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어느 여름밤, 한 청년이 늦은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었다.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은 끝없이 스크롤되는 피드로 가득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던 사건은 이미 묻혀 있었다. 대신 새로운 키워드와 영상, 자극적인 뉴스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댓글창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그 열기는 금세 다른 화제로 옮겨갈 것이 뻔했다.
청년은 문득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가방 속에서 늘 함께 다니던, 그러나 거의 열어보지 않았던 노트였다. 빈 페이지 위에 그는 세 문장을 적었다.
1. 나는 무엇을 믿는가?
2.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3. 내 선택은 누구의 언어로 쓰였는가?
펜 끝에서 울림이 번졌다. 단순한 메모였지만, 청년은 처음으로 ‘좋아요’나 ‘조회 수’가 아닌, 자기만의 질문과 마주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정보는 풍요로웠지만, 진리는 희미했다. 매일같이 수많은 뉴스와 게시물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붙잡아줄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접할수록 확신은 줄어들고, 불안은 커졌다.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노트 위의 질문은 달랐다.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던 그에게, 질문은 나침반처럼 다가왔다. 답은 없었지만, 질문을 붙드는 순간만큼은 자신이 다시 주체가 된 듯했다.
청년은 떠올렸다.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했던 말, “철학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철학은 네가 왜 사는지를 묻는 순간 시작된다.”라는 말이었다. 그때는 피곤한 얼굴로 대충 흘려들었지만, 오늘 밤 그 말은 낯설 만큼 선명하게 다가왔다.
밤이 깊어가고, 창밖 도시의 불빛은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청년의 손끝에서 적힌 세 문장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빛났다. 그는 직감했다. 이 질문들이야말로 자신이 다시 걸어가야 할 출발점이라는 것을.
“한 권의 여정을 덮으며, 우리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간다.”
28회의 여정은 단순한 철학사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논쟁의 지층을 따라, 청년 세대의 현실 문제와 맞닿은 질문을 다시 꺼내는 과정이었다. 이제 그 지층을 갈등축별로 재구성하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핵심 테제를 다시 정리해 보자.
등장 인물: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 지젝과 바디우
- 소피스트 vs 소크라테스: 말은 설득의 도구일 뿐이라고 본 소피스트, 그리고 말의 이면에서 진리를 캐내려는 소크라테스. 여기서 시작된 질문은 “언어가 진리를 밝히는가, 가리는가?”였다.
- 비트겐슈타인 vs 데리다: 언어 게임 속 규칙에 따라 의미가 형성된다고 본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언어 자체가 끊임없이 미끄러져 결코 고정될 수 없다고 본 데리다. 디지털 언어 시대의 모순을 드러낸 대목이었다.
- 지젝 vs 바디우: 지젝은 욕망 자체가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있음을 폭로했고, 바디우는 사건의 충실 속에서만 새로운 진리가 열린다고 보았다.
핵심 테제: 말은 단순히 세계를 비추는 창이 아니라, 세계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설득이 곧 진리가 되는 순간, 진리는 빈자리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질문 없는 수사(修辭)는 곧 진리의 상실이다.
등장 인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와 공화주의자들, 한나 아렌트와 조르조 아감벤
- 플라톤 vs 아리스토텔레스: 이상 국가를 설계한 플라톤과, 현실의 제도를 분석한 아리스토텔레스. 이상 없는 현실은 표류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폭주한다는 긴장을 드러냈다.
- 마키아벨리 vs 공화주의자들: 권력의 냉혹한 기술을 중시한 마키아벨리와, 시민의 덕성과 참여를 중시한 공화주의자들의 대립.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보여주었다.
- 아렌트 vs 아감벤: 아렌트는 자유로운 정치적 행위를 민주주의의 심장으로 보았지만, 아감벤은 국가 비상사태가 개인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환원시킨다고 경고했다.
핵심 테제: 공적 자유는 제도와 시민성의 합성물이다. 제도 없는 시민성은 무력하고, 시민성 없는 제도는 공허하다. 정치적 자유는 이 둘의 긴장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등장 인물: 칸트와 공리주의자들, 롤즈와 노직
- 칸트 vs 공리주의: 칸트는 보편적 도덕법칙을,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했다. 원칙과 결과의 균형 문제는 여전히 뜨겁다.
