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연’이나 ‘운명’이라는 단어로 자신들의 사랑을 신화화하기를 좋아한다. 그저 ‘우연’이었을 얘기를 전설이나 민담쯤으로 만들어서 뭘 어쩌자는 거지? 어린 시절 나는 그게 매우 못마땅했다. 그러다 서른여덟에 구사일생으로 한 남자에게 구제 되다보니 “어머! 이건 운명이었어!”로 포장하게 되더라. ‘구제’라는 단어를 쓴 것은 내 주변인들 반응 때문이다. 다쓰베이더는 결혼식장에서 내 손을 그 남자에게 토스하면서 미안해서였는지 갑자기 남자를 업어줬고, 마이애미와 시스터는 그 남자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데다, 내 절친은 남자에게 ‘A/S 안 되고 반품도 금지!’ 라고 못을 박았다. 거의 해질녘 시장통 떨이 느낌.
남자, 그러니까 한방이 아버지와의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는 대서사시는 장장 15년에 걸친 인간 승리의 결실이다. 그 질기고 질긴 인연에서 한방이가 태어났으니, ‘응답했다! 1997!’ 쯤으로 명명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이야기를 라디오에 사연으로 보내 선물도 두둑하게 챙겨 받은 바 있다. 자, 지금부터 라디오 DJ로 빙의해서 다음의 풀 스토리를 읽어보자.
안녕하세요. 40대 주부입니다. 현재 저랑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을 알게 된 건 1997년, 대학 연합모임에서 였어요. 서글서글하고 훈훈한 외모에 (그때는 머리카락이 온전했다) 조곤조곤한 말투, 그리고 가끔씩 던지는 위트있고 유머러스한 한마디 때문에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죠. 게다가 공사판 막노동은 물론이고 도배 아르바이트 등 가리지 않고 하면서 학비며 용돈을 스스로 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스무 살 이후 단 한 번도 부모님께 손을 벌린 적이 없다고 말하는데 너무나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어떻게 그런 남자애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저는 남몰래 1년 동안 속앓이를 했습니다. 매일 저녁 남자애의 삐삐 연결음을 몰래 듣고 끊는 게 전부였어요.
그러다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그 남자애도 군대를 가게 되면서 그 후로 연락할 방도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아이러브스쿨’이 한창 유행이었죠. 제가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당연히 그 남자애였습니다. “혹시, 나 기억하니?” 메시지를 보냈더니, 다행히 기억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신촌 홍익문고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단둘이 만나는 첫 데이트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너무나 설렜던 첫 데이트는 날카로운 추억만 남겼습니다.
그 남자애는 한 마디로 싸가지가 없더라고요. 매너는 집에 놓고 왔는지 카페에 들어가는데 문을 열고 자기만 휙 들어가 버렸죠. 눈앞에서 쾅 닫힌 문을 열고 남자애를 따라 카페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억지로 끌려나온 사람마냥 시종일관 무표정에 단답형 대답을 하는 그를 보자 ‘아, 얘는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예의상 나왔구나!’ 오랜 기다림은 그렇게 실망만 남기고 끝났어요.
또다시 5년의 세월이 흘렀고 저는 우연히 이사준비를 하던 중, 수첩에서 그 남자애의 연락처를 발견하게 됐죠. 문득 서른세 살이 된 그는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랜만이라는 안부를 주고받고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죠. 그런데,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5년 전과 똑같더라고요. 이번에도 먼저 카페 문을 열고 자기만 쏙 들어가더군요. 또다시 눈앞에서 쾅 닫힌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아차 싶었어요. 마주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툭툭 단답형 대답을 던지는 그를 보면서 ‘아니 이럴 거면 뭣 하러 나온 거야?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야지’ 굳은 다짐을 하고 헤어졌어요.
