 #천복 #조셉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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