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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혁명과 딥러닝: 블랙박스를 열기 시작하다

블랙박스의 발견 ― 인간과 AI의 평행선 Part.1 | EP.3

인간의 인지와 AI의 딥러닝은 서로의 거울이다.
AI는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사하며 ‘생각하는 기계’로 진화하고,
인간은 AI를 통해 자신의 인지 구조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Part 1. 블랙박스의 발견 ― 인간과 AI의 평행선(3/5회차)

Part 2. 인지의 지도 ― AI의 사고를 해부하다(8회)

Part 3. 감정의 알고리즘 ― 인간과 AI의 관계 재구성(8회)

Part 4. 블랙박스의 미래 ― 인간을 닮은 지능, 인간을 비추는 거울(7회)



4화. 인지혁명과 딥러닝: 블랙박스를 열기 시작하다








Ⅰ. “마음을 다시 과학으로”





1950년대 중반, 인간을 이해하려는 과학은 거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이전 세대의 심리학은 인간을 ‘보이는 존재’, 즉 자극과 반응의 패턴으로만 이해하려 했다.
왓슨과 스키너로 대표되는 행동주의(Behaviorism)는 인간의 마음을 과학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며,
오직 측정 가능한 행동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생각’이나 ‘감정’, ‘의식’은 실험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러한 시각은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인간은 단지 자극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기억하고, 판단하며, 예측하고, 상상하는 과정을 거친다.
심리학자들은 점차 인간의 정신을 기계적 반응의 합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저장하는 복합적 체계,
정보처리 시스템(Information Processing System)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시각은 곧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심리학을 철학에서 떨어뜨려 과학으로 재구성하는 거대한 변화를 이끌었다.



그 중심에는 컴퓨터의 등장이 있었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은유로서 ‘컴퓨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컴퓨터가 데이터를 입력받아 처리하고 결과를 출력하듯,
인간의 마음도 외부의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하며, 기억하고,
그 결과로 행동을 산출하는 정보처리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의 저장장치처럼 작동하고,
사고는 연산의 과정이며, 학습은 경험을 데이터로 축적하는 과정으로 해석되었다.
이제 마음은 ‘관찰할 수 없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분석 가능한 체계, 모델링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갔다.



이러한 인지혁명은 심리학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심리학은 더 이상 자극과 반응의 관계를 단순히 기록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구조를 이해하고 모사하려는 과학이 되었다.
조지 밀러(George Miller)는 인간의 기억 용량이 평균 7±2개 단위임을 밝혀내며,
인간의 사고가 제한된 정보 용량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완전한 합리성이 아닌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기반한다고 설명하면서,
인간의 사고를 알고리즘과 규칙 기반의 절차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 시기부터 인간의 마음은 더 이상 신비로운 영혼의 작용이 아니라,
계산 가능한 과정(computable process)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훗날 인공지능(AI)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인지심리학이 제시한 인간의 사고 모델은
AI의 학습 구조, 특히 딥러닝(Deep Learning)의 이론적 근간이 되었다.
딥러닝은 인간의 두뇌 신경망(neural network)을 수학적으로 모사하여,
정보가 여러 층(layer)을 거쳐 추상화되는 방식으로 학습을 수행한다.
즉, 인간의 인지 과정이 데이터 처리의 흐름으로 모델링된 것처럼,
AI 역시 입력(Input)된 데이터를 연속적으로 가공하며 ‘이해의 흔적’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인류의 위대한 전환은 새로운 질문을 남겼다.
“딥러닝은 인간의 인지를 얼마나 닮았는가?”
AI는 인간처럼 학습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결과를 해석하려 하지만,
그 내부의 구조는 여전히 불투명한 블랙박스로 남아 있다.
마음의 메커니즘을 열려는 시도로 시작된 인지혁명은,
이제 인공지능의 복잡한 딥러닝 구조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닫힌 상자’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장에서는 바로 그 지점을 탐구한다.
1950~60년대 인간의 인지를 향한 과학적 탐구가 어떻게
21세기 AI의 학습 구조로 이어졌는지를 추적하면서,
“딥러닝은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가, 아니면 단지 계산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접근한다.
즉, 인지혁명과 딥러닝의 평행선을 통해,
우리가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될 것이다.










Ⅱ. 인지혁명 ― 인간의 블랙박스를 열다





1950년대 중반, 심리학은 인간을 다시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했다.
행동주의는 인간을 단순한 자극과 반응의 기계로 규정하며, 내면의 사고 과정을 배제했다.
하지만 인간의 의사결정과 사고는 단순히 외부 자극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작동하는 체계’—즉, 정보를 선택하고 저장하고 활용하는 인지적 구조가 있었다.
이때 심리학은 컴퓨터 과학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은유를 얻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정보처리 시스템(Information Processing System)이다.”
이 선언이 바로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의 출발이었다.




