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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사진관 Nov 17. 2019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데스밸리

<키워드>연금술사, 인생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어차피 소셜미디어에 올릴 거면 디지털카메라로 찍지 그러세요?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필름 카메라로는 조금 다른 것들을 찍으려고 했다. 운이 좋게 출장으로 몇 번 갔던 미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광고주님이 원하는 사진도 있지만 필름 카메라로 만큼은 기억하고 싶던 순간을 담으려고 했다. 


집 – 회사 – 집 – 회사

허물처럼 벗어 놓는 옷

들어왔다 나갔다만 하는 침대 위 이불 

가끔 애벌레 같음

월화수목금 요일별로 알맞은 셔츠와 양말 

여유로운 것도 사치 


선생님 요즘 코로 숨이 잘 안 셔져요. 이것도 스트레스인가요?"

"그냥 코 안에 먼지가 많은데요"


휴가를 가기 전에 일을 몰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많을 수 도 있지만 말이다.

출장이든 휴가든 회사생활에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10번째 보는 500일 서머

6번째 보는 너의 이름은

5번째 보는 라라 랜드

이 모든 영화가 끝난 뒤에 미 서부에 도착했다.

미국 입국심사는 늘 어렵다. 불과 3개월 전에 왔는데. 왜 왔냐 해서. 컴퍼니 홀리데이라고 함. 무슨 회 사냐고 해서. 회사명을 말해줌. 갑자기 BTS?라고 하길래. 아니오. 걸 제너레이션이라고 하니. 모른다고 함. 쏘리 하니. 그렇게 미안한 일은 아니라고 함. 어줍지 않은 영어로 잘 버티고 있어. 괜찮아. 어서어서 환승하자.


로드트립, 어쩌면 '인생'이라는 단어에 꽂혔던 여행

하루에도 쏟아지는 뉴스 속에 나와 가까운 뉴스가 있고, 먼 뉴스가 있다. 매년 11월 수능과 관련된 뉴스를 볼 때, 아직도 수능날만 되면 괜히 울컥한다.

-

D-100, D-50, D-7

숫자 앞에 아주 열심히 살았던 기억이 있다. 수능을 4번 응시했다. 정확히는 3번을 쳤지만 말이다. 수능은 내게 인생에 있어 철저한 '실패'라는 단어를 안겨주었다.

인생에 전부라고 생각했고, 왜 그땐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지나 보면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덤덤하게 텍스트로 추억하는 듯 끄적이는 것 보면 참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삼수를 끝나고 엉엉 울던

나를 달래주던 할머니의 한마디 가 생각난다.

"수능이 끝났지. 인생이 끝났냐!"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데 평소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데 조금 빙 둘러가도 좋으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비가 내리는 퇴근길은 더욱 막혔다. 퇴근해서 기분이 좋지만 내리는 비를 맞은 우산에 행여나 옷에 묻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직장인, 이른 저녁부터 술이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 지친 표정이 가득한 사람 등등 집으로 가는 버스에는 성에가 꼈다.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 하나둘 사이로 이런 질문이 지나갔다.

“내가 30살 되기 전에 20대에 잘 한 건 몇 개가 있을까?”

우습지만 그 몇 가지 중에 ‘퇴사’가 있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내가 30살이 되기 전 가장 잘한 것 중 하나를 뽑자면 퇴사를 한 것이었다. 

누구도 반대했고, 나 자신도 생각지 못했다. 

3년을 다니면 한 달의 유급휴가를 주는데 그 한 달을 직전에 앞두고  ‘여행 좋아하니까 한 달 여행하다가 생각해’, ‘너한테 이직장은 정말 신의 직장이다. 좀만 더 버텨라.’ 등등의 말들을 해주셨다.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달 유급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지 못한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 모았던 돈도 있었고, 

회사생활하면서 방학이 없는 게 늘 아쉬웠는데 방학을 하면 생각이 좀 달라질까 싶었다.

퇴사를 한다고 하니 다들 한결 같이 말한다.

“어디로 이직해?” , “돈 좀 많이 모았어요?” , “뭐 할 건데요?’

