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영화 졸업과 500일의 썸머 (2)

이제서야 졸업이다, 나를 키워준, 옥죄던, 형성한, 그 무엇인가에서

by 시루

졸업, 주인공 벤자민은 착하고 순종적인 아들이다. 아버지의 동업자인 로빈슨 씨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를 때도, 말 잘 듣는 아들 역할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았다. 로빈슨 부인은 관객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벤자민에게 명령을 내리고, 벤자민은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멍청해 보일 정도로 말을 따른다.



“내 딸 일레인과 데이트하는 일은 없도록 해”

“알겠어요. 부모님이 시키신 일이라… 정말 밥만 먹고 다시는 보지 않을게요.”



부모님과 로빈슨 부인의 상충된 명령으로 인해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그는, 고뇌하다 나름의 해결책을 찾은 듯 부인에게 변명한다. 그렇게 일레인과 데이트를 하러 간다.



그것이 첫 반항이었을 것이다, 일레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 벤자민은 처절하게 쏟아내듯이 말한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좋은 일이 당신이라고. 그러니까 모범생 인생에 주어진 모든 것들은 강제로 얻어진 것이었으나, 소년이 유일하게 가지고 싶어 한 것은 일레인뿐이었으니까. 그 마음을 보여주듯이 아버지가 선물한 빨간색 알파로메오는 그녀의 결혼식을 막으려고 달리다 처참히 버려진다. 마치 단 한 번도 귀중하게 여긴 적 없었다는 듯이.



영화의 후반부는 옛날 특유의 오버스러운 연출과 함께 급격하게 전개된다. 사실 일레인도 벤자민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말 잘 듣는 딸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것. 그녀는 결혼식을 막으러 온 벤자민을 발견하고는 잠깐 주저하더니, 그의 이름을 외친다. 자신을 구해달라는 비명이었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는 도망에 성공한다.



아 이제서야 졸업이다

나를 키워준, 나를 옥죄던, 나를 형성한, 그 무엇인가에서

진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500일의 썸머에서 썸머와 톰은 이 영화를 함께 보러 가고, 썸머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오열하듯 흐느낀다. 톰이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걱정하지만, 썸머는 이번에도 진짜 말은 하지 않는다. “아니야 그냥 울고 싶었나 봐-” 자연스럽게 넘어갈 뿐. 그녀의 깊이를 모르는 톰도 여전히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졸업의 어떤 부분이 썸머를 그렇게 울게 했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벤자민과 일레인이 버스를 타고 도망치던 그 장면에서야 나는 알았다.



졸업이다. 부모의 이혼으로써 믿지 못하던 ‘사랑의 영원’, 썸머는 이제 부모의 그림자에서 졸업함과 동시에, 그 순간 그것을 믿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날 그녀는 톰을 떠난다, “우린 best friend잖아-“라는 말과 함께. 톰은 그녀의 영원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은 나를 알아볼 것이다. 내 깊이를 알아보고 질문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500일의 썸머는 이건 사랑이야기가 아닌, 그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이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졸업은 사랑이야기인가? 또한 아니다. 사랑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렇기에 도망친 둘은 그 뒤로 행복할까 이런 질문은 불필요하다.



사랑은 진심으로 질문하고, 진심으로 답하는 것이다. 톰과 썸머도, 일레인과 벤자민도 그들 사이에 진짜 대화가 있었던가, 진짜 질문이 있었던가, 그 속에서 서로의 가장 깊고 약한 모습을 이해받았던가. 나 또한 낭만적 연애에 빠져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아무튼, 두 영화는 모두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You are the first thing for so long that I’ve liked.
당신을 만난 건 내게 처음으로 일어난 정말로 좋은 일이야.

The first person I could stand to be with
함께 있는 게 싫지 않은 최초의 사람이고

My whole life is such a waste
내 인생을 그렇게 낭비했다니

It’s just nothing
공허한 인생이었던 거야

- The graduate 中



졸업
마이클 니콜스 Prod.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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