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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사진관 Nov 17. 2019

이 도시를 많이 좋아하는 이유, 런던

<키워드>'관계'라는 단어 앞에 외롭던 시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특정 영화

특정 음악

특정 사람

특정 장소 

그렇지만 그 모두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을 때도

우리에겐 있다.


왜 하나쯤은 이런 마음 있지 않나.  

'이 가수', ' 이 음악', ' 이 책', ' 이 브랜드' 특정 어떤 것들을 나만 알고 싶은 마음 

브로콜리너마저에서 계피가 나왔을 때 아쉬웠고, 10cm가 무한도전에 나왔을 때 반가웠지만 뭔가 아쉬웠던 때가 있었다. 타인이 알게 되면 왠지 좋아하는 공간은 변할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 나만의 공간과 한적함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뭐 언젠가 가고 싶은 곳이면 이제는 가봐야겠다는 도시가 몇몇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늘 런던이었다. 몇 번에 기회가 있었고, 또 몇 번 스탑오버 정도로만 스쳐 지나갔는데 진짜 런던에서 24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길 잘했다. 하지만 친구, 가족과는 절대 못 갈 곳인 것 같다. 물가가 너무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거의 이틀 동안 쓴 비용은 5만 원 이하. 무조건 걸어 다니고, 밥은 한인 민박에서 때웠고, 여행만 오면 이상하게;; 식욕이 그다지 없는...

커피만 열심히 마셨다. 하루 만에 보기에는 너무너무 아쉬웠던 곳이었다. 

신사의 나라라고 하지만 인종(?) 약간 동양인을 무시하는 것을 몇 번 경험했고,

런던에서 가장 많이 한 것은 무단횡단이었다. 거의 태국, 베트 남극의 수준? 아니 그럼 신호등이 왜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나도 어느 순간 열심히 건넜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피곤함 보다 설렘으로 여행지에 도착해 찍은 첫 번째 컷. 

가장 설레었던 순간을 담고 있겠지.

첫날 미리 예약했던 한인민박에 도착해 바로 뻗어 할머니처럼 새벽에 일어나 미친 듯 걸었다. 런던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뿐. 런던을 하루 만에 다 보려고 한건 욕심이었다. 최애 도시는 바뀌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좋았다. 비가 오다가 안 오다가. 해는 떴는데 비가 오다가. 신기한 날씨를 가진 도시다.

여행을 가면 출퇴근길과 다르지는 않지만 지하철을 타면 낯설다. 

아침 5분이 그렇게 피곤한데 달콤하다.

평소에는 더럽다고 불편해했을 표정도 괜찮다며 웃어넘긴다.

모닝커피는 살기 위해 마시지만, 때론 분위기가 있다.

찍지도 않을 간판인데 글자만 다르다는 이유로 열심히 찍어본다.

밤 10시 하루 종일 걷다 들어와도 피로도가 다르다


어떤 도시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보단 

여행 중 내 감정에 충실한 편인데, 당시 나의 화두는 '관계(關係)'였다.

커피 없이 못 살지만,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시게 된 건 칼로리가 0이라는 말에 마시게 되었고, 

정작 커피 맛과 깊이를 알고 있지는 않고 

겹겹이 쌓이고, 느끼는 감정 형용사. 그러니까 슬픔, 좌절. 분노. 행복. 짜릿함. 안도. 외로움. 즐거움 등등 수많은 감정 형용사를 느꼈다는 건 지금의 나를 만들지도 모른다.

(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감정일 때는 좀 거시기 하지만)

왜 그렇게 관계에 집착했을까, 어차피 접착도 안 될 사이였는데. 끈끈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한 걸음 물러나 느슨해졌을 때 오는 공허감은 역시나 시간이 약이었다. 잘 가 가을! 여름보다 단단했던 마음이어서 고마워, 사춘기도 아닌데 사춘기잖아.


대단한 용기, 꿈도 아니었다. 의미부여는 뉴턴이 사과에 했던 것으로 끝내자. 

무던하고, 덤덤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은 '넌 왜 이렇게 바쁘냐'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무척이나 듣기 싫어했다. 사람마다 '바쁨'에 대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바쁘다고 생각 안 하는데 왜 보이는 것만으로 말할까라는 뭐 그런? 약속이 많아 보이지만 퇴근하고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글 쓰는 시간이 제일 좋다.

 /

습관처럼 열심히 살았고, 바보처럼 성과도 없었다. 이 바쁨을 탓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줬지만 피해는 주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바빠 보이지만 굉장히 여유롭던 삶, 24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삶에서 이제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니 정말. 진짜. 바쁘다. 부디 이 바쁨에는 바보처럼 성과가 없진 않길, 바빠도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대하진 않길

한 때 '적당히 벌고, 잘살자'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순간 인생에 '부동산'이라는 단어가 들어온 순간부터 '적당히'라는 부사는 사치가 됐다

시간과 사건이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 덩어리, 덩어리째 파편이 되어 과거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무수한 변화에 내가 잘 선택한 건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하고 싶다가도, 무엇에 막혀하지를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쩜 계획한 것으로 되지 않으니 그것마저 스트레스라 하지 않았는지도.

새로운 시도와 변화는 놀랍다. 사소했는데 소중한 것들을 돌아볼 수 있었고, 

나만 끌어당겼던 관계에 대해 느슨할 수 있는 거리를 가져다줬으니 말이다

타인과 대화를 유쾌하게 이끌어 가는 사람. 

가까운 사이에서 무례하지 않으며 할 말은 하는. 그런 대화를 이끄는 어른이 되고 싶다.

연이은 대학입시의 낙방으로 좌절을 할 때마다 이를 악물고 느낀 건 서울로 대학을 가면 성공을 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 생각이 철없는 생각이라는 건 지나 보면 안다. 막상 서울로 대학을 오니 성공은커녕 또 다른 시작이었다. 대학생활의 낭만은 없었고 취업과 토익 등 분주하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20대를 보내야만 했다. 싸이월드 포도알을 받기 위해 감성적인 일기를 매일 쓰며 나의 대학생활은 아직 아름다워요 할 무렵 하계 인턴을 지원했던 서류가 줄줄이 낙방했다. 내 인생이 늘 그렇지 떨어지는 거에 익숙하다 보면 담담하다. 다시 일어날 생각이 없다. 그래도 웃었던 것은 친한 친구도 무얼 할지 몰랐다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행지에서는 좋아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짧다.

여행 중간중간 드는 긴 호흡에 문장들은 

여행이 끝난 후 막상 노트에 옮겨 적으려고 하니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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