- 롤즈 vs 노직: 롤즈는 정의를 공정으로 보고 재분배를 정당화했지만, 노직은 자유권과 최소국가를 옹호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현대적 버전이었다.
핵심 테제: 제도는 원칙과 효용의 교차점에서 설계되고, 개인의 삶은 이 교차점에서 선택된다. 정의 없는 효율은 폭력이고, 효율 없는 정의는 공허하다.
등장 인물: 마르크스와 스미스, 뒤르켐과 베버, 그리고 AI 윤리 논쟁 속의 벤담과 밀
- 마르크스 vs 스미스: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을 강조한 스미스와, 그 속의 착취와 소외를 비판한 마르크스. 오늘날 플랫폼 자본주의 논쟁의 전신이었다.
- 뒤르켐 vs 베버: 사회 구조의 힘을 강조한 뒤르켐과, 개인의 행위와 의미를 강조한 베버. 현대 직업윤리와 조직문화를 읽어내는 쌍안경이 되었다.
- 벤담 vs 밀: 집단 행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벤담과, 개인 존엄과 질적 행복을 중시한 밀. AI 알고리즘 시대, 집단 효율과 개인 권리의 충돌을 보여주었다.
핵심 테제: 기술과 경제가 효율을 가속할수록, 의미와 존엄은 협상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협상 없는 효율은 공동체를 붕괴시킨다.
등장 인물: 니체와 키에르케고르, 니체와 프로이트, 하이데거와 포퍼
- 니체 vs 키에르케고르: 신의 죽음 이후, 절망을 넘어선 실존적 결단(키에르케고르)과, 힘의 의지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도전(니체).
- 니체 vs 프로이트: 무의식의 충동을 본 프로이트와, 도덕과 권위의 허위를 폭로한 니체. 인간 내면의 갈등을 드러냈다.
- 하이데거 vs 포퍼: 존재의 의미를 물은 하이데거와, 과학적 비판 가능성을 강조한 포퍼. 진리 탐구의 방법론적 긴장을 남겼다.
핵심 테제: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기준점이다. 존재의 물음이 사라진 사회에서 비판은 길을 잃고, 정체성은 타인의 언어에 종속된다. 불안은 우리의 존재가 깨어 있다는 증거다.
28편의 논쟁은 거대한 파편처럼 흩어져 보이지만, 그 지층을 따라가면 단 하나의 맥락에 수렴한다.
“진리는 고정된 답이 아니라, 질문과 대화 속에서만 드러나는 여정이다.”
우리가 걸어온 여정은 정답의 축적이 아니라, 질문의 확장에 있었다. 이제 그 질문을 바탕으로, 청년 세대는 자기 시대의 답을 새롭게 써야 한다.
책의 첫 장,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했다.
“정보는 무한히 쏟아지는데, 정작 마음에 남는 것은 희미하다. 청년 세대는 ‘정보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갈증을 느낀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갈증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28편의 철학적 여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프롤로그가 던진 문제의식 ―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리를 잃어버린 청년 세대의 갈증 ― 은 단지 도입부의 수사적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논쟁의 배경이자 종착점이었다.
청년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보와 함께 시작되고 끝난다. 알고리즘은 취향에 맞는 영상을 추천하고, 뉴스 속보는 몇 분 단위로 갱신된다. 그러나 이 풍요는 역설적이다. 정보가 많을수록 판단은 피상적이 되고, 깊은 사유는 밀려난다.
- 빠른 답의 습관: 시험, 스펙, 면접, 업무에서 요구되는 것은 깊은 사유가 아니라 빠른 정답.
- 즉각적 반응의 구조: ‘좋아요’와 조회 수가 사실과 가치의 기준을 대신한다.
28편의 철학적 논쟁은 바로 이 ‘질문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시도였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질문은 답을 유예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인간을 다시 주체로 세우는 행위다.
정치와 사회의 구조는 청년들의 갈증을 더욱 심화시킨다. 선거철이 되면 수많은 공약이 쏟아지지만, 대부분은 임기 안에 눈에 띄는 성과로 축소된다. 청년의 삶은 몇십 년의 시간축을 따라 흘러가는데, 정치의 시간은 4년, 5년 단위로만 움직인다.
