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한 번씩 가벼운 우울감을 겪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사는 이유를 찾곤 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정확히 어떤 가치관으로 삶의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는 고단한 성장통이었던 것 같다.
30대 중반,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아이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면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더 나은 바람이라면 처음부터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끔 만들고 싶다.
종종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고단한 어른의 삶이 담겨있다. 재테크의 홍수와 자본주의 속 돈벌이로 나눠진 상대적 빈곤이라는 어른의 슬픔을 아이들이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돈 외에는 인생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기준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의 산물일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내 딸이 치열한 경쟁사회 속 비교 우위에만 함몰되어 살아가는 건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5살인 지금의 딸이 바람에 날아가는 나뭇잎을 재미있게 바라보듯 그녀가 성인이 돼서도 세상 속에 자신을 가득 채울만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공부를 끊임없이 하길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소위 진급, 자격증, 진학 등에 연장선에 있는 그런 공부는 아니다. 그냥 알면 좋고 몰라도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 없는 교양 과목인 미술이다. 경제적 논리가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내 얘기들이 의미 없게 느껴질 수 있다. 연애나 결혼율도 경제적 어려움에 지장 받는 시대니까.
다만 나는 내 얘기를 읽는 당신과 성인이 된 내 딸이 인생을 즐기고 싶은 방법을 찾는 중일 때 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또 있어 보이는 데이트 코스가 아닌 진정으로 혼자서도 미술관을 즐기며 방문하기를. 가격이나 체면치레로 그날 마실 와인을 결정하기보다는 그날의 음식과 마리아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와인 리스트가 생기길 바란다.
약속이 없는 휴일에 여러 작가들이 쓴 책과 거장들의 작품이 둘러쌓인 카페에 들려 새로운 세상으로 흠뻑 빠져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일상을 더 즐겁고 풍요롭게 지낼 수 있었으면 한다.
나의 글이 속하는 카테고리는 ‘교육’이다. 그 이유는 교육만이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Leo Tolstoy)가 그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에서 남긴 유명한 구절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말처럼 가장 근원적으로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키는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주는 삶의 모습의 변화다. 부모가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데 아이가 즐길 수 있을까?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미술를 즐기는데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미술이라는 말에 덜컥 돈이 많이 들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개인 화랑이 수없이 많고 도서관, 화상수업, 문화센터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렴한 돈으로도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미술적 혜택이 많은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문화적인면에서 한국은 정말 선진국이다!) 우리는 미술을 너무 어렵게 여기고 돈을 내는데 인색하다. 오히려 너무나 비싸게 여가를 보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외 여행, 테마파크, 대형 키즈카페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곳에는 개인 취향이 없다. 누군가 가니까 나와 자녀도 가는 것일뿐이다. 가고 나면 쏟아낸 비용이 부담스러워 지출을 줄이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또 가족과 떨어져 경제활동을 하는데 고군분투한다.
다른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와 부모의 일상의 여유와 즐거움을 위해 미술이 가까웠으면 좋겠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보고 이야기해보거나 아이와 그림을 함께 그리며 같이 있는 묵상의 시간을 즐기는 것은 어렵지않다. 다만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운이 좋아서 예술을 즐기는 부모님을 만나 내 아이와 이런 여유를 이어서 즐기는 것에 시작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즐기고 싶어도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모르거나 부모 자신이 미술의 풍류를 즐기는 게 어색한 것이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건 미술을 일상에서 즐기는 건 정말 어렵지 않다. 내 글을 읽고 미술을 육아와 함께 접목하는 것, 그리고 미술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길 바란다.
또한 내 소중하고 하나뿐인 딸에게 이 글들을 모두 바치며 너도 미술에서 너만의 인생의 즐거움을 찾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