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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문과녀의 중력파 바라보기

by 신지은


나는 비행기 타는 걸 참 무서워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 큰 고체덩어리가 뜨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빨리 하늘을 뚫고 달릴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탄다. 매일 수 백 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니 그저 안전하다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뜬금없는 비행기 이야기로 중력파를 꺼내 드는 이유는, 중력파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우리의 자세가 바로 ‘믿고 받아들임’ 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문과들에게는 말이다.


2년 여 전 국내 유명 검색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중력파’로 도배된 적이 있다. 과학이 연예인 이름을 제치고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하다니. 내가 진행하고 있는 곽방tv에서도 이 주제를 바로 다뤘다. 중력에 의해서 시공간이 일렁이는 것이 중력파라는 기초적인 지식 정도는 읽어 봤지만 이해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시공간이라면 시간과 공간의 합성어일텐데, 어떻게 내 앞에 펼쳐진 이 시간과 공간이 중력에 의해 일렁일 수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나와 시청자들의 말에 스튜디오가 추워 내가 덮고 있던 무릎 담요가 카메라 앞에 등장했다. 함께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궤도님의 즉석 아이디어였다. 팽팽하게 양 끝에서 펼친 무릎담요 사이로 핸드폰을 떨어뜨리자 무릎 담요가 아래로 출렁였다. ‘아래로 출렁이는 이 힘, 이게 바로 중력파에요’ 그게 나와 중력파의 첫 만남이었다.

중력파는 100여년 전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였다. 여기서 우리는 중력이 뭔지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력’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과학자는 사실 ‘뉴턴’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미 배웠듯이 중력은 물체와 물체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이다. 저절로 사과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땅이 중력으로 사과를 끌어당겨 사과가 떨어진다는 게 뉴턴이 발견한 그 유명한 사과 이야기라는 것은 문과인 우리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다시 무릎담요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무릎 담요에 핸드폰을 던진다. 그리고 핸드폰 때문에 움푹 패인 그 공간을 따라 구슬을 흘려본다. 구슬이 흘러가며 핸드폰 옆으로 가 맞닿는다. 뉴턴의 생각에 따르면 핸드폰과 구슬이 맞닿는 것은 둘이 서로 잡아당기는 힘 때문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논리는 좀 다르다. 중력이란 두 물체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 핸드폰이라는 큰 질량의 물체가 만들어 낸 시공간의 뒤틀림 그리고 구슬과의 작용이다. 이게 바로 아인슈타인의 중력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움직임’이다. 중력파란 질량이 있는 물체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질량이 있는 물체가 움직일 때 생기는 것이다. 무릎 담요에 핸드폰을 던질 때의 출렁임, 핸드폰을 위로 들어올릴 때의 출렁임, 옆으로 옮길 때의 뒤틀림, 이 움직임이 바로 중력파의 원동력이라는 소리다.

내가 지금 노트북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여러분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에도 중력파는 나오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질량을 갖고 있고 동시에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중력파란 질량이 있는 물체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힘이라는 걸 무릎담요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검출이다. 우주에서 온 중력파를 검출했다던데 크기는 얼만큼이며 어떻게 관측을 해 낼 수 있었을까?


13억년 전 두 블랙홀의 결혼, 그리고.....


잠시 저 머나먼 우주를 상상해보자. 13억 광년 전, 그러니까 지구로부터 빛의 속도로 13억년 떨어진 거리에서, 태양보다 29배 큰 블랙홀과 태양보다 36배 큰 블랙홀이 서로 사랑에 빠졌다. 지구에 막 다세포 생물이 태어나던 시절이었다. 서로 빠르게 돌던 이 블랙홀 두 개는 마침내 하나로 합쳐졌다. 두 블랙홀의 결혼. 그렇게 태양보다 62배 큰 질량의 슈퍼 블랙홀이 만들어졌다. 29와 36을 더하면 65다. 거대한 암흑의 블랙홀 두 개가 합쳐지며 65배 큰 블랙홀이 만들어 졌어야 정상 아니냐고 생각하실 지 모른다. 흔히 결혼을 할 때 두 사람이 가진 재산이 그대로 합쳐진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 일부는 결혼식장이며 신혼여행비 등에 결혼과정에서 지출되기 마련이다. 이 두 거대 블랙홀의 결혼으로 태양의 3배 만큼의 질량은 고스란히 결혼비용으로 방출됐고 우주에 던져진 두 블랙홀의 청첩장은 우주의 지평을 따라 끝도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다세포 생물이 겨우 태어났던 그 옛날의 지구에도 생명이 싹트고 인터넷을 다룰 줄 아는 문명도 생겨났다. 그리고 2015년 9월 14일이 왔다. 바로 그 역사적인 날, 우리는 머나먼 우주의 지평을 타고13억년을 날아온 중력파, 그 블랙홀들의 힘과 조우하게 됐다. 슈퍼 블랙홀 2개의 충돌의 흔적이 지구를 스치고 지나간 날이 바로 이 날이다.

