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상상하는 쿠바가 진짜 쿠바일까? 쿠바 아바나

알면 알수록 신기한 쿠바라는 나라

by 신서희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바나에서 3박 4일을 머무른 뒤, 다른 도시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지막 도시인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 항공사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는 노력까지 했음에도 결국 산티아고 데 쿠바행 비행기 티켓을 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린 시엔푸에고스, 트리니다드 등 다른 도시들을 둘러본 뒤, 산티아고 데 쿠바가 아닌 아바나로 다시 돌아오는 걸로 일정을 급변경했고 결과적으로 아바나에서 무려 8박 9일을 머물게 되었다.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면서 며칠 뒤 다시 아바나로 돌아왔을 때 묵을 숙소를 찾아서 미리 예약을 해두는 게 시급했다. 성수기의 쿠바에선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호텔은 시설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비싼 수준이고 '까사 Casa'라 부르는 쿠바 특유의 민박 형태 숙소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들어가보면서 찾을 경우 시간이 무한정 걸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열악한 시스템이었다. 해외에서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쿠바의 까사를 예약할 수 있지만, 정작 쿠바 현지에서는 숙소 검색만 가능하고 예약은 불가능했다. 아마도 쿠바에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무작정 까사마다 들어가 보는 것보다는 먼저 에어비앤비 검색이라도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바나 숙소 예약을 오늘의 첫 미션으로 잡았다.



올드카와 말레꼰의 만남
쿠바의 인터넷 카드


쿠바는 인터넷 환경이 어마무시하게 열악하다.

호텔이나 국영 통신사인 ETECSA에서 인터넷 선불카드를 구입하여 와이파이가 가능한 몇몇 지역에서 비번을 넣고 접속할 수 있다. 속도는 너무 느려서 무한 인내심이 필요하고, 그나마도 와이파이가 되는 구역을 이리저리 찾아다녀야 한다. 인터넷 카드 한 장에 총 한 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며(분 단위로 쪼개서 여러 번에 나누어 사용할 수 있다), 가격은 대략 0.5~2쿡 정도. 한 시간에 약 US$2면 쿠바 물가를 고려했을 때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우리는 숙소 옆 호텔에서 인터넷 카드를 구입하여 로비에 앉아 본격적으로 숙소 검색을 시작했다. 놀랍도록 느린 속도를 참아가며 겨우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았는데, 문제는 에어비앤비에선 예약을 완료해야 숙소의 정확한 주소가 보인다는 사실. 그런데 쿠바에서는 검색만 가능하고 예약을 할 수가 없으니 도대체 이 숙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 방법이 없었다. 결국 후기를 샅샅이 뒤지고 숙소 사진에서 테라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대강의 위치를 파악해냈다. 이제 숙소 사진을 들고 직접 그 동네로 찾아가볼 차례. 역시 우리는 집념의 한국인이다.



아바나의 상징, 올드카택시
쿠바 국영 택시


숙소가 있는 베다도에서 올드 아바나까지는 택시로 약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쿠바에는 두 종류의 택시가 있는데, 하나는 올드클래식카로 운영하는 사설 택시, 그리고 하나는 노란색 국영 택시다. 물론 비주얼은 올드카 택시가 멋지지만, 승차감과 안전함을 고려하면 단연 국영 택시가 좋다. 우리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내 국영 택시를 타고 다녔다는.


문제는 택시 요금. 겨우 10분 거리인데, 국영 택시와 올드카 택시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10쿡을 불렀다. 한화로 10,000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아무리 흥정을 하려 해도 싫으면 타지 말라는 식의 배짱이다. 심지어 15쿡을 부르는 택시도 적지 않았다. 이 정도면 유럽을 넘어서는 물가 수준이다. 하지만 어쩌랴. 올드 아바나로 가기 위해서는 10쿡을 내고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여기는 쿠바니까.


거의 한 시간 넘게 동네를 헤매고 다녀서 드디어 우리가 에어비앤비에서 보았던 숙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예약까지 모두 완료.

