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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27. 2022

환경문제로 느끼는 건 죄책감만이 아니었습니다(2)

-환경문제로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


‘기후 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해외에서 이 용어가 먼저 사용된 것 같은데요. 저는 한동안 기후 때문에 상당한 우울감을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에이 설마, 기후 때문에 우울할까' 싶어서 마음이 힘든 이유를 다른 데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후가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았어요. 혹시나 해서 찾아보다가 기후 우울증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기후 우울증이 걸리면 어떤가 하면요. 이러다가는 내 미래가 없거나 혹은 있다고 해도 굉장히 암울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수시로 듭니다. 그 생각은 일상에 점차 점차 스며들면서 서서히 마음이 압도됩니다.  


사람은 현실이 힘들어도 앞으로 있을 밝은 미래를 상상하면 현재를 버틸 힘을 얻기 마련입니다. 저는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아직 젊다는 희망,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기후위기 시대가 피부로 와닿으면서 저에게 앞으로 희망찬 미래가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빨리 탄소배출을 줄이고 에너지를 얻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위험해진다는데 세상은 너무 느리게 바뀝니다. 그렇다고 제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돈을 모으고, 좋은 물건을 사고, 건강을 챙기는 노력이 기후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일까?’

기후위기는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온전히 보장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각이 행동을 낳는다고 하지요. 이상하게 손하나 까딱하기 싫고 누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아졌습니다. 주중에 그토록 기다린 주말이 왔지만 뭘 하더라도 도통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이 무기력했지만 돈은 벌어야 했습니다. 월요일이 되면 가진 힘을 끌어모아 출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힘든 후에 알았습니다. 기후 우울증이 이런 구나를요.


요즘 우울증에 걸리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지요. 우울감을 참고 견디다가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상담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려고 하니까 기후 우울증 때문에 상담받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있어봐야 얼마나 될까? 흔치 않은 경우일 텐데 내가 이야기를 하면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되레 상처만 받고 올까 봐 겁이 났습니다. 결국 저는 상담을 받지 않았고 대신 혼자서 다른 방식으로 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마음을 쏟느라 현재를 기쁘게 살지 못하니까 제 인생이 아깝더라구요.


미래도 중요하지만 오늘이라는 하루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자꾸 떠올렸습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로 생각을 바꾸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면 밖으로 나가서 걸었습니다. 터벅터벅 발걸음이 무겁더라도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참 도움이 됐는데요. 콘텐츠를 만들어서 SNS에 올렸습니다. 글이나 그림으로 옮기다 보면 내가 실제로 느끼고 있는 감정임을 의식할 수 있었고, 표현을 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고 하는 대신 제가 저를 이해해주기로 마음을 바꾼 것 역시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후위기가 걱정이 되어서 내가 우울감을 느끼는 건 비이성적인 게 아니고 응당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받아들이자 마음이 한결 편안했어요.


영화 <돈 룩업(Don’t look up)> 보신 분 계신가요? 기후위기를 테마로 만들어진 영화인데요. 영화 끝부분에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전, 주인공이 가족, 지인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평소처럼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영화가 저에게 어떤 위로를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기후위기에 대해서 마음이 전보다 담담해진 것 같거든요.


지금까지 환경문제에 대해서 제가 느낀 감정을 이야기해봤는데요. 불편하거나 힘든 감정이 주된 감정인 듯 보이지만요, 제가 환경문제로 불편하거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환경을 위한 실천을 지속할 수 없었겠지요.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감정도 느낍니다.


시민 활동가들이 변화를 만들어가는 걸 볼 때면 ‘기쁘고’, 가끔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내놓을 때도 기쁩니다. 빈 용기를 가져가서 음식을 테이크 아웃할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행동이 기업에게 소비자로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생각하면 ‘희열’도 느껴요.

‘자존감’도 올라갑니다. 제 스스로에게 ‘존경심’이 들 때가 있어요. 아, 조금 쑥스럽지만 솔직히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해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환경문제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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