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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맘 천준아 Mar 11. 2021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S#3.

S#3.



다쓰베이더가 우리 집에 행차했다. ‘내가 니 애비다!’(아임 유어 파더!) 라는 스타워즈 속 다쓰베이더 대사를 빌려, 나는 친정아빠를 ‘다쓰베이더’라 칭해 왔다. 엄마는 ‘마이애미’. 아직 미국 땅을 밟아본 적 없지만 언젠가 마이애미도 가보고 싶고 뭐 그런 중의적인 나만의 유희다.     


2020 여덟 살이  한방이는 코로나19 창궐로 유치원 졸업식도 건너뛰었고, 초등학교 입학식도 생략한  초딩이 되었다. 시절이  수상한 터라 친정부모도 반년이 지나서야 제법 초등학생 꼴을 하고 있을 아이를 보러왔다. 한방이는 전교생이 100  남짓한 작은 학교에 다닌다. 게다가 1학년은 고작 14명뿐이라 다른 학교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때도 녀석은 꼬박꼬박 등교를 했다.     


오랜만에 손주를 본다는 설렘도 잠시, 다쓰베이더와 마이애미는 하교하는 녀석을 보고 얼음이 되었다. 녀석이 신발 한 짝만 신은 채 깽깽이로 펄쩍펄쩍 뛰면서 집으로 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깽깽이로 뛰는 게 신이 나서 연신 까르르거렸다. 다른 신발 한 짝은 어디에 있느냐 물었더니, 신발을 하늘높이 걷어차서 학교 지붕 위로 던지는 데 성공했다고 으쓱한다. 심지어 지켜본 친구들이 부러워했다나 뭐라나. 한껏 어깨뽕이 올라간 채 득의양양한 녀석을 보며 다쓰베이더와 마이애미는 허참만 찾았다. 허, 녀석, 참. 그들은 큰딸인 나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저런 어이없는 상황을 맞닥뜨린 적이 없었던 것이다.     


교실에 연필 한 다스를 가져가면 며칠 새 죄다 잃어버리고, 교과서나 숙제를 안 갖고 오는 건 당연지사. 갖고 싶다고 해서 맘먹고 사주면 친구들에게 모두 줘버린다거나, 싹 잃어버린다거나. 어쨌건 녀석의 손에 들어간 물건들은 얼마 안 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였다. 사실 사내 녀석 키우는데 이런 에피소드는 애교 수준인데 이게 매일 반복되면 치명적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샤우팅이 용솟음치고 발라드 취향의 엄마는 본의 아니게 록커가 된다.

     

내가 낳은 아이가 내 레이더망을 자꾸 벗어나는데 손쓸 도리가 없다. 아무리 애걸복걸 타일러도 보고 윽박질러도 전혀 행동의 변화가 없으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나는 저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저 아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자식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란 무엇일까.









폴 맥클레인

1900년대 초반, 미국 몬태나주 시골 거주. 교회 목사 아버지의 차남으로 직업은 월간 낚시(?) 기자쯤 되나 일은 주로 얼굴이 다 하는 편. 일명 빵형, 빵오빠 라 불리며 질풍노도의 반항아가 체질인 인물






부모 말이라면 찰떡같이 알아듣는 큰 아들 노먼과 개떡같이 알아듣는 둘째 폴이 있다. 목사인 아버지는 홈스쿨링을 하며 아들들의 교육을 담당하는데 지독한 빨간 펜 성애자다. 작문 숙제를 내주고는 끊임없이 빨간 펜으로 직직 그으며 아들들의 인내력 지수를 높이는 데 애쓴다.      