첫번째 미션인 숙소 예약을 끝내고 나니 이미 반나절이 훌쩍 지나버렸다. 역시 쿠바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컬러풀한 아바나의 골목
올드 아바나의 골목
현지인 화폐인 모네다(쿱 cup)
길거리 츄러스
25cup짜리 피자


오늘은 외국인 화폐 '쿡'의 1/24 수준인 현지인 화폐 '모네다(cup)'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모네다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은 대부분 골목 안, 허름한 간이매점 같은 곳들이다. 츄러스, 피자 등이 주메뉴. 무려 1/24의 가격대라 그런지 츄러스와 피자 가게 앞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츄러스는 한 봉지에 5cup(한화 약 200원), 피자는 한 판에 25cup(한화 약 1,200원),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이었다. 사실은 이게 쿠바의 진짜 물가인데, 외국인에게는 공식적으로 24배를 받으니 체감상 유럽보다 더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물론 츄러스는 밀가루 덩어리였고, 피자는 치즈 외에 다른 토핑을 찾아볼 수 없는, 그냥 치즈 빵이었지만 그래도 맛은 굿이었다.



알록달록 예쁜 비에하 광장
자유로운 느낌의 비에하 광장 노천카페


비에하 광장은 아바나애서 가장 예쁜 광장 중 하나다.

한때 노예 시장으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알록달록 예쁜 건축물들이 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 게다가 아치형 창문들은 그 문양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광장 곳곳에는 노천 카페가 있고 사람들은 느긋하게 커피 타임을 즐기고 있어 유럽의 어느 광장에 온 듯 여유로운 느낌이 매력이다.


비에하 광장의 카페로 가는 길에 상점에서 생수가 보이길래 잽싸게 한 병 사두었다.

오후 3시가 넘어서면 오비스뽀 거리 일대에서는 물을 구하기 힘들어진다. 아바나는 매일 생수가 품절 되는 신기한 도시다.




아바나의 명동, 오비스뽀 거리 뒷편 골목


우리는 올드 아바나 일대를 그냥 쉬엄쉬엄 걸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화려한 오비스뽀 거리에서 아주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슬럼가 같은 허름한 골목이 나타났다. 갑자기 영화 속 어느 뒷골목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전혀 다른 풍경과 분위기였다. 심지어 어떤 골목은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촉이 직감적으로 느껴져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분위기가 싸했다.

쿠바가 다른 중미 국가들에 비해 나름 안전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뒷골목까지 안전하진 않겠다는 게 어렴풋하게게나마 느껴졌다.


그래도 아바나가 이만큼이라도 복원이 된 것은 쿠바를 대표하는 도시 사학자인 Eusebio Leal Spengler 덕분일 것이다. 그의 주도로 아바나는 1970년대 말부터 관광 수입을 역사 복원과 도시 재건 사업에 투자했고, 현재 올드 아바나의 1/4이 식민지 시대 때의 수준을 되찾았다고 한다. 각종 사료들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이전 모습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다. 현재도 복원 사업은 진행 중이며 관광 수입의 45%를 도시 복원에 재투자하고 55%를 도시 사회사업 재건에 쓰고 있다고 하니, 이 사업이 투명하게만 진행된다면 관광 수입이 증가할수록 도시의 복원이 잘 되는 이상적인 구조일 것이다.


현재 오비스뽀 거리 일대는 거의 완벽하게 복원이 되었지만, 우리가 발길 닿는 대로 걸어다녔던 안쪽 골목들은 아직 채 복원이 되지 않았기에 다소 위험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혼자 여행자라면 되도록 안쪽 골목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다시 안전한 메인 스트리트로


그렇게 살짝 싸했던 뒷골목 산책을 마치고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오니 중앙 공원 앞이다.

올드카와 관광용 마차를 보니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다시 안전해졌다.



말레꼰의 골목 풍경


쿠바는 분명 세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사람들의 순수함이 아직 남아있는 곳이란 얘길 들었으나, 우리가 만난 '오늘의 쿠바'는 달랐다.

쿠바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순수했던 쿠바 사람들은 관광객들의 '달러'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어떻게 하면 그 달러를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나마 아직은 그 속이는 수준이 높지 않아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속지 않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법을 체득하는 순간 그 속임의 수준과 강도가 높아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더이상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듯이 쿠바도 이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달러의 매력을 경험하면서 여행자들을 따뜻함보다는 실리와 이익 추구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동안 우리가 꿈꾸었던 쿠바의 로망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쿠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부디 쿠바가 더 변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그곳에 다녀오길 권하고 싶다.

앞으로 5년 후쯤, 쿠바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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