아렌트와 아감벤의 논쟁은 이 간극을 드러냈다. 정치적 자유를 외쳤던 아렌트와, 생명정치의 포획을 경고한 아감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졌다. “누가 인간의 시간을 설계하는가?”
청년이 철학적 시민으로 서지 않는다면, 정치의 시간은 청년의 미래를 대신 거래한다. 에필로그가 강조해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청년 스스로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만, 정치와 권력의 단기성이 견제된다.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의 논쟁은 오늘날 디지털 언어의 풍경과 겹쳐진다.
- 언어 게임: 규칙 속에서 의미가 형성되지만, 규칙은 공동체가 정한다.
- 해체: 의미는 끊임없이 미끄러져 고정되지 않는다.
SNS의 해시태그, 숏폼 영상, 밈(meme)은 이런 구조를 현실에서 증명한다. 청년들은 매일 언어 게임 속에서 의미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그 의미가 하루아침에 뒤집히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철학적 성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젝과 바디우의 대립은 청년 세대가 붙들어야 할 ‘사건의 진리’를 환기했다. 단순히 유행하는 이슈가 아니라, 시대를 흔드는 사건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진리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충실히 붙들고 실천하는 순간에 생겨난다.
청년들은 종종 철학을 ‘비현실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28편의 논쟁은 철학이야말로 가장 실질적인 힘임을 보여주었다.
- 니체는 불안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라고 했다.
- 칸트와 롤즈는 제도와 정책의 공정성을 측정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 뒤르켐과 베버는 사회 구조와 개인 행위의 균형 속에서 직업윤리의 길을 제시했다.
철학은 느림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느림은 무능이 아니라 판단의 인프라다. 빠른 답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철학적 느림은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생존 기술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확인한 것은, 철학은 혼자 앉아 묵상하는 학문이 아니라 대화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에서 질문을 던졌고,
공자는 제자들과의 짧은 문답을 통해 가르침을 확장했다.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이 대화의 복원이다. 댓글창의 언쟁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고, 불편한 차이를 견디는 대화. 민주주의는 투표 이전에 반드시 이런 대화를 필요로 한다.
프롤로그가 제기한 문제 ― 정보 과잉, 빠른 정답, 불안정 노동, 정치의 단기성, 청년의 체념 ― 은 이제 에필로그에서 새로운 언어로 다시 결합된다.
- 철학의 실용성: 느림과 질문은 무능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다.
- 알고리즘 시대의 주권: 질문권을 회복하는 것이 곧 의미의 주권 회복이다.
- 정치의 한계: 청년 스스로 질문하지 않으면 미래는 임기의 벽에 갇힌다.
- 대화의 복원: 진리는 고정된 답이 아니라,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여정이다.
“철학은 교양의 장식이 아니라, 사회의 설계도다.”
28편의 논쟁은 방대한 철학사와 현대적 쟁점을 아우르며 흩어진 조각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을 관통하는 원리를 뽑아내면 다섯 개의 대원리로 정리된다. 이 다섯 원리는 곧 청년 세대가 미래를 설계하는 지적 나침반이 된다.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서 던졌던 질문, “정의란 무엇인가?”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테네 시민들이 당연시하던 믿음을 흔들고,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지적 충격이었다. 질문은 곧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유를 여는 문이었다.
오늘날 청년들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뉴스는 사실에 근거하는가?”
“이 정책은 진정 청년을 위한 것인가?”
“내가 지금 추구하는 목표는 나의 언어인가, 타인의 언어인가?”
핵심 메시지: 질문 없는 사회는 권력자의 독백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질문이 살아 있는 사회는 진리가 새롭게 태어나는 공간이 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공리주의자, 루소와 홉스의 대립은 모두 하나의 긴장을 보여준다.
이상 ↔ 현실
원칙 ↔ 효용
자유 ↔ 안정
한쪽으로 기울면 사회는 왜곡된다. 현실 없는 이상은 폭주하고, 이상 없는 현실은 표류한다. 원칙 없는 효율은 잔혹해지고, 효율 없는 원칙은 공허하다. 자유만 강조하면 무질서로, 안정만 강조하면 독재로 흐른다.