그리고 4년이 흘러, 저는 소위 서른일곱의 노처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그 남자애에게 먼저 연락이 왔어요. 그 남자애도 아직 결혼을 안 한 모양이었습니다. 당연하죠. 그런 매너무식자가 연애를 잘 할 리가요. 다시는 안보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암요 암요 짐작하신대로 그 남자애는 카페 문을 벌컥 열고는 또 자기 혼자만 휙 들어가더군요.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웃음이 팍 터졌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라 그랬을까요? 포기했던 부분이라 그랬을까요? 아니면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랬을까요?
여전히 멀뚱멀뚱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남자애를 보며 선천적으로 오지랖을 타고난 제가 메뉴도 주문하고 대화를 이끌었죠. 그러면서 그간 제 맘을 닫히게 만들었던 문제의 카페 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남자애는 크게 당황하며 미처 몰랐다고 앞으로 고치겠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기껏 마주앉아 왜 무표정하게 있었느냐고 하니 부끄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스물두 살 때 처음 만났지만 서른일곱에 드디어 그 남자애와 저는 연애를 시작했고, 이듬해 결혼을 했습니다. 응답하라! 1997이 진짜 응답한 셈이죠.
세상의 모든 인연을 맺고 끊는 신이 있다면, 그는 15년 전 우리를 내려다보며 키득키득 웃었겠지. ‘야! 이것들아, 니들 15년 뒤에 애 낳고 살아!’ 훗날 이리 될 것을 알았더라면 15년간 다른 남자들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대며 감정 낭비를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때 한방이를 낳았더라면 벌써 20대가 되어 있을 테고, 나는 마흔 넘어 극한직업 육아로 개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그저 있는 그대로 'As you are'하게 상대를 받아들이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여기 발렌틴 이라는 여자의 사랑도 그래서 복잡하게 꼬인다.
프랑스 파리 거주. 대학교수 자격시험 준비 중인 취준생.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와 더불어 3대 책받침 여신이었던 소피마르소의 리즈시절 꼭지점 미모 코팅 캐릭터. 오만방자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여주인공이나 소피마르소의 얼굴로 그냥 설득시켜버림
전문대에서 강사로 일하며 대학교수 자격시험에 인생을 건 발렌틴. 그러다 딱 하루 스키장에 놀러갔을 뿐인데 아 이놈의 인기란... 이번에도 남자 하나가 첫눈에 반했다고 쫓아온다. 그녀도 남자가 싫진 않았는데 이유인 즉, 8개월 전 남친과 헤어진 이후 섹스가 너무 고팠던 것이다. 그래서 중대한 시험을 앞두고 그저 하룻밤 즐겨볼까 싶었던 그녀.
남자와 만나기로 한 날, 하얀색 브래지어를 했다가 이내 검정색 망사 브래지어로 갈아입고 가방 속에 칫솔까지 챙기며 원나잇 스탠드의 빅피처를 그린다. 하지만 속내를 들키고 싶진 않아 일부러 두꺼운 망토 코트에 머플러를 칭칭 감고 데이트 장소에 나타나, ‘제가 사실 수업이 있어서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어요.’ 이런, 여우 중에 상여우다.
‘사랑은 몰래 온 손님’이라는 영화 <스물>의 대사처럼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발렌틴도 남자에게 푹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5년간 준비해 온 자격시험을 앞두고 있고 남자는 전국의 클럽을 돌며 공연을 하는 밴드 연주자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는 탓에 남자는 밤새 차를 달려 발렌틴의 집 앞으로 오고, 그녀 역시 기차에서 열공하며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문제는 발렌틴의 돌직구 스타일이다. 뭐든 맘에 안 들면 기어이 한 마디 하고야마는 거침없는 샤우팅의 소유자로, 길거리에서 휴지 버리는 사람, 남의 차를 박고 내빼는 사람, 흑인에겐 담뱃불을 안 빌려주는 백인 남자에게 냅다 소리부터 지르는 겁대가리 상실의 전형. 한마디로 제멋대로다. 그렇다보니 남자는 그녀를 미칠 듯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고집과 성질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 남자의 속마음을 알게 된 발렌틴. 하필 자격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구술시험 문제로 ‘사랑’에 관한 질문을 뽑게 된다. 그리고 때마침 면접장에 나타난 남자를 향해 발렌틴은 시험인 듯 시험 아닌 듯 세상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사랑론을 열변한다. ‘몰리에르’의 희곡 <인간혐오자>와 ‘알프레드 드 뮈세’의 희곡 <사랑은 장난으로 하지 마오>를 인용하면서.
