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2화
(*오프리쉬는 Off(∼로부터 떨어진)와 Leash(줄)의 합성어로, 반려견이 목줄을 착용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카페로 출근하면 차를 대놓고 또복이를 산책시킨다. '보기도기 카페 앤 스토어'가 있는 제주시 주르레 마을은 도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고로 강아지 산책시키기에는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특히 매장에서 한라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지금은 운영되지 않고 있는 어린이집이 있는데 그 주변 일대가 너른 공터여서 또복이와 자주 산책을 가곤 한다.
오늘도 루틴에 따라 또복이와 함께 공터로 향했다. 상쾌한 아침 공기와 녹음이 짙은 풀과 나무들이 한적한 이 마을을 더없이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복이는 언제나처럼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다양한 냄새에 분주한 상태다. 애초에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하고 이른 아침 시간이기도 하여 나는 약간의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너무나 즐거워하는 또복이의 목줄을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사실 또복이는 100% '콜링'이 되는 강아지는 아니다. 어떤 날은 부르면 잘 오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흥분해서 나의 부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볼일을 본다. 오늘도 크게 자신은 없었지만 조용한 아침이고 주변에 고양이나 다른 동물도 없는 것 같아 긴가민가 하면서 목줄을 풀어주었다.
줄을 풀어주자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는 표정으로 또복이가 나를 한번 흘금 쳐다본다. 1초 정도 흘렀을까 또복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냄새를 쫓아 이리저리 킁킁거리며 신나게 공터를 휘젓고 다닌다. 처음에는 내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더니 조금씩 그 거리를 넓히기 시작했다.
앗! 그때였다.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또복이가 뛴다. 그것도 아주 빨리~ 당연하게도 네 발 달린 동물을 두발 달린 동물이 쫓아가 붙잡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막다른 골목이 아닌 바에야 잡을 길이 없다. 오늘 또복이가 그랬다. 그야말로 너른 평야를 달리는 야생마처럼 드넓은 공터를 쉼 없이 달렸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또복이는 잡풀들이 무성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 인근의 신축공사장 쪽으로 내달리는 게 아닌가.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또복이, 이리 와~”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것일까?' 그래서 다시 불렀다.
"컴온! 컴온! 베이비~!"
계속 불렀지만 또복이는 놀리듯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내달리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이럴 때는 쫓아가지 말고 뒤돌아 서 무시하면 강아지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그대로 한 번 해봤다. 하지만 또복이는 이제 그런 정도의 스킬에 넘어갈 정도로 단순한 개는 아니었다.
뛰다 지친 나는 또복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화가 났다. 화가 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왠지 마음이 시원했다. 너무나 해맑게 또복이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얼굴에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런 행복한 표정을 언제 보았던가~, 좋아하는 간식인 '오리 날개'를 주었을 때도 지금과 같은 표정은 볼 수 없었다. 영원히 잡힐 것 같지 않은 또복이. 그를 바라보면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자유란 이런 것일까'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인생의 기쁨이란 이런 것일까'
'나는 그런 또복이의 행복에 일조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걸림돌이 되고 있는 걸까?'
잠깐이었지만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매장에 손님 왔다는 아내의 전화였다. 그것도 인근에 사시는 단골 고객들이란다. 이제 더 이상 느긋하게(?) 놀고 있는 또복이를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애타게 또복이를 부르며 다시 쫓았다. 그러나 또복이는 아직 내게 잡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나는 또복이를 멀리서만 바라봐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니 이젠 정말 안 되겠다 싶었다. '또복이 이놈 잡히기만 해 봐라 엉덩짝을 흠씬 두들겨주리라' 다짐한다. 그래도 잡히지 않는다. 낮은 돌담을 넘고 풀숲을 이리저리 헤치며 달리는 또복이...
'아~ 이를 어쩐다'
그렇게 '또복이 포획작전'을 포기하려는 찰나, 녀석이 무슨 신기한 냄새를 맡았는지 한 자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순간, 기회는 이때뿐이란 걸 직감한 나는 얼른 다가가 또복이의 목덜미를 붙잡는다. 또복이의 얼굴 위로 기쁨, 당황스러움, 허탈함이 순차적으로 스친다. 또복이의 대 탈주극이 그렇게 막을 내린 것이다. 장장 30여 분간의 대추격전이었다. 추격전의 후유증으로 나도 또복이도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다.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매장으로 돌아온 나는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에게 얼른 시원한 커피와 음료를 내드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또복이를 쳐다보았다. 가쁜 숨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지 긴 혓바닥을 내밀고 '헉헉' 거리고 있다. 혓바닥 위로 윤기가 흐르는 코가 보이고 그 위로 촉촉하게 젖은 또복이의 눈망울이 보였다. 깊고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뭔가 이야기하는 듯했다.
"아빠~다시 한번, 다시 한번만 부탁해~, 우리 행복했잖아, 우리 자유로왔잖아~"
하지만 나는 또복이를 다시 풀어줄 수가 없었다. 왜냐면 말이지...
나는 매장에 묶인 몸이기에,
생활의 굴레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기에,
결론적으로, 나는 또복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나에게도 '자유를 허' 해주었으면 하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