핵심 메시지: 사회는 늘 이 양극의 줄다리기 속에서 움직인다. 청년 세대의 과제는 이 균형을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창조적 인간, 키에르케고르가 강조한 신 앞의 결단, 바디우가 제시한 ‘사건에 대한 충실’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유란 순간의 감정이나 기분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결단의 지속성이라는 점이다.
청년 세대가 진정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그 질문이 자유의 본질을 드러낸다.
핵심 메시지: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 의무 없는 자유는 방종이고, 책임을 감수하는 자유만이 인간을 주체로 세운다.
루소의 일반의지, 롤즈의 정의론, 아렌트의 공적 자유는 모두 같은 축을 향한다. 사회는 개인의 사적 선호의 합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향한 기획이라는 점이다.
청년 세대의 일상에서 이 원리는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내가 사는 집값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전체의 불평등과 연결된다.
내가 쓰는 플랫폼 노동 앱은 편리함만이 아니라 노동권, 사회보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내가 남기는 댓글 하나는 공적 담론의 질을 결정하는 작은 조각이다.
핵심 메시지: 공공성 없는 개인의 자유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공동체 전체의 선을 고려할 때, 나의 삶도 더 안정되고 의미를 얻는다.
하버마스가 강조한 ‘의사소통 행위’와 소크라테스의 문답, 공자의 짧은 문답은 모두 대화를 철학의 심장으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합의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현대 사회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기후 위기,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이념 대립은 언제든 터져 나온다. 그러나 갈등이 곧 분열일 필요는 없다. 대화는 갈등을 드러내되 파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만든다.
핵심 메시지: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는 선동과 증오가 채워진다. 그러나 대화가 살아 있는 사회는 불편해도 건강하다.
28편의 여정이 남긴 교훈은 다섯 가지 원리로 압축된다.
1. 질문의 원리: 좋은 질문이 사회를 바꾼다.
2. 균형의 원리: 양극의 긴장 속에서 미래가 설계된다.
3. 책임의 원리: 자유는 결단의 지속성이다.
4. 공공성의 원리: 함께의 이익이 나의 삶을 지탱한다.
5. 대화의 원리: 합의가 아니라 이해 가능성이 민주주의의 심장이다.
“이 다섯 원리가 사라질 때 사회는 흔들리고, 살아날 때 미래는 열린다.”
철학의 원리는 추상적인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반드시 오늘의 구체적 삶과 사회 문제 속에 닻내려야 한다. 28편의 여정이 남긴 다섯 개의 대원리를, 청년 세대가 직면한 현실의 쟁점 위에 직접 얹어보자.
오늘날 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세대 정의의 문제다.
“2050년의 지구는 누가 책임지는가?”
“지금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비용은 왜 미래 세대가 아닌 현재 세대가 부담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살아날 때,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막연한 데이터가 아니라 현재의 윤리적 선택으로 다가온다. 질문의 원리는 기후 위기를 내 삶의 문제로 바꿔낸다.
AI의 발전은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일자리 불안을 증폭시킨다.
기업은 비용 절감을, 청년은 생존을 우선한다.
정부는 혁신을, 노동자는 안정성을 요구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효율과 정의, 혁신과 안전망 사이의 균형이다. 철학 없는 기술 발전은 인간을 수단화하고, 과도한 규제는 미래를 가둔다. 균형의 원리는 AI 시대의 공존 전략을 설계하게 만든다.
배달, 모빌리티, 프리랜스 플랫폼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자유롭게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책임 없는 자유에 내몰린 경우가 많다. 사고가 나면 보상은 불확실하고, 휴식은 보장되지 않는다.
책임의 원리는 여기서 묻는다.
“자유로운 노동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자유는 방종이 아닌가?”
진정한 자유는 계약서 속에 명시된 권리뿐 아니라, 그 권리를 현실에서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구조적 책임을 포함해야 한다.
주거 문제, 연금 문제, 세금 문제에서 세대 간 갈등은 날카롭다. 기성세대는 이미 얻은 자원을 지키려 하고, 청년 세대는 출발선 자체에서 불평등을 호소한다.
공공성의 원리는 이렇게 묻는다.
