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책 한 권을 꺼냈다. K의 신간이었다. 새 책 냈다는 얘길 들은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또 신간이라니 놀라웠다. 게다가 제목도 센스 만점이라 이 책 잘 팔리겠구나 싶었다.
부러웠다. 연달아 책을 출간할 수 있는 능력도, 출간 기회도, 부지런함도, 기획 능력도 다 부러웠다.
얼마 전 우연히 P 작가가 쓴 컬럼을 읽었다.
'P 작가가 이렇게 글을 잘 썼던가?' 놀라웠다. 그동안 P가 낸 책이나 그가 쓴 컬럼을 읽으면서 솔직히 P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책을 출간하고 기고를 하는 걸 보면서 좀 샘이 났던 거 같다. 난 P보다 더 잘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나는 책을 못 내고 P 작가는 계속 승승장구하는 건지 속상했다.
질투와 샘, 그 사이 어디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랜만에 읽은 P의 글은 너무 좋았다. P의 글 솜씨가 그동안 일취월장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동안 P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P의 글은 좋았다. 그가 얻은 기회와 그의 재능, 능력이 모두 다 부러웠다.
사실 부러운 걸로 치면 세상에는 부러운 것 천지다.
일찌감치 재테크에 눈을 떠서 집을 사고 팔고 하더니 2주택자가 되어 BMW를 타고 다니는 지인 A도 부럽고, 키 크고 예쁘고 날씬하고 감각 있어서 뭘 입어도 스타일리시한 친구 P도 부럽다. 따뜻한 마음과 말투와 태도로 사람들을 잘 위로하고 토닥일 수 있는 공감능력을 지닌 지인 Y도 부럽다. 뛰어난 손재주와 예술적 재능을 가진 H도 부럽다. 명석한 두뇌와 통찰력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전문직 종사자 S도 부럽다. 잘 가르치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서 늘 학생들에게 인기 짱인 동료 교사 C도 부럽다. 주위에는 없지만, 평생 돈 걱정할 필요 없는 금수저도 당연히 부럽다. ㅋ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그저 부러울 뿐 샘이 나거나 질투가 나진 않는다. 내가 격하게 부러움을 느끼고 때로는 부러움을 넘어서 좀 샘이 나거나 아주 가끔은 질투가 나기도 하는 건 글을 잘 쓰는 사람, 출간 기회가 끊이지 않는 사람,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람들이다. 결국 내가 살면서 가장 부러운 건 글쓰는 재능, 출간 기회, 기획 능력, 베스트셀러의 타이밍 운 등, 대부분 글과 관련된 분야들인 것이다.
얼마 전, 드디어 청소년상담사 1급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난 뒤, 지금껏 내내 미뤄둔 숙제를 이제서야 겨우 끝낸 것처럼 마음이 후련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은 학위도, 청소년상담사 자격증도 쓸 일이 없다. 그저 언젠가는 내가 가진 이 패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나름 운좋게 인생의 스펙(?)을 하나씩 하나씩 쌓으면서도, 때때로 나에게 찾아온 크고 작은 행운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부럽다. 글 잘 쓰는 이들의 재능이, 출간 기회가 끊이지 않는 작가가, 트렌드에 맞는 기획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그들이 샘이 날 만큼, 때로는 질투가 날 만큼 부럽다.
대체 난 왜 이토록 간절히 글을 잘 쓰고 싶은 건지, 이미 책을 냈으면서도 왜 끊임없이 다음 책을 내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런 내 마음이 나 스스로도 잘 설명이 안 된다. 그저 이토록 인생에서 간절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 할머니가 되어서도 청년의 꿈을 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 간절함에 감사해야 하려나.
그러고 보면 한편으로는 질투까지는 말고 부러움과 샘이 견인하는 인생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p.s.
tvn 드라마 '마녀식당으로 오세요'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이 세상에 마녀식당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소원 성취의 유혹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