큰 아들은 군말 없이 잘 크는데 둘째 녀석이 좀 이상하다. 고작 여덟 살인데 음식 취향이 유별나서 죽어도 귀리를 먹지 않는다. 목사인 아버지는 하나님이 주신 먹을거리를 감사할 줄 모르고 편식하는 녀석이 꼴 보기 싫다. 해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귀리를 먹기 전엔 식탁에서 못 일어나게 한다. 그런데 요 녀석 보게? 폴은 몇 시간을 식탁에서 버티며 기어이 애비를 이겨먹는다.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사춘기가 된 폴은 뭐 말 다했다. 괜한 객기에 작은 나무배를 빌려 타고 가파른 폭포를 래프팅해서 내려온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지나 빌린 배는 완전히 부서져 부모의 빚만 가중시킨다. 또 성인이 되어서 만나는 여친은 하필 인디언으로, 일부러 인디언 제한구역인 술집에 여친과 동행해 보란 듯 질펀한 춤을 땡기는 똘끼까지 작살이다. 직업은 지역 신문사 기자지만, 푼돈 모아봤자 푼돈이라는 경제관념을 가졌는지, 허구한 날 밑장빼기 도박에 빠져 빚으로 잔치를 할 판이다.     


그에 반해 형 노먼은 고향을 떠나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교수 자격을 얻어 금의환향한다. 큰 아들은 늘 기대를 벗어난 적이 없지만, 부모에게 작은 아들의 존재는 아무리 감싸 안으려 해도 품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죽기 전 아버지는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 중에 둘째 아들에 대한 자신의 안타까움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언젠가는 어려움에 부딪힌 가족에 관해 같은 질문을 할 것입니다. ‘도와주고자 하지만 주여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흔한 경우지만 우리가 주려고 해도 거절을 당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 문장이 나를 울렸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는 얘기. 말장난 같은 이 문장을 나는 한방이의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모든 행동을 이해까지 한다면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반드시 이해가 사랑의 필수조건이 되는 건 아니다.     


동네가 떠나가라 한방이를 잡은 다음, 늦은 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회개하고 속죄하는 나란 엄마, 너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온전히 너를 사랑한단다. 물끄러미 아이를 향해 그렇게 되뇌고 마음을 다잡아도 며칠을 못 간다. 이해 못함이 주는 답답함은 화가 된다. 아이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 그런 나의 나약함과 유약함에 진절머리를 내는 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려지는 장면이 플라잉낚시를 하는 세 부자의 모습이다. 송어가 많은 강어귀 마을에 자리를 잡은 목사 아버지는 ‘사도 요한’도 어부였다면서 낚시에 남다른 부심을 드러낸다. 어려서부터 노먼과 폴은 아버지에게 플라잉낚시를 배운다. 형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가르쳐 준대로 시계의 10시와 2시 사이로 끊임없이 낚싯줄을 던진다. 하지만 폴은 모든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다. 그때 그 모습을 경이롭게 지켜보는 형의 내레이션.          



<노먼>  :

대단한 것을 봤다. 폴이 처음으로 아버지의 가르침을 넘어섰다. 자신만의 리듬을 터득했다          



먼 훗날 형은 동생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폴은 분명히 훌륭한 낚시꾼이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그게 전부는 아니야. 아름다운 아이였어.’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것은 내 프레임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미가 있다. 다르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 씬의 한 수 |     



이 영화는 놀랍게도 실화다. 시카고 대학교수가 된 첫째 아들 ‘노먼 맥클레인’이 가정사를 토대로 출간한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이 영화를 떠올리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결정적 장면이 있는데 물결이 반짝이는 너른 강가에 서서 긴 낚시 줄을 휘휘 던지는 모습이다. 아마도 카페 인테리어로 영화 포스터 걸어두는 게 한창 유행이었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겠지 싶다. 오래도록 그저 낚시 영화로 알고 있었는데 낚시는 그저 미끼일 뿐이다. 물론 더한 미끼가 있다. 송어를 잡는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 미모는 그 자체로 훌륭한 미끼다. 내가 송어라도 기꺼이 그 낚시 바늘을 물기 위해 온 몸을 튕겨 뛰어 오르리. 이번에 보면서 또 놀란 것은 ‘조셉 고든 래빗’이 아기아기한 모습으로 어린 시절 노먼 역으로 출연했다는 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개봉| 1992년

등급| 12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23분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배우| 브래드 피트(폴 맥크레인) 크레이그 셰퍼(노먼 맥클레인)

          


|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영화 ‘신세계’ 중에서)

| 사진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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