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고작 폼클렌징이었다

그게 정확히 내 엄지발가락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by 시루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을 갔다. 유치하게 이별했다고 긴 머리를 싹둑 단발로 잘라버리려는 것은 아니었고, 길고 덥수룩해진 앞머리를 좀 짧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금 있으면 5:5 가르마의 조선시대 소년이 되어버릴 것 같으니, 짧은 사이드뱅으로 산뜻하게!라고 요청했으나, 칼 같은 원장선생님은 코 정도의 앞머리가 얼굴형에 예쁘다며 가위를 멈추었다. 그래서 내 머리스타일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의 나구나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니다 어쩌면 사실 나는 변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대한 기대와는 다르게, 일상의 어떤 부분은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건강하게 먹고 과식하지 않는 것,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 퇴근하고 운동을 가는 것, 11시면 잠들 것, 상식적으로 미용실 간 날에는 운동정도는 빼도 되지 않나? 싶었지만 너 내일도 운동 못 가잖아-라는 마음의 말이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밀었다. 운동을 하고 씻고 나오니 개운하다. 잘 왔다 싶다, 얼굴에 생기가 좀 돋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하다 클렌징폼을 떨어트렸다.



고작 50ml 정도의 사이즈였다. 절반은 썼을 테니 더 가벼웠을 것이다. 그게 정확히 내 엄지발가락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별 감흥도 없었을 친구였다. 사람들이 많으니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잠깐 발가락을 감싼 채로 웅크렸다. 고작 폼클렌징이었다, 고작 작은 물건이었다, 고작 소모품 따위일 뿐이었다, 새로 바꿔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그런 것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 그런 것들이 나를 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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