“어떤 제도가 모든 세대에게 공정할 수 있는가?”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설계는 가능한가?”
세대 간의 ‘제로섬’ 사고를 넘어, 모두가 함께 살아갈 사회의 틀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공공성의 과제다.
SNS와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대화라기보다 언쟁이다. 짧은 문장과 자극적인 표현은 오해를 키우고, 혐오 발언은 쉽게 확산된다.
대화의 원리는 묻는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있는가?”
“차이를 파괴하지 않고 견디는 문화가 가능한가?”
민주주의는 투표 이전에 대화의 품질에 달려 있다. 대화 없는 사회는 표가 있어도 껍데기 민주주의일 뿐이다.
28편의 철학 여정은 오늘의 문제와 닻내릴 때, 단순한 지적 놀이가 아니라 사회 설계의 힘이 된다.
기후 위기 앞에서 질문은 생존의 도구가 되고,
AI와 노동 앞에서 균형은 사회적 합의의 조건이 되며,
책임은 자유를 실질로 만들고,
공공성은 세대와 계층을 잇는 다리가 되고,
대화는 민주주의의 심장이 된다.
“철학은 먼 추상이 아니라, 오늘의 구체적 쟁점을 살아내는 도구다.”
28편의 철학적 여정은 결국 청년 세대를 향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진리를 묻는 철학은 교양의 장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이 매일 직면하는 선택과 결단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청년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찰 과제를 안고 있는가?
청년 세대는 끊임없이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춘다. SNS의 하이라이트 영상, 비교와 경쟁의 잣대 속에서 청년은 “나의 목표”가 아닌 “타인의 목표”를 쫓는다. 그러나 철학적 시민으로 서기 위해서는 자기 확신의 토대를 회복해야 한다.
내가 붙드는 신념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나의 사유의 산물인가, 아니면 타인의 언어인가?
성찰 과제: 진리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답이 아니라, 스스로 묻고 검증한 끝에 붙드는 확신이어야 한다.
청년 세대는 자유를 절실히 원한다. 그러나 그 자유가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불안정과 방종으로 이어진다.
나는 내 선택에 끝까지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자유는 나만을 위한 권리인가,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갖는 권리인가?
성찰 과제: 책임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자유는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만 주체의 힘이 된다.
오늘날 청년은 ‘개인화된 삶’에 익숙하다. 경쟁은 치열하지만 연대는 약하다. 그러나 불평등, 기후 위기, 노동 문제는 개인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나는 나의 권리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가?
나의 작은 선택이 공동체 전체에 어떤 파장을 주는가?
성찰 과제: 공공성을 외면한 개인의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공동체의 미래를 고려할 때, 개인의 삶도 더 안정되고 의미를 얻는다.
청년 세대의 온라인 대화는 종종 짧고 공격적이다. 댓글과 밈, 숏폼 영상은 깊은 소통보다는 즉각적 감정을 키운다. 그러나 철학적 시민은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들어야 한다.
나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가?
차이를 파괴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가?
성찰 과제: 민주주의는 투표의 절차보다 대화의 품질에 달려 있다. 청년의 대화 습관은 곧 민주주의의 미래다.
정치인은 임기의 끝을 바라보고, 기업은 분기의 실적을 바라본다. 그러나 청년의 시간은 수십 년 앞을 향해 있다.
나는 단기적 성과만을 좇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설계하는 미래는 나만의 생존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인가?
성찰 과제: 청년이 긴 시간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단기성과와 불안정의 덫에 갇힌다. 청년의 성찰은 곧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이다.
청년 세대의 성찰 과제는 다섯 가지 자기 질문으로 요약된다.
1. 나는 무엇을 믿는가?
2. 나는 어떤 자유를 원하는가?
3. 나는 어떤 공동체의 일원인가?
4. 나는 어떻게 대화하는가?
5.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다섯 질문은 교양의 사치가 아니라, 청년이 미래를 설계하는 생존의 조건이다.
