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전지적 지구 시점]과 관련한 자리에 가면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종종 질문을 받아요.
처음 질문을 한 사람은 저의 지인이었어요. 특별히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터라 이 질문을 받고 나서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환경에 관심이 있었는가 하고요.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니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더라고요. 노력을 한 게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태생적인 관심 같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에요. 붓글씨 수업이 있는 날이었어요. 수업이 끝나자 반 친구들이 손과 팔에 묻은 먹물을 지우러 화장실로 갔습니다. 저도 손을 씻으러 갔는데 웬걸요. 비누가 없었어요.
친구들이 말했어요. 비누가 없어서 옆에 있는 주방세제로 지웠더니 훨씬 잘 지워진다고 말이죠. 다들 그걸로 손을 씻은 모양이었습니다. 세면대에는 하얀 거품이 몽글몽글 살아있었습니다.
주방세제로 손을 씻어보기는 아마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비누와는 다르게 많이 미끌거리고, 거품도 조금 달랐어요. 세제를 짤 때 아마 양 조절에 서툴렀을 겁니다. 어쨌거나 친구들 말대로 먹물이 잘 지워졌어요. 그런데 세면대에 없어지지 않고 몽글몽글 남은 거품을 보자니 마음이 불편했어요. '이게 맞는 걸까?'
며칠 후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일기 하나를 읽어주셨습니다. 일기장의 주인은 저였어요. 서예수업이 있던 날에 느낀 불편함을 일기에 적었는데 그걸 들려주셨어요. 고학년 형 누나 오빠도 생각하지 못하는 거라는 칭찬과 함께요. 예상치 않게 일기가 친구들에게 읽히자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깨끗한 환경이 건강에 좋다는 걸 체험한 일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명절이 되면 시골 큰아버지댁에 내려가서 며칠 머물렀는데요. 말 그대로 농촌이어서 제가 좋아하는 개와 가축을 실컷 볼 수 있었어요.
좋았던 건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제가 당시에 여름만 되면 눈병을 앓았는데요. 서울에서 충혈된 채로 시골에 내려가면 다음날 눈병이 싹 사라졌습니다. 신기했어요. 서울도 큰아버지댁처럼 공기가 맑다면 눈병으로 힘들지 않을 텐데. 아쉽고 속상했죠. 공기가 좋은 곳, 깨끗한 환경에 대한 동경이 이때 생겼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야생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하는 게 싫고 마음이 아팠어요. 원인이 뭔가 하고 봤더니 서식지 파괴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이 행복하려면 서식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자연스럽게 동물이 사는 터전에 관심을 갖게 됐고, 농업, 무분별한 개발, 환경오염 등으로 관심의 범위가 확장됐습니다.
요즘은 저의 안정(안전), 평화 지향적인 성향이 환경에 계속 관심을 갖고 활동을 지속해가는 주된 동력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