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3화
심리 상담의 여러 가지 이론 중에 '인간 중심 상담'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가 주창한 상담기법이다. 프로이트 식의 '정신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에서 벗어나 인간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내용의 상담기법이다. 칼 로저스가 주장한 인간 중심 상담 이론의 핵심은 크게 '진실성(일치성)',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다른 사람을 상담하려는 사람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거짓된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면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상담자는 내담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던지 '무조건적인 경청과 수용'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간혹 상담자 중에는 내담자보다 더 많이 안다고 해서 그가 하는 말을 자르거나 그의 성격과 상황을 속단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럴 경우 억눌리고 상처받은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릴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상담자는 내담자의 상황, 내담자의 심리상태, 내담자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고 그 공감을 토대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공감'이란 상대방의 마음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때 그곳에 당신이 아니라 내가 있었다면', '내가 이 사람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하고 상상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 보는 것이다.
결국,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것이지 분석의 대상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 '인간 중심 상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 중심의 상담'에도 한계가 있다. 내담자를 대하는 상담가 또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간 중심 상담이 내세우는 3가지 기법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방법 일까도 의문이다. 인간이 가족도 아닌 타인에게 완벽하게 진실할 수 있을까? 인간이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내면의 불평 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존중할 수 있을까? 생면부지의 사람이 겪은 고난과 역경을 완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게 가능은 한 걸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자신을 투영하면서 이기적인 마음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맞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이런 인간이 상대방을 100% 이해하고 공감하고 진실되게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간혹 우리는 위로받고 싶어 찾은 사람에게서 오히려 불쾌감과 상실감, 자존감의 상실을 경험하곤 한다.
이쯤에서 나는 새로운 이론을 하나 주창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강아지 중심 상담'이다. 핵심은 우리의 반려견이 그러한 것처럼 '강아지의 시점과 방식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것이다.
우리가 힘들 때 강아지는 왜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곁에 와서 우리의 기분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가슴이 답답하세요?", "지금 가장 힘든 게 뭐세요?" 등등… 강아지는 엄청난 후각 기능으로 우리가 받은 스트레스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얼마나 심한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 더불어 그들이 가진 위대한 청력은 우리가 내는 소리의 작은 진동마저도 놓치지 않는다. 미세한 떨림 만으로도 우리가 어떤 기분일지 아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이해한 강아지는 이제 조용히 옆에 있어 준다. 물론 이때도 “힘드시죠?”, “괜찮을 거예요?”라는 상투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맑은 눈동자를 어른 거라며 쳐다볼 뿐이다. 그 눈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게 된다. '진실함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강아지가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그 순간보다 더 진실한 순간이 있을까? 강아지와 내가 교감하는 순간만큼 참된 시간이 있을까? 온전히 내가 진실해질 수 있는 순간은 '인간 상담사' 앞이 아니라 내 옆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 내 강아지 옆뿐일 것이다.
이제 강아지는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을 연 내게 자신의 등을 보여주고 엉덩이를 내밀어 준다. 마음껏 만지라고... 그렇게 강아지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긴장된 마음과 뭉쳤던 근육에 이완이 찾아온다. 그렇게 우리에게 안정이 찾아오면 이제 우리 댕댕이들은 '벌러덩' 드러눕는다.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을 느끼라고 앞발까지 활짝 펴면서 말이다.
누구보다 낮은 자세로 위안을 주는 이 피조물 앞에서 누가 경계하고 누가 위축되고 누가 두려움을 느낄 것인가? 그렇게 부드러운 촉감의 배를 쓰다듬다 보면 모든 억눌린 감정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속삭인다. "아~좋다", "아~편안하다"
자,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강아지들처럼 다가가 보기를 추천한다. 말보다 눈빛, 눈빛보다 체온, 체온보다 존재 자체를 전달해 보자. 그저 그 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차갑게 다가왔던 그 사람이 어느새 따뜻한 얼굴로 당신 앞에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