철학의 논쟁은 언제나 개인의 물음에서 출발했지만, 그 종착지는 사회적 약속과 제도의 설계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대화도, 루소와 칸트의 이론도 결국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에필로그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개인의 성찰을 넘어 집단적 미래 설계 ― 새로운 사회계약의 가능성 ― 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적 틀은 근대 사회계약의 산물이다. 루소, 홉스, 로크가 상상한 사회계약은 ‘개인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의 탄생을 의미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이 계약은 점점 흔들리고 있다.
- 불평등: 자산과 교육 기회의 격차는 사회계약의 기본 전제인 “평등한 출발선”을 무너뜨렸다.
- 기후 위기: 계약은 현재 세대 사이에서만 맺어진 것이었다. 미래 세대는 고려되지 않았다.
- 디지털 권력: 알고리즘과 플랫폼 기업은 시민의 의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계약의 당사자로 규정되지 않는다.
즉, 기존 사회계약은 시대의 새로운 변수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청년 세대가 마주한 위기는 단순한 정치적 무능이나 경제적 불안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계약의 공백이다. 공동체가 청년과 미래 세대에게 약속하지 않은 채, 그 부담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계약은 세 가지 차원을 포괄해야 한다.
1. 세대 간 계약: 현재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를 고려한 장기적 합의.
2. 디지털 계약: 기술 기업과 알고리즘을 공적 규율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
3. 지구적 계약: 국경을 넘어 기후와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루는 글로벌 합의.
새로운 사회계약은 위에서 떨어지는 법률 조항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시민의 목소리로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 청년 세대는 그 중심에 서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감당할 시간이 가장 길고, 따라서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 질문의 주체: 청년은 새로운 계약이 필요한 이유를 묻고, 기존 제도의 공백을 드러내야 한다.
- 대화의 주체: 세대와 계층, 지역을 넘어서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 실천의 주체: 캠퍼스, 직장, 온라인 커뮤니티 등 일상적 공간에서 계약의 작은 실험을 시작할 수 있다.
28편의 철학 논쟁에서 도출된 다섯 개 대원리는 새로운 사회계약의 기본 원리가 된다.
- 질문: 계약은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의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 균형: 자유와 안정, 혁신과 안전망 사이의 균형을 반영해야 한다.
- 책임: 권리뿐 아니라 책임을 분담하는 구조여야 한다.
- 공공성: 공동체 전체의 선을 고려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 대화: 합의가 아니라 이해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오늘의 사회계약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청년 세대는 과거처럼 체념의 길을 택할 수도, 단순히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틀에 적응할 수도 없다. 그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른 방식의 대화를 조직하며, 미래 세대를 고려한 계약을 요구해야 한다.
“사회계약은 과거에 완성된 문서가 아니라, 매 세대가 다시 써 내려가는 살아 있는 원고다.”
청년이 철학적 시민으로서 이 원고를 다시 쓰는 순간, 새로운 사회계약은 시작된다.
28편의 철학적 여정을 지나, 우리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리는 흐려지고, 성과는 요구되지만 의미는 사라지는 시대. 이 책이 탐구한 수많은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청년은 어떤 철학적 시민으로 살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듯, 철학적 시민으로서 청년은 권력과 사회의 언어에 맞서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존재여야 한다. 질문이 사라진 순간, 청년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구조의 소비자가 된다.
정치인은 임기를, 기업은 분기를, 사회는 유행을 바라본다. 그러나 청년은 평생의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기후 위기, 기술 발전, 불평등은 단기성과로는 풀리지 않는다. 긴 시간을 내다보는 질문을 던질 때, 청년은 미래의 설계자가 된다.
민주주의는 투표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의 차이를 견디는 대화, 공동체 전체를 고려하는 공공성이 함께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는 숨을 쉰다. 대화 없는 사회는 선동에 무너지고, 공공성이 사라진 사회는 갈등에 파괴된다. 철학적 시민으로서 청년은 이 두 가치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다.
이제 이 책은 독자에게 질문을 돌려준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는 어떤 자유를 감당할 것인가?
나는 어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교과서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각자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매일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만들어진다.
철학 없는 사회는 흔들리고, 철학 있는 사회는 미래를 설계한다. 청년 세대가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사회는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자의 손에 쥐어진다.”
이 마지막 문장을 마음에 새기는 순간, 독자는 더 이상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다. 그는 이미 철학적 시민으로, 새로운 사회계약의 첫 서명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