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 속 남자 주인공이 타고 있는 우주선이 이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갈 때의 그 광경.
보는 사람도 숨 죽인 채 마치 이 곳을 같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줬던 명장면인데요.
사건의 지평선이 뭘까요?
쉽게 시공간의 영역의 경계를 말합니다.
너무나 감이 오지 않아
영화처럼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말이죠.
블랙홀은 모든 걸 다빨아들인다고 알고 계시죠. 네. 블랙홀 주변을 지나는 모든 물질은 강한 중력의 블랙홀의 영향을 받습니다. 블랙홀에 가까워질수록 그 영향이 크겠죠. 매우 가까워지면 당연 빛 조차도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빛이 블랙홀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최대 반경을 '슈바르츠쉴트 반경'이라고 부르는데요.
슈바르츠쉴트 반경이 형성하는 구의 표면이 사건의 지평선입니다. (왜 이 반경이 빛나는 지는 잠시 후에 설명해드릴게요)
쉽게 일상생활에서 비유를 해볼까요. 여름에 휴가를 갔을 때 모래 사장과 바닷물 사이에서 어떻게 백사장과 바다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건의 지평선의 정의에 따르면 사람이 바닷물에 빠져서 다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 지점이 사건의 지평선이 되겠죠.
사건의 지평선 안쪽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정보는 사건의 지평선을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서는 절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영향도 받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은 죽지만,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눈부신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는 우리 인간처럼 말이죠.
이 슈바르츠쉴트 반경은 블랙홀의 질량이 커질 수록 같이 커지는데, 태양과 같은 질량의 블랙홀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반경이 약 3km에 달합니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어떻게 시공간의 왜곡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방정식들은 어떤 물체든 충분히 작고 아주 무겁기만 하다면 사건의 지평선 뒤에 가려질 수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마치 무게가 강한 구슬이 그물에 던져지면 움푹 파여버리는 것처럼요.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지점. 이게 궁금하시면 제 오디오클립에서 중력파 편을 보시면 될 것 같고요.
어쨌든 천문학자들은 현재 블랙홀이라 불리는 이러한 물체들이 실존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블랙홀들은 거의 모든 은하들의 중심부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곳에서 블랙홀들은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배까지 질량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블랙홀에 대한 역사적 연구와 천문학적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블랙홀을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은 바로 이런 블랙홀들의 실제 영상을 얻기 위해 고안된 첫번째 실험입니다.
EHT는 블랙홀을 처음으로 영상화해서 아인슈타인의 중력에 대한 이론을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인 장소인 사건의 지평선에서 실험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건의 지평선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장소는 바로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태양의 4백만배 만큼이나 무거운 초거대 질량 블랙홀입니다.
하지만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 이 블랙홀들의 사건의 지평선을 영상화 하는 것은 서울에서 맨 눈으로 부산에 있는 골프공 표면의 굴곡을 세는 것과 비슷한 정도입니다.(만일 시야가 닿는다면 말이죠)
힌트는 이 블랙홀을 향해 떨어지는 가스입니다. 이 블랙홀을 향해 떨어지는 가스는 수십 억 도까지 가열되면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예측되는 사건의 지평선의 형태와 크기의 윤곽을 나타내게 됩니다. 안은 볼 수 없지만 가스들이 가열되며 빨려 들어가 그 윤곽은 보이는 것이죠. 이 블랙홀의 윤곽은 일 밀리미터 정도의 파장에서 가장 잘 관찰되는데 그 이유는 블랙홀로 떨어지는 가스들이 이 파장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그로부터 나오는 빛이 지구까지 방해받지 않고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랙홀의 근처에서 빛의 파동은 연못의 파문처럼 나타나는데 이 파문들이 지구에 도착할 때 즈음엔 그들은 거의 평행하게 들어오게 되죠. 블랙홀을 이 파장에서 영상화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우리 지구만큼이나 거대한 망원경이 필요합니다. EHT는 전 지구적인 전파망원경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러한 규모의 망원경을 구현합니다. 각 망원경은 블랙홀 근방에서 발산되는 전파 신호를 모으며 기록합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수집되어 사건의 지평선의 영상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각 전파망원경들이 완전히 동기화 되었을 때만 잘 작동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아래로 늘어진 큰 그물을 상상해볼게요. 그물의 각 위치에 있는 전파 망원경들이 하나의 거대한 포물선 형태의 거울을 만드는거죠. 이 거울은 하나의 빛 파면이 표면에 도달할 때 그 파면을 특별한 각도로 반사해 하나의 초점이 동시에 도달하게 합니다. 한 점에서 반사된 빛이 모이겠죠.
그런데 만약 광학망원경의 거울이 안정되지 않으면, 예를 들어 떨리고 있다면 초점에 정반사된 빛들은 제대로 초점에 정렬되지 않습니다. EHT의 경우에 이런 불안정한 거울은 각 전파망원경에서의 불안정한 기록과 같습니다.
EHT는 기록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 1억년 마다 단 1초밖에 차이 나지 않는 원자시계들을 사용합니다. 관측 중 축적되는 데이터의 총량은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결코 인터넷으로 전송될 수 없습니다. 대신 각 기록들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돼 처리를 위한 중앙 시설로 보내집니다. 슈퍼컴퓨터가 모든 망원경으로부터의 신호를 모으고 녹화된 신호를 재생해 각 망원경에 도달한 전파 파동의 시간 차를 조절합니다. 여기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극단적으로 확대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됩니다.
더 많은 전파망원경들이 EHT에 참여할수록 더 넓게 분포할수록 사건의 지평선 이미지는 더 선명해집니다. 2017년 EHT는 우리 은하의 블랙홀을 직접 영상화하기 위해 전지구적인 전파망원경 네트워크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모여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으며 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영상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들은 블랙홀, 중력, 우리 우주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