이 날이 있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의 ‘괴짜’ 과학자들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칼텍의 킵손 교수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 자문을 한 과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모든 과학자들이 검출을 놓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이들은 거대한 레이저 검출기를 만들면 참 멋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방법은 무식(?)했다. 5km 길이의 긴 원통형 검출기 2개를 미국의 평원 지대에 약 90도 각도로 이어 붙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 주 핸포드,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에 가면 직각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검출기 세트를 볼 수 있다. 라이고(LIGO)라고 불리는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다. 라이고의 원리를 이해하기 힘들 여러분을 위해 또 다른 상상을 시작해보자. 내 옆에 나와 몸무게, 키가 정확하게 똑같은 쌍둥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우리 둘을 겹쳐 놓으면 하나의 나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중력파가 내 쌍둥이를 스쳐 지나간다. 내 쌍둥이의 키가 좀 커진다거나 작아진다거나 몸무게가 미세하게 줄어든다거나 분명 변화가 생길 것이다. 만일 내 몸에도 똑같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분명 중력파는 우리 둘 모두를 스쳤다고 볼 수 있다. 5km 원통형 검출기 두 개를 이어 붙인 건, 중력파가 만일 지구를 지나간다면 이 원통형 검출기가 분명 미세하나마 변화할 것이고 그 변화의 정도는 같을 것이다라는 아이디어였다. 이게 바로 라이고가 중력파를 검출하는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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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두께만큼 길어져도 감지하는 레이저의 힘!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은 아무도 안 될거라고 생각했던 이 미친 아이디어에 돈을 대줬다. 그 후 수십년 간 우리가 모르는 사이 괴짜 과학자들의 시행착오와 노력, 그들의 인생이 묻은 정확한 검출기가 완성되어 갔다. 2015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2015년 우리 지구를, 우리 모두를 스쳐 지나간 중력파는 너무나 미약했다. 굳이 수치로 따져보자면 10의 21승분의 1만큼의 힘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라이고는 그래서 굉장히 예민한 검출기다. 여기 1광년 길이 즉 약 9조km의 막대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막대기 끝이 머리카락 두께만큼 길어져도 라이고는 감지한다. 예전엔 의사의 숙련된 손의 힘에 기대던 백내장 수술도 요즘은 레이저로 오차 없이 한다고 하더라. 그만큼 미세한 게 레이저의 힘이기도 하다. 라이고의 아버지 격인 킵 손 교수는 중력파를 직접 검출해내기 42년 전인 1973년, 한 교과서 뒤에 이런 말을 써내려 갔다. 중력파 탐사를 위한 검출기를 만들기 위해 극복해야 할 기술적 어려움은 막대하다고.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독창적이고 대중들은 이를 지지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장애물을 확실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수십년의 말도 안되는 연구 끝에 찾아낸 원자 크기만큼의 떨림. 우주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고 그만큼 긴 인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가능치 못할 사건이었을 것이다.


중력파, 우주가 우리에게 건네는 소리


지금껏 우리가 우주에서 거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빛’이었다.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볼 때 우리는 그 ‘빛’을 통해 모습과 거리를 유추해보곤 했다. 풍경의 사방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은 우리가 사물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런데, 소리는 좀 다르다. 소리의 파장은 굉장히 길지만, 소리의 그림을 그리기는 너무나 힘들다. 대신 음색, 음조, 박자, 크기 등을 들음으로써 소리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유추할 뿐이다. 중력파는 우주가 우리에게 말하는 ‘소리’다. 그리고 2015년 9월 14일 라이고는 이걸 들었다. 슈퍼 블랙홀 두 개가 믹서기 속도만큼 빠르게 회전하다 합해지면서 우주로 내던져진 소리. 우리는 이제 우주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우주를 관찰할 수 있는 완전한 새로운 방법을 가지게 됐다. 빛도 통과할 수 없는 블랙홀을 중력파는 철이 유리인 것처럼 뚫고 지나간다. 우리도 알 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도 이미 뚫고 저 먼 우주로의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본 적도 없고 영영 볼 수도 없으며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우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됨으로써 저 너머에 무언가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무릎 담요로 만난 중력파를 겨우 이해 하던 나는 이 방송으로 너무나 감명을 받아 그 다음 해 페임랩코리아에 ‘중력파’를 주제로 3분 스피치 대회에 도전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 과학이라는 것의 경이로움을 몸소 체험하게 된 결정적 주제였다. 중력파. 지금 어디에선가도 계속 우주는 중력파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누군가 중력파가 무엇이냐 묻거든 ‘우주의 소리’라고 대답해보시라. 그만큼 근사한 대답이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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