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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레짱 Apr 27. 2020

구립어린이집 이동기. 기관협력육아, 둘째육아의 시작

EBS <나도 작가다> 공모전

둘째 출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기 걸어놓은 어린이집 순번은 줄었다가도 멈추고 늘어서 알아본 어린이집 입학은 어려울 듯 보였다. 어디가 저출산인지. 적절한 보육기관을 찾으면 뭐에 써먹는 걸까? 어차피 가지 못하는데 말이다. 말이 좋아 ‘선택’이지 ‘간택’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출산 한 달을 앞두고 구립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하늘이 다른 곳 입학이 정해졌나요?” 간결한 전화 한 통은 그동안 관심을 놓지 않고 버틴 시간에 맞닿은 최초의 울림이었다. 엄마들 평판이 고르고 등원하기 좋은 거리. 아동인원이 20명 안짝의 관리가 되어 마음이 갈 즈음 구립으로 변경된 곳이었다. 맞벌이가 아닌 한 자녀 조건인데 어렵게 기회가 왔다. 출산을 앞두고 이동해서 가족에게 좋을 거란 보장도 없지만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준비가 번거롭고 변화가 걱정됐지만 거고 싶었다. 단 1년이라도 좋았다. 체계적인 보육 시스템이 우리에겐 필요했다. 파도가 들이치는 모래 위가 지쳐 친환경 인증 고무바닥이 깔려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그날부터 신랑과의 고민 어린 대화가 이어졌다.       

입학설명회 날 긴장됐다. 아파트 단지 안, 보안문을 지나 현관문 열리자 일렬 정대하게 서서 말끔한 옷을 입고 반기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놀이공간과 주방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정리대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보드판이 배치되어 있고, 깨끗하게 관리된 장난감들이 열 맞춰 정돈되어 예뻤다. 입학설명회를 위한 노트 철과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책장을 펼치니 궁금했던 내용들과 교육계획안이 기재되어 있었다. 각 선생님들의 소개 후 원장 선생님이 교육방침을 브리핑했다. 6명의 엄마들은 관심과 열의에 찬 모습들이었고 화사하지 않은 옷차림에 노트를 꼼꼼히 살피며 추가 내용을 기재하였다. 질의시간이 오자 둘째 출산으로 아빠의 늦은 등 하원을 조심스레 흘리는 나에게 해당 시간에 정확히 체크를 안내한 후 마음의 걱정을 풀어주는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문을 닫고 나오며 안도감과 동시에 신랑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걱정도 잠시 아빠의 개인면담을 마치고 등원하는 아이의 상태를 보면서 신랑은 변화했다. 선택이 좋지 않지만 버텼던 시간을 인정했다. 처음 육아에 대한 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안, 불신은 힘든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귀찮음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아이의 원생활이 블로그 공개가 아닌 비공개 카페에 조금씩 올라왔다. 월간 교육 표, 식단, 안내문 출력지가 매달 나눠졌다. 출석체크 전산 오픈 지연에 대해 빠른 대응과 명확한 답변이 돌아왔다. 알림장에 아이의 식사와 낮잠 시간이 변화되게 수치가 적혔다. 담임선생님이 친구들의 이름을 지칭하고 놀이시간에 일어나는 일화를 부풀리지 않고 기재해주었다. 웃음 그림과 부드러운 필체는 벽을 허물고 마음을 열었다. 걱정과 불신감 표현으로 담임선생님을 불안하게 하는 걸 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내려놓았다. 그러자 의견이 반영된 변화가 보였다. 불화의 씨앗이었던 배변 교육은 선생님의 세심한 관찰로 자연스레 타이밍을 잡아 기저귀에서 팬티로 전향이 되었다. 어느새 원 아이들 전원이 배변 교육을 진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관을 신뢰하고 서로 협력하는 육아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등원 시간. 아침을 안 먹고 유모차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하고 결국 지각 등원을 시키고 오는 길에는 영락없이 기억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나의 생존도 귀찮은데 어린 아기를 위해 기계적으로 밥을 먹고 눈을 뜨는 시간이 이어졌다. 낮에는 아이 돌봐야지 니 몸을 생각해야지 하다가 밤이 되면 우울하고 힘들다는 시어머니의 전화기 너머의 말을 들어야 하는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게 안간힘을 썼다. 지속되는 상황은 모든 게 내 탓이고 말 하나에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 자존감은 사라졌다. 신랑의 연일 이어지는 야근과 출장, 공공기관 경매 입찰을 위해 피 말리는 신경전 뒷얘기를 듣고 뿜어져 나오는 악의가 스며들어 불신이 차올랐다. 간혹 기분전환으로 친구를 만나 시원하게 풀고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 알싸한 알코올 향을 품고 거실에 누워있을 때면 미쳐 날뛰는 가슴을 아이를 바라보며 억누르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호르몬 때문이라며 웃었다. 그런 시간이 떠올려지는 등원 시간은 신랑의 육아참여로 사라졌다. 누구도 알려주지도 않는 육아시간과 휴직제도를 신랑은 필사적으로 찾아냈다. 이 조용한 싸움을 어떻게든 줄이겠다는 마음으로. 직속 상사의 세상 육아 너 혼자 하냐며 조롱의 말과 표정을 감내하고도 육아시간을 빼내어 등 하원을 본인이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신랑을 향한 공격성이 줄었다. 그 변화만으로도 세상이 밝아 보였다. 세 사람의 입맛을 맞추려고 애쓰느라 산으로 가고 있던 주방에 신랑이 들어왔다. 김치를 잘게 썰어 다진 오징어를 넣고 만든 부침개가 장떡을 지나 동그랗고 파삭한 전이 완성되어 있을 쯤에 내 안의 화는 잠잠한 강물 정도로 가라앉아졌다. 짝 맞는 식기와 깔끔한 흰색 접시가 직접 끓인 칼국수 옆에 세팅된 가족식탁을 찍어 sns에 올리기까지 되었을 때, 비로소 공동 육아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길었다. 부모세대와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지만 4인가족이 되기 위한 첫 변화였다. 이제 어떻게 변화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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