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5
내가 농학을 공부하게 될 줄이야. 농사 아니던가 농사.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건 아닐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집에서 이런저런 채소를 길러 먹은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아주 소소한 농사였지만 그때는 마냥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퍼머컬처(permaculture)' 라는 걸 알게 됐고, 어느 강의를 듣고 나서 꽂혀버렸다.
그 후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청년 시골체험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며칠간 지방에 내려갔다 왔다. 텃밭에서 작물을 심어도 보고 수확도 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시골에 살 수 있을까’가 관심사였던 시기였고, 나는 시골에서 땅을 구하고 거기에 먹을 것을 길러 먹는 내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했다.
시골에 가자면 그전에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밥벌이였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찾아보면 스마트팜이 인근에 하나 정도는 있을 거란 생각에 이르렀다. 농업을 택한 건 어찌 보면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일반 회사 생활을 하며 과민한 장을 고쳐보려고 해 볼 수 있는 노력은 해볼 만큼 해보았다. 그러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렸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건 더는 못하겠다고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농사일인들 못할 것이 없었다. 아니 뭐라도 해야 했다.
삶의 눈높이를 낮추기로 한 나는 생각을 빠르게 현실로 옮겼다. 어차피 사무직이라고 해도 몸이 괴로운 건 마찬가지인데, 몸이 좀 고된 들 어떨까. 급여가
적은 들 어떨까. 먹고사는 데에만 쓰고 그 외의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정 안 되면 부업에 시간을 쏟아야겠지.
생산직으로 직종을 바꾸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스마트팜이었다. 관련 업체의 구인공고를 찾아보니, 대부분 근무지가 서울이 아닌 경기도나 지방에 분포해 있었다. 채용이 되려면 서울에 거주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서울을 떠났고, 현재는 경기도에 살고 있다.
스마트팜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시스템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식물을 햇빛을 보지 않고 키운다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시설은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 손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던데 몇 명이 일하는지 등등이 궁금했다.
스마트팜을 직접 보고 일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관심이 작물로 옮겨갔다. 햇빛 한 줄기 없는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잘 자라는 작물이 신기했고, 얘네들은 지금 비치는 빛이 햇빛이 아닌 뭔가 다른 빛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관리자가 이 식물에게 제공하는 비료의 비율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하루 종일 쓰는 전기료, 종자값, 양분, 포장비, 인건비 등을 빼면 얼마가 남는지가 궁금했다. 농장이 아닌 공장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이 재배 방식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편이 정말 될 수 있을까.
자격증을 알아본 건 일을 하면서 쌓여가는 궁금증이 답답했고 그걸 해소하고 싶어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단순 생산직 직원이었다. 관리자에게 질문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간단한 답변이 나에겐 충분치가 않았다. 관리자들은 거의 항상 바빴고, 그리고 아마 이렇게 생각했던 걸 수도 있다. ‘이걸 모른다고 일을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머리 아프게 다 아실 필요는 없으니까’.
예전에도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그럼 그렇지…’라고 실망하며 인터넷 창을 껐다. 생물 관련 학과를 찾아본 건데, 실험을 해야 하는 이과의 특성상 온라인으로 배울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문과의 경우에는 사이버 대학이 많았지만 이과는 없었다. 못 찾은 건지 덜 찾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있었다고 한들 쉽지는 않았을 것이, 사이버대학이라도 학비가 저렴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몇 주 전 농업 관련 자격증의 응시 자격을 알아보다가 방통대에 농학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블로거들 이야기를 보니까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입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보였다. 집에서 농학을 공부하면서 학위를 딸 수 있다고? 문과도 아니고 이과를? 곧장 홈페이지에 가보았더니 정말 있었다. 신기했다. 농대는 실험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의아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학과를 개설해 놓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하여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있다는 게 중요했다.
곧장 입학 원서를 넣은 건 아니었다. 공부를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능사 2~3종을 공부해 보고, 그래도 더 공부하고 싶을 때 다시 생각해 보자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자격증 공부가 한 가지로는 성에 안 차서 이것저것 따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고, 이럴 거면 그냥 대학을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기능사 자격증을 딴다 한들, 그 윗 단계 자격증은 응시 자격 자체가 안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능사를 따고 고만고만한 허드렛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전공자가 기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려면 관련 회사에서 3년인가 일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 내 상황에서 회사를 들어간들 연봉도 연봉이고 선택지가 적었다. 다시, 찜찜함이 싹텄다.
이걸 해, 말아?...
그러던 중, 어느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과 끝나고 커피를 마시게 됐다. 내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혹시 주변에 방통대 다닌 분 있어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분이 본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이버 대학에서 심리학을 졸업했다는 이야기였다. 원래는 공대 출신인데 개인적 관심으로 공부를 했단다. 직장을 다니면서 학위를 딴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못할 공부는 아닌 듯했다. 그럼 나라고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입학원서 마지막 접수일에 인터넷에서 어느 블로그 글을 보고 다시금 용기가 났다. 본인이 방통대를 다니고 있고 학점 및 난이도, 직장인으로서 공부하기는 어떤지 등을 쓴 블로그 글이었다.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웬만하면 점수를 잘 주려는 분위기인 듯했다. 학비를 찾아보니 정말 저렴했다. 4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공부가 힘든 건 맞지만 그렇다고 못할 일은 아닌 듯 보였다. 시간이란 거, 알잖아. 2년 그거 금방인 거(이럴 땐 시간이 빨리 가는 게 참 좋구나).
잘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욕심이 안 나는 액수이긴 하지만 받으면 기분이 좋긴 하겠다. 도전해 보라고, 리스크가 별로 크지 않다고, 나도 했다며 글을 마친 블로거를 보고 용기가 생긴 나는 학교 홈페이지에 가서 입학 원서를 넣었다. 접수마감 4시간을 남겨두고 접수를 했다. 접수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합격자 발표일까지 시간이 있었고, 그 이후로 등록금 납입을 위한 기간도 며칠 있을 것이다. 그사이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등록을 포기하면 그만이다. 여하튼, 하고 나니,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70%다. 공부야 못하면 35만 원인가 더 내고 한 학기 더 다니면 되는 것이고. 온라인이라고 하니 귀찮지도 않고. 보니까 그렇게 과목이 많지도 않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 내겐 다 새로운 거니까.
목표가 뭐냐라고 누가 묻는다면 ‘하면서 찾아보겠다’고 말하겠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뭘 좋아하고, 뭐가 잘 맞을지 모르겠다. 그걸 찾아보려고 농학과에 가려는 것이다. 일단 해보면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