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선택하게 되는 데에는 다들 다른 이유가 있다. 원장 선생님의 가치관, 담임선생님의 스타일, 원의 규모, 국가지원의 유무, 자택과의 거리, 출퇴근길의 접근성, 연장 보육의 유무, 엄마들의 선호에 따라 각기 다른 중요도에 따라 선택하기도 하고 선택되기도 한다. 처음으로 접한 ‘보육기관’은 낯설었다. 아파트 단지 내, 교회, 유치원에 함께 있는 원이 아닌 독립적으로 한건물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었다. 지하층부터 3층으로 보육 나이 만 0세부터 만 2세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첫 느낌에서 뭔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원장 선생님이 너무 바빠고 정신없어 보였다. 꼼꼼하고 체계적 인척을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면담은 뒤에 기다리는 상담자에 밀려 짧게 상담하고 아이들이 수업하는 걸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과 불안이 스며들고 있었다. 시간에 치여 준비를 하고 결제와 금전 관련해서만 급하고 강하게 강조한다는 점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니는 동안 원의 특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놀이학교로 출발한 이 어린이 집은 자율성과 즐거운 ‘놀이’에 초점을 둔 곳이었다. 아이들의 위생, 관리, 배변 교육, 식사교육에 치중하기보다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아이들을 놀게 하고 외부강사의 특활 수업과 행사에 치중을 두어 보여주는 것이 많았다. 내부와의 소통이 폐쇄적이었다. 블로그에 특활활동 사진을 확인하고 키즈노트로 아이들의 놀이 사항을 전달받았다. 아이들의 원생활, 발달 보육, 정서지원에 대해서는 피드백이 짧거나 불투명했다. 아이를 위탁하고 원의 시스템에 따라 전적으로 맡겨야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치중했던 아이의 위생관념, 식습관, 배변습관, 독서습관 등의 유지하려고 했던 가치관과는 상반되고 정도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어린이집 일상, 감정적 방황기)
-애기 밥과 친구들, 놀이 소통-
“하늘이 먹는 건 어때요? 선생님?.” “아~ 하늘이는 잘 먹어요~ 밥을 국에 한 그릇을 뚝딱 아구아구.”
“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잘못 먹는 건 어떤 게 있나요?”“(침묵) ”어머~ 하늘아 조심히 가야지~“
“하늘이 놀이는 주로 어떤 걸 하고 노나요? ”
“하늘인 친구들하고 너무 잘 놀아요~장난감도 잘 갖고 놀고 책도 좋아하고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책을 읽는 걸 좋아하죠~ 프레드릭도 읽어주는 것 같던데~ 잘 따라가나요?”
“(침묵) 지연인 책 읽는걸 정말 좋아해요~”
어린이집을 다니면 서로 피드백을 하고 맞추면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이었다. 담임선생님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질감이 늘어났다. 뭔가 허공에다 대고 얘기하는 느낌. 물어보는 것에는 대답해주지 않고 그저 잘 놀았고 그저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단걸 보통 때는 주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원 할 때마다 손에 사탕이 들려있고 초코를 찾는 횟수가 늘어갔다. 공지사항 등은 다 확인하고 정확히 한다던 담임선생님은 세세한 걸 물어보면 아이들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기 어렵다했다. 이 느낌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밥 먹는 것에 대한 칭찬도 좋지만 어떤 걸 잘못 먹는지 어떻게 가르치면서 배워가는지를 듣고,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가 갈수록 엄마와 선생님의 육아 연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사라져 갔다. 입장이 달라서일까? 처음 상담받을 때와 똑같이 말을 돌리고 급하고 빠르게 상황을 모면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블로그에 특활 사진도 올리고, 알림장에 놀이 내용도 기재해주는데 섞연치 않음은 나날이 쌓여만 갔다.
-배변 교육, 월간 교육 진행-
“선생님 하늘이가 집에서는 기저귀를 안 입고 변기에 가서 하는데, 원에서는 어떤가요? ”
“하늘이가 화장실을 간다고 말하지 않아요. 다른 애들은 다 말하는데 말이죠~”
“...... 그럼 저도 집에서 선생님께 말하라고 말해줄게요. 그러면 도움이 될까요?”
“애들은 억지로 하는 게 좋지 않아요~ 내년에는 화장실도 가깝고 그때 되면 하죠 뭐~ 걱정 마세요. 어머니~”
“선생님 월간 교육 표에는 000 놀이를 한다고 나와있는데, 잘 따라가나요?”
“(눈 돌림)”
마지막에 월간계획표까지 얘기할 때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은 있지만 나이 있는 신입에 대한 무시를 받을 까 봐 항상 당당하려 했던 담임선생님의 상처 받은 눈동자와 표정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게 까지 해야만 확인할 수 있고 그럼에도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나 역시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져 갔다. 신뢰는 금이 가고 불신은 붉어져만 갔다. 원의 행사 진행사항이나 공지 내용은 자기 선에서 발언하기 힘들고 원장 샘에게 확인 후 알려준다던 담임선생님은 여러 번 물어봐도 잊어먹고 처리가 안되면 이상하네요~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어느새 알림장에 쓰여 있는 얘기는 그저 듣기 좋은 얘기일 뿐이고 친구들 어울림 얘기는 전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린이집의 월간계획표나 식단표는 모양뿐이라는 생각이 들고(메뉴가 자주 바뀌고 명시되어 있는 것과 다르다.) 특별활동 일정은 상황에 따라 항상 바뀌어 내려놓게 되었다.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챙기려고 고군분투 했었다. 영양 좋은 반찬 해롭지 않은 재료, 아이가 먹기 좋은 반찬. 말투 하나하나에도 신경 쓰며 고민했다. 혹여나 아이의 마음에 상처 받지는 않을까? 나의 편협한 주관에 아이를 가둬두진 않을까. 피부에 대한 아빠의 걱정과 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나에게 물들어왔다. 일정과 공간이 체계적이고 확실해야 안심된다는 건 어느새 신념이 되고 있었고 그렇게 지켜온 나의 가정보육시간이 힘없이 무너져가는 나날들이었다. 내 생각을 밀고 나가기엔 지지자도 힘도 없었고,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을 찍고 있었다. 내가 이제껏 지키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2년 가까이 나를 내려놓기 힘들어하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뒤집어지는 나를 다 잡으면 지켜왔던 시간은 의미 없는 나만의 노력, 혼자만의 고집이었나? 머릿속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 지키고 어느 정도까지 포기해야 하는지 몰라 일일이 두드려 보고 가는 사이 나는 예민하고 우유부단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으로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