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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니제주 김철휘 Aug 28. 2024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너를 만난 거였어

1화. 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또복이 오다


또복이가 집에 왔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강아지를 키우게 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조차 없던 나였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나로써는 반려견을 들인다는 것이 부담드러웠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또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아내는 달랐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다. 아이 없이 우리 둘만 살아가는 집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였다. 때문에 틈만나면 '포인핸즈'등 보호견 공고가 올라오는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이 아이 너무 귀여운데 사정이 딱하다며 임시보호 한 번 해보는 건 어떠냐며 내 운을 떠보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정 떼기 힘들어하는 우리 두 부부의 특성상 임시보호는 곧 입양으로 귀결될 거라 직감하며 반대했다. 


덧붙여 수많은 강아지들이 버려지고 파양당하고 결국에는 안락사 당하는 한국의 현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 강아지로 인해 받게 되는 삶의 제약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유기견 입양과 관련된 사이트를 거의 매일 들락달락 거렸다. 걱정이 되었다. 뭔가에 꽂히면 반드시 해버리고 마는 성격임을 알기 때문이다. 걱정은 기우였으면 좋았겠지만 슬픈 예감은 항상 현실이 된다. 그래서 뭔가 하기 싫은 일이 있다면 아예 생각조차 못하게 하고 상상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어찌되었건 어느날 집에 오니 꼬몰꼬몰 작은 강아지가 집안 곳곳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커다란 인절미 덩어리가 뒷뚱뒷뚱 걸어다니고 있는 모습이랄까.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귀여웠다. 귀여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사랑스러웠다. 얼굴의 반 정도를 덮고 있는 큰 귀가 웃기면서 유니크했다. 윤기가 흐르는 적갈색 코와 갈색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딱 2주일만 맡기로 하면서 우리 집에 오게된 또복이와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혼자는 좋지만 같이 있고 싶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또복이는 자동차 사고로 형제들을 잃고 엄마와 함께 구조된 유기견이었다. 또복이와 엄마는 다행히 안락사는 면해 캐나다로 입양가기로 되어 있었다. 떠나기 전까지만 또복이와 또복이 엄마를 각각 다른 사람들이 임시 보호하기로 한 거라고 한다.


또복이 엄마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아빠는 진도견이라 했다. 막 데려와서는 래브라도의 특징이 강했던 또복이었지만 자라면서 진도견의 모습이 살아나 지금은 누가 봐도 두 견종의 믹스견임을 알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또복이는 아기때 부터 조용한 친구였다. 먹을 거 달라고 보채는 일이 없고 심하게 뛰거나 집안에 있는 물건을 물어뜯고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너무 순해서 어떤 때는 이 녀석이 집에 있는지 조차 까먹을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조용한 성격의 또복이었지만 집에 온 첫날 밤, 녀석은 무척이나 낑낑거렸다. 거실에서 혼자 있기가 무서웠던 것이다. 사실 내게 있어 침실은 아내를 제외하곤 다른 생명체가 침범해서는 안되는 공간이었다. 더군다나 강아지와 함께 침실에서 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꼬물이는 그렇게 혼자 거실에 남았던 것이다. 엄마도 없고 형제도 없고 낯설고 황량한 인간의 공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된 또복이. 낑낑거림은 당연한 거였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때까지 내가 그랬다. 개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도 없었고 반려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다.


개들은 사회성이 강한 동물이다. 특히 가족간에 유대감이 끈끈하다. 또복이는 그런 가족을 잃고 엄마와도 떨어져 우리에게 온 것이다. 그런 또복이의 사정도 고려하지 않은 채 나는 그를 차고 어두운 거실에 홀로 두려고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정이 없어도 그렇게 정이 없었다.


또복이는 지금도 혼자 있는 걸 즐기다가도 언제 인가 모르게 슬그머니 엄마 아빠 곁에 자리를 잡고 엎드리거나 드러눕는다. 독립적인 삶을 살지만 같이 있고 싶은 마음, 그게 또복이다.



내가 아니라 니가 내 마음의 상담사!


이제 또복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다. 외출했을 때 CCTV 화면에 또복이가 잡히지 않으면 걱정이 앞선다. 대형견이지만 큰 덩치에 걸맞지 않은 귀여운 외모, 구수한 누릉지 냄새가 나는 발바닥,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쳐다보는 그 갈색 눈동자, 귀가했을 때 프로펠러가 되는 꼬리, 완만한 제주의 오름을 닮은 보드라운 배

,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어?" 라고 묻는다면 주체 없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응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또복이를 만난 거였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서울을 떠나 제주에 왔을 때도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20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집에서 편히 쉴 때도 이런 편안함과 행복감은 없었다. 또복이는 우리집의 행복, 복덩이다. 그래서 이름도 '또, 복이 온다' 해서 또복이다.(또복이 이름은 또복이를 구조했던 분이 지어주셨다).


오늘도 쇼파에 드러누어 신나게 자고 있는 또복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또복아 너는 모르겠지만 너를 보고만 있어도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 고마워~, 아무래도 니가 내 마음의 상담사 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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