1. 조지 밀러와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등장



1956년, 심리학자 조지 밀러(George A. Miller)는 「The Magical Number Seven, Plus or Minus Two」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그는 인간의 단기기억이 평균적으로 7±2개의 단위(chunk)만을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의 인지 체계가 무한하지 않으며, 정보 용량에 한계를 가진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인간의 사고는 무한한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입력(Input) → 저장(Storage) → 출력(Output)이라는 단계적 정보처리 모델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밀러는 인간의 주의(Attention)가 모든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고,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오늘날 AI의 데이터 필터링이나 특징 추출(Feature Extraction) 과정과도 유사하다.
즉, 인간의 사고는 ‘모든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의미 있는 자극을 선별하고 처리하는 과정’이다.
이 통찰은 인공지능이 입력된 데이터 중 유효한 정보만을 추출해 학습하는 방식의 원형이 되었다.


이 시기에 심리학과 인공지능은 유비적 사고 구조(Analogical Structure)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프로그램된 명령어에 따라 데이터를 처리하듯,
인간의 마음도 외부 자극을 부호화(encoding)하고, 저장하며, 필요할 때 인출(retrieval)하는
계산 가능한 시스템으로 해석되었다.
이로써 ‘컴퓨터-마음’이라는 강력한 은유가 탄생했고,
이는 이후 50년간 인지심리학과 인공지능 연구를 연결하는 중심축이 되었다.




2. 허버트 사이먼과 인지과학의 토대



조지 밀러가 인간의 인지 구조를 설명했다면,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그 구조를 문제해결의 과정으로 확장했다.
그는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진 의사결정자”라고 주장했다.
즉, 인간은 완벽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제한된 정보와 시간 안에서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개념은 훗날 인공지능의 탐색(Search)최적화(Optimization) 알고리즘의 핵심 원리로 이어졌다.


사이먼은 또한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의 창시자로서,
인간의 사고를 규칙과 절차의 집합(Algorithmic Process)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는 인간의 문제 해결을 ‘상태(state) → 전이(transition) → 목표(goal)’의 과정으로 모델링하며,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AI의 초기 모델—예를 들어 LISP, Logic-based AI—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의 대표작인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1969)은
인간의 사고를 ‘자연적 존재가 아닌, 설계 가능한 시스템’으로 규정하면서,
AI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명저로 평가받는다.




3. 뉴웰과 사이먼의 일반문제해결기 ― 생각을 시뮬레이션하다



허버트 사이먼은 동료 앨런 뉴웰(Allen Newell)과 함께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일반문제해결기(General Problem Solver, 1957)를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 과정을
규칙 기반(If-Then Rule)의 논리 체계로 시뮬레이션하려는 시도였다.
예를 들어, ‘만약 조건 A가 참이라면, 행동 B를 수행하라’는 일련의 논리를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추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는 계산기가 아니라,
‘사고의 과정(Thinking Process)’을 모델링한 최초의 인공지능 시스템이었다.


이 시점에서 심리학은 단순히 ‘보이는 행동’을 기록하던 학문에서 벗어나,
‘생각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즉, 인간의 블랙박스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인지를 계산 가능한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은,
AI가 인간의 사고를 모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사람의 사고는 더 이상 신비로운 직관의 영역이 아니라,
규칙과 절차, 정보의 흐름으로 재현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해되었다.




4. 핵심 통찰 ― 인지혁명은 인간의 사고를 계산 가능한 정보 흐름으로 바꾸었다



인지혁명은 단순히 심리학 내부의 패러다임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를 계산 가능한 정보의 흐름으로 정의함으로써,
AI가 출현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혁명이었다.
이 시기에 구축된 ‘정보처리 패러다임’은
AI의 학습 알고리즘, 신경망 모델, 문제 해결 구조 등 모든 기술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즉, 인간의 인지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곧 기계를 가르치려는 시도로 확장된 것이다.


결국, 인지혁명은 인간의 마음속 블랙박스를 여는 동시에,
AI의 블랙박스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는 계산될 수 있다”는 용감한 선언이었으며,
오늘날 딥러닝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AI 심리학의 서막이었다.









