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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씨 Mar 16. 2021

오늘 '불안'을 지우는 법을 되새겼다

1.

작년 5월, 근무하던 스타트업의 사업이 코로나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권고사직을 받았다. 한 달을 쉬고 구직활동을 해서 안정적인 글로벌 대기업에 입사했다.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입사 전에 들었던 업무와 실제 업무의 괴리가 너무 심했고 조직문화도 맞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신입이었다면 이 악물고 버텼겠지만 여기서 버티기보다 늘 생각해왔던 직종 변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고민 끝에 5개월 만에 퇴사를 하고 미리 알아본 웹디자인 학원에 등록했다.


내가 등록한 강좌는 6개월 코스였다. 취로 비자 상 아르바이트가 금지되어있어서 퇴사는 곧 수입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럴 때 외국인으로서 이곳에 사는 답답함을 절실히 느낀다. 비자로 허가된 활동 외에는 그 흔한 아르바이트조차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퇴사를 하고 공백기가 생길 때면 잊지 않고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자의에 의한 퇴사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못 받을 것 같았다. 자격조건에 쓰인 12개월의 가입기간이 눈에 거슬렸다.


회사에서 보낸 서류가 도착하자마자 헬로워크에 실업급여를 알아보러 갔다. 예상대로였다. 스타트업의 권고사직 후 실업급여를 받았고, 그 후의 근무기간(고용보험의 납부기간)이 5개월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신청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충격은 없었다. 그보다도 헬로워크의 공간이 주는 압박감과 초라함이 오늘의 나에겐 더 충격이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의든 타의든 직업을 잃고 새로운 일을 찾는 중인 사람들이다. 나는 제 발로 걸어 나와 새로운 걸 배우는 중임에도 지금의 내게 직장이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아마도 앞으로 반년 간 수입이 없다는 게 확정된 것과 사회에서 내 몫을 갖지 못한 부류에 들어간 듯한 느낌. 퇴사의 이유가 능동이든, 수동이든 상관없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드는 듯했다.


창구 너머의 저 직원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코로나 시대에 직장을 관두고 실업급여를 받자고 찾아왔으나 못 받고 마는 가엾은 사람으로 보일까? 아니, 사실 그들은 아무 생각도 없을 가능성이 120%다.



2.

2019년 3월, 나의 커리어 중에서 가장 많은 배움과 추억을 남겨준 회사를 그만두었다. 당시 직장인 7년 차를 맞이한 나는 많이 지쳐 있었고 무엇보다 이 회사에서 내가 원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오늘을 바꾸지 않으면 10년 후, 20년 후에도 이렇게 살아갈 거라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아직 가능성을 좇을 용기가 남아 있을 때 다른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퇴사를 한 후에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이를테면 커리어를 급턴하는 새로운 도전에는 어딘가 소극적이었다. 지금까지의 경력을 버려도 될지에 대한 불안, 실패에 대한 불안, 지금 직장이 없다는 불안. 이런 불안한 마음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던 중에 관심을 갖던 기업들에 연이 닿자 다시 회사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업무들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지금까지의 커리어의 연장선상이기도 했다.


'이러려고 그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닌데.. 지금 내가 해 봐야 할 일은 이게 아닌 거 같은데'


이 마음이 실직과 실패에 대한 불안을 이기는데 2년이 걸렸고 비로소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헬로워크를 다녀오고 나서 처음으로 초조했다. 빨리 다시 일하고 싶다, 계획대로 가을쯤엔 취직할 수 있을까, 이전의 연봉을 되찾는데 얼마나 걸릴까.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내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이런 온갖 불안과 초조함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불안해하고 주저하는 이유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때문이라면 하나도 신경 쓸 필요 없다. 그것은 숨 쉬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일인 동시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뻗어나가자 내 머릿속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물건들을 두 팔로 싹 밀어버린 듯이 깨끗해졌다.


대신 그 책상 위에 2가지만 올려놓았다.

오늘 내가 할 일을 천천히 초조해하지 않고 확실히 할 것.

예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마음껏 초조해하고 철저히 대처할 것.


그렇게 오늘 '불안'을 지우는 법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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