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사이라면 언제 떠나야 하는가
나 힘드니까 건드리지 마-라는 얼굴로 회사를 다닌 지 3일. 평소라면 조금은 거슬리던 사람의 말도 그냥 흘려버리며 지낸다. 그래 너 마음대로 해, 나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힘들어서 너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어.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왜 이렇게 표정이 지쳤어 라며 하나같이 걱정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웃고 싶지는 않다. 때가 되면 웃을 것이다. 때가 되면 얼굴도 마음도 간도 좋아질 것이다. 아 술은 마시지 않는다. 집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와인을 한두 입 마시는 정도가 전부다. 만나는 친구들은 내가 5월에는 술을 마실 생각이 없다 하니 당황한다. 그냥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라고 하자, 우리 사이인데 어때 내 앞에서는 좀 그래도 돼.라는 다정한 말이 오간다. 그러나 그냥 스스로 무너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누가 옆에 있든 간에 상관없이, 사랑이 끝났다고 맡은 일을 대충 하고 싶지도 않고, 대충 입고 대충 먹고 싶지도 않으며,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을 뿐이다. 그렇게 버틸 뿐이다.
어제는 하얀 꽃을 사고 싶어 점심이 되기 전 화훼상가로 갔다.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하지만 비가 오기에 버스를 탔는데, 내 마음만큼 정치권도 어지러운 상황인지 시위준비가 한창이다. 버스를 타도 30분일 거면 그냥 걸어가자 하고 한 정거장 뒤에 바로 내려 우산을 펴고 걸어갔다. 토요일 오전의 이곳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리고 하얀 작약다발과, 리시안셔스 다발을 안은 채로 돌아왔다. 꽃은 두 개로 나눠 담아 집에 장식했다. 몰랐는데 리시안셔스는 가시가 꽤나 뾰쪽하다. 얼굴은 예쁘면서 가시는 장미보다 더 날카롭고 찔리기 쉬운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다듬고 나서 꽃병에 놓아두니 예쁘다, 예뻐서 소파에서 한참을 쳐다봤다. 내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혹은 우리가 서로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사이라면, 언제 떠나는 것이 맞는가. 운명은 늘 나를 울게 했다. 그것이 인생이라면 나는 언제 평안을 찾을 수 있는가. 평안이란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 과연 얻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사람은 구원이 될 수 없다- 내 20대를 관통했던 말이었으나, 30대의 나는 다시 사람에게서 구원을 찾고 싶었다. 스스로를 구하는 자만이, 사람에게서도 구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아직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 사람이란 말인가. 나는 언제쯤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