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사라질지도 몰라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걸 아는 사람들은 요즘 나를 만날 때마다 “산책하기 좋지? 애들도 좋아하겠다”라고 한마디씩 건넨다. 맞다. 산책하기 딱 좋은 계절을 지나고 있다.
이제 새해까지 78일이 남았다. 잠시 올해를 되돌아보면 황홀하지만 짧았던 봄을 지나, 길고 길었던 여름을 통과해, 곧 사라질 가을을 보내고 있다. 여름이 비현실적으로 길어지는 만큼 앞으로 가을은 점점 더 짧아질지 모른다. 친한 동료는 ‘가을’ 대신에 ‘갈’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제 도심에도 조금씩 단풍이 물들고 있다. 두껍지 않은 옷을 입고 가뿐한 마음으로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선선한 바람결을 느끼며 걷는 기분은 최고다. 특히 아이들과 발걸음을 맞추고 함께 산책할 때면 기분은 배가 된다. ‘킁킁킁’ 가을의 향기를 맡는 아이들은 오감으로 계절을 즐긴다. 아이들 덕분에 올해 가을도 감사히 기쁘게 보내고 있다.
요즘 내가 산책하는 곳엔 황금빛 벼가 어느새 익어 수확을 마쳤고 빨간 고추가 탐스럽게 영근 모습도 본다. 점차 화려해지는 고깔 옷을 입는 나무를 볼 때면 하루하루 변화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다. ‘올해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헛헛했는데 가을의 변화에 안심이 되었다. ‘이 계절처럼 올해의 나도 알고 보면 조금씩 물들고 있는 거겠지’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며칠 전 저녁, 카메라를 메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할 겸 동네를 짧게 걸었는데 그사이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가을이 주는 선물이 사방 도처에 깔려 있는데, 받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계절이 유한한 만큼, 하루하루 더 많이 걷고 보며 아낌없이 누리자. 그렇게 올해를 찬찬히 즐겁게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