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간
올해 겨울은 유달리 가을의 연장선 같았다. 11월 중순만 해도 봄나들이를 떠난 것 같은 날씨였고, 11월 말에도 얇은 코트를 입었다. 여름이 너무 길어서 가을이 짧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살짝 겨울까지 침범한 가을 덕분에 거리의 단풍과 낙엽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 거짓말처럼 올해 첫눈이 내렸다. 첫 번째 눈이니까 진눈깨비처럼 살짝 내리다 흩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덴 웬걸, 첫눈은 거리를 다 덮을 정도로 펑펑 쏟아졌다. 덕분에 가을 단풍 위 눈이 내리는 진귀한 장면을 보았다.
눈이 내리니 더 확실해졌다. 이제 겨울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사진이 취미이니 흰 눈이 점령한 달라진 세상을 빨리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정신없이 회사에 도착해서 일을 하면서도 ‘그사이 눈이 녹아 사라지면 안 되는데’ 하고 마음을 졸였다.
드디어 점심시간! 점심을 빠르게 먹고 카메라를 들고 회사 반대편으로 걸었다. 차가 빠른 속도로 다니는 도로여서 보행자 신호등이 있었다. 보행자 신호등을 누르고 아무도 다니지 않은 한적한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내 카메라에 눈의 세상이 담겼다. 눈이 워낙 마법처럼 신기하게 느껴져서 어떻게 찍든 내 눈엔 다 작품처럼 보였다.
정신없이 20분 정도 사진을 찍고 회사로 복귀하려는데 하늘에선 눈이 그치지 않고 더 펑펑 쏟아졌다. 사진에 집중하다 보니 눈이 쏟아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몰입의 순간을 느꼈다. 역시 계절은 속이는 법이 없었다. 기후변화로 조금씩 속도는 더뎌도 달라진 계절은 반드시 찾아왔다. 언제나 약속을 지켰다.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겨울은 견디고 버티는 시간이었다. 피부가 약해서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얼굴은 빨갛게 얼었고, 자주 손이 텄고, 양말을 두 겹 이상 신지 않으면 동상에 걸린 듯 발가락이 부었다. 그렇게 늘 얼른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겨울은 무척 특별한 시간이었다. 짧아진 해의 시계만큼 몸의 생체리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 우리 신체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는 여러 보호 장비가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함을 누릴 때면 온몸으로 충만함과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친한 동생에게 좋아하는 계절을 물은 적 있다. ‘겨울’이라는 의외의 답이 들려왔다. 겨울엔 온 세상이 조용해지는 그 고요함이 좋다고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라서 그 답변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올해 12월은 겨울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코트, 패딩, 장갑, 목도리...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좋아한다. 추운 날씨에 호로록 마시는 차도,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붕어빵도 좋다. 여전히 광활한 하늘에서 눈이 내릴 때면 황홀해지는 기분에 휩싸인다. 또 생각해보니 나, 겨울에 태어났네. 이번 겨울에는 짧아진 하루에 아쉬움을 가지기보단 겨울의 즐거움을 마음껏 맛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