내 답변은 똑같았다. “그냥요…”


3년 동안 매일 규칙적이면서도 반복적인 그러나 조금은 다이내믹했던 일들을 하면서도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째,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 

두 째, 여기서 더 이상은 아니다는 생각 

후자를 먼저 말해보겠다. 겉보기에 훌륭한 회사, 가족적인 분위기라 하지만 직원의 과다한 회사일, 불균형한 삶, 따를 수 있는 리더 부재 등등  무엇보다 3년 동안 일을 하면서 업무를 같이하는 동료들은 있었지만 나와 같이 일을 하는 선배가 없었다. 선배가 없다는 건 내가 마음대로 해서 좋기도 하고, 휴가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좋았지만 내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 좋다가도… 

아직 모르는 건 더 배울 나이인데 싶었다. 

(이건 이직을 하니 좀 더 알 것 같다. 매일 하나 쓰는 것도 꼼꼼하면서 때론 자신에 경험을 바탕으로 말해주는 선배가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여기서 1년, 2년 더 있으면 난 그냥 여기서 여기일 것 같았다. 

회사를 나오면서 “어머~엄지 씨 없으면 어떻게요”라는 말을 믿었다. 나름 애사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속한 조직에 애사심은 늘 많다.) 회사를 나오고 전전긍긍할 때쯤 들려온다. 후임이 너무 잘하고 있다는 사실. 다행이다 싶다가도 마음 한쪽에서는 아 x발 역시 회사는 회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 회사는 회사라는 사실을. 결코 ‘나’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돌아가 전자로 관련된 업무로 창업을 하려고 했다. 목돈이 있으니 아 이제는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어라 그런데 용기가 없다. 주변에 창업한 친구들이 있어서 여차여차하면 꾸려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한 달을 해보았다.  수입은 괜찮아 보였으나 지속해서 이어나갈 용기, 나라는 녀석은 꽤 안정적일 때 다른 걸 하고 싶어 하고,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막상 경력직으로 취업하는 취업시장도 만만치 않았다.  준비하면서도 힘들었지만 내가 다시 직장인이라는 직장생활을 다시 하고 싶다는 것에 스스로 놀랬다. 다시 취업하면서 하루하루에 감사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시간을 내어 즐거운 것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어느덧

새로운 곳에서의 100일이 지났다.

돌아보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지독하게 힘들었던 순간도 또 다른 문을 열면 잊히기 마련

또 다른 문을 열고 나아가는 과정도 힘들겠지만 가끔 뒷문도 바라보는 사람이 되자.

이제야 말하는 고백, 그때 퇴사는 참 잘했어!


여행을 가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사실 사치다

이리 짧은 시간에

먹고, 돌아다니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그러다 보면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오는데 

데스밸리 국립공원

외롭고, 여유로웠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이 모든 여유가 마음까지 스며들면 좋겠다.

오래도록,

데스밸리 국립공원
데스밸리 국립공원

살면서 다시는 안 만나고 싶은 놈들이 있는데. 

꼭 그런 놈들이 인생 잘 풀리더라

로드트립을 하면 만나는 재미는 '뜻밖'에 있지 않나 싶다.

스쳐지나가는 곳도,

평생을 살면서 다시 못 볼 풍경과 날씨 그리고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좋은 건 한국과 시차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휴가라도 가끔 연락 오는 알람에 일일이 반응 안 해도 되니까,

어쩌면 모든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기보다

순간순간 좋았던 기억이 모여

그 여행에 대한 기억이 남는 것 같다.

데스밸리 국립공원

우리가 조금 더 젊었던 어느 날에,

Youth라는 단어가 맴돌다

/

어제 하루 더 

젊었던 나의 청춘에게,

로드트립을 하며 중요했던 건 음악이 아니었나 싶다. 

데스밸리 공원 안은 로밍도 터지지 않아 

다들 라디오 음악에 의존했다. 

탁 트인 길을 달리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의 반가움이란 

손톱이 적당히 길었을 때쯤

여행을 마무리하고

딱 집에 가고 싶을 때,

같은 호텔, 같은 방에서 오랜 시간 보내게 되면

여행지에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것 같아 좋다.

데스밸리 국립공원 유베헤베분화구 (Ubehebe Crator)

여행이 끝나고

내 방,

내 침대에 누우면

무슨 꿈을 꿈 건지 생각하게 된다.

데스밸리 국립공원

세상은 이렇게 넓고,

다양한데

짧은 인생 동안 얼마만큼 볼 수 있을까,

다시는 못 갈 곳을 다녀왔다.


신기하다. 출근해서 5초 만에 여행 기억은 금방 잊고

기분이 별로인 것은.. 참으로 신기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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