<발렌틴> :
몰리에르의 희곡 <인간 혐오자>의 남자 주인공 알세스트는 오직 셀리멘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길 바라는 이기적인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셀리멘은 자유로운 개성의 소유자였습니다. 당시로선 매우 드문 여성이었죠. 그는 마지막까지 그녀가 변하길 바라지만 상대를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며 누구도 그럴 권리는 없습니다.
셀리멘이 알세스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날 사랑한다면 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나도 지금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죠. 17세기부터 지금까지 바뀐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사랑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거든요.
전 여러분께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행복보다 상대의 행복이 더 소중한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준비가 됐나요?
‘알프레드 드 뮈세’의 희곡을 인용하겠습니다.
모든 남자는 거짓말쟁이고 수다스럽고 일관성이 없으며 비열하고 위선적인 겁쟁이며 자존심이 강하고 쾌락을 추구한다. 모든 여자는 변덕이 심하고 허영심이 많으며 타락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단 하나 신성한 것이 있다면 불완전한 남녀의 결합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 완벽해지려는 이유는 아니다. 나의 부족함을 상대로 하여금 채우려고 작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 자신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는 것이다.
소설가 박민규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서로를 간호하는 느낌으로 걸어가던 길고 긴 골목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골목...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 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크아! 사랑은 불완전한 서로를 간호하는 일이로구나. 기꺼이 그 불완전한 사람 하나를 끌어안기로 하는 거구나.
남편과의 첫 데이트에서 그가 카페 문을 혼자 열고 들어가고, 주문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 얼레벌레 하고, 카페를 나와서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변에 나를 세우고 걸었다 한들, 그게 그 남자의 본질을 정의할 수 있는 핵심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건 나는 응당 남자라면 이렇게 여성을 배려해야 하는 거 아냐? 하면서 매너를 남자에게만 바라는 편협한 답정너였다. 그렇다고 남편이 잘한 것도 없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남중-남고-공대-군대 라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프리패스 같은 변명으로 대신했는데 스스로 약속하고 나온 자리에서 썩소를 날리며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필요까진 없었던 거다. 한참 모자란 두 남녀는 15년 전 풋풋했던 시절 처음 만났지만, 이기적이고 무지했던 탓에 시간을 돌고 돌아 서른일곱에야 비로소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소피 마르소’ 언니는 1966년생이다. 그런데 아주 옛날 사람 같은 이미 천수를 누린 느낌이랄까. 그런 아우라가 있다. 전설의 시작은 1980년 영화 <라붐>이었다. 시끄러운 파티장에서 남자애가 헤드폰을 씌워주자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헤드폰 속 음악 ‘Reality'에 맞춰 남자애와 춤을 추던 열네 살 소녀. 그 장면에 버금가는 심멎 장면이 이 영화에도 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감독이 <라붐>의 ’클로드 피노토‘ 감독이다. 그야말로 언니 CF 전담 감독인 셈이다. 스키장에서 남자 주인공과 단둘이 곤돌라에 탄 언니가 ’You call it love‘에 맞춰 두둥 여신 강림을 알리는 장면이 백미다. 얼굴을 꽁꽁 가린 두꺼운 패딩 모자부터 젖히고, 빨간색 체크 목도리를 푼 다음, 고글을 벗고, 스키마스크까지 쏙 벗어버리는 순간!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심장 쫄깃하다. 그 뒤에 어떤 얼굴이 있는지 아니까. 와아아 셀프 탄성이 나온다!
개봉| 1989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장르|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103분
감독| 클로드 피노토
배우| 소피 마르소(에스페라 발렌틴) 뱅상 랭동(에두와르 젠슨)
* 우주의 기운이 우리 둘을 감싸고 있다 아이가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중에서)
* 사진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