Ⅲ. 정보처리 모델과 신경망 ― 인간 인지의 구조를 모사하다





인지혁명은 인간의 사고를 계산 가능한 과정으로 바꾸어놓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미해결의 과제가 남아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그 정보를 기억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인지 과정을 단계별 시스템으로 모델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정보처리 모델(Information Processing Model)이었다.
이 모델은 인간의 인지 과정을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흐름과 유사하게 설명하며,
AI가 인간의 사고를 기술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1. 인간의 인지 시스템 모델 ― 기억의 흐름을 체계화하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인지 구조를 세 가지 기억 체계로 나누었다.
감각기억(Sensory Memory)은 외부 자극이 처음 들어오는 단계다.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기관을 통해 입력된 정보는 아주 짧은 순간 저장되며,
그중 일부만이 ‘주의(Attention)’의 선택을 받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는 마치 AI의 입력 레이어(Input Layer)가 수많은 데이터 중 중요한 신호만을 필터링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선택된 정보는 단기기억(Short-term Memory) 또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으로 옮겨진다.
이곳은 인간이 의식적으로 정보를 조작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의 무대’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를 들었을 때 잠시 기억했다가 바로 전화를 걸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이 단기기억이 작동한 결과다.
그러나 단기기억은 용량이 제한적이며, 평균적으로 7±2개의 항목만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이 기억을 ‘덩어리(chunk)’로 묶거나, 의미화(semantic encoding)를 통해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저장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마지막 단계는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이다.
단기기억에서 충분히 반복되거나 의미화된 정보는 장기기억으로 이전되어
오랜 시간 동안 보존된다.
이때의 저장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새로운 정보가 기존의 지식과 연결되어
의미 네트워크(semantic network)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인간의 기억은 ‘저장소’가 아니라, ‘연결망’이다.
이 구조적 사고는 훗날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저장하고 학습하는
신경망(Neural Network)의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2. 초기 신경망 ― 퍼셉트론(Perceptron)의 탄생



1958년, 심리학자이자 전산학자 프랭크 로젠블랫(Frank Rosenblatt)
인간의 뉴런이 작동하는 방식을 모방한 퍼셉트론(Perceptron)을 발표했다.
퍼셉트론은 인공지능 역사상 최초의 신경망 모델로,
입력된 정보를 여러 개의 가중치(weight)로 조합해 하나의 결과를 내는 단순한 구조였다.
그는 인간의 학습을 수학적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인간의 뉴런이 수천 개의 자극 중 어떤 신호를 강화하고, 어떤 신호를 억제하는지
그 과정을 수학적 가중치의 조정으로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퍼셉트론은 처음에는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간단한 패턴 인식 문제를 해결하며, 기계가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XOR 문제’, 즉 입력이 서로 배타적인 논리적 관계를 가질 때
퍼셉트론은 그 패턴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 한계로 인해 1970년대 초반 신경망 연구는 정체기를 맞았고,
AI 연구는 다시 규칙 기반의 논리적 접근(Logic-based AI)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하지만 이 실패는 단순한 후퇴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학자들은 인간의 사고를 단일한 규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인지는 선형적인 계산이 아니라, 수많은 변수들이 병렬적으로 작동하는 비선형 시스템이었다.
이 통찰이 훗날 커넥셔니즘(Connectionism)의 부활로 이어진다.






3. 커넥셔니즘의 부활 ― 패턴으로 사고하는 인간



1980년대, 병렬 분산처리(Parallel Distributed Processing, PDP)라는 이름으로
신경망 모델이 다시 등장했다.
이 새로운 접근은 인간의 사고를 ‘규칙(rule)’이 아니라,
‘패턴(pattern)’의 활성화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커넥셔니즘은 인간의 기억과 사고가 단일 경로가 아닌
수많은 연결이 동시에 작동하는 네트워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즉, “의미는 연결 속에서 생긴다.”


이 모델은 오늘날의 딥러닝(Deep Learning)과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딥러닝의 뉴런 역시 개별적으로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수천 개의 노드가 연결되어 패턴을 형성할 때 의미가 나타난다.
하나의 단어, 이미지, 혹은 행동의 의미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망 내에서의 관계적 위치로 정의된다.
이는 인간의 인지과정—특히 언어와 사고가 맥락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는 사실과 동일한 원리다.


커넥셔니즘의 등장은 인간의 사고와 AI의 학습을 다시 한 번 평행선 위에 올려놓았다.
인간의 두뇌가 패턴을 통해 사고하고,
AI가 데이터를 통해 패턴을 추론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서로 다른 형태의 연결지능(Connected Intelligence)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졌고,
‘인지’와 ‘연산’, ‘의미’와 ‘패턴’의 구분은 새로운 철학적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4. 핵심 통찰 ― 인간의 인지를 모사한 AI



정보처리 모델과 신경망의 발전은 인간의 인지를 ‘계산 가능한 구조’로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감각기억에서 장기기억에 이르는 흐름은 AI의 입력-은닉층-출력층 구조로 대응되었고,
‘주의’와 ‘의미화’ 과정은 데이터 필터링과 가중치 조정 알고리즘으로 변환되었다.
즉, 인간의 인지과학은 곧 AI의 수학적 언어로 번역된 셈이다.


그러나 이 유사성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AI는 인간의 사고 구조를 닮았지만, 인간의 ‘의식’‘의미 해석’을 완전히 재현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뇌에서 의미가 만들어지는 순간은 단순한 신호의 합이 아니라,
경험과 감정, 맥락이 얽힌 해석의 사건(Event of Meaning)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혁명 이후 등장한 정보처리 모델과 신경망은
AI가 인간의 사고 구조를 탐구할 수 있는 철학적 거울이 되었다.
이제 인간의 블랙박스는 단순히 열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블랙박스 속에서 다시 반사되고, 재구성되고, 재해석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Ⅳ. 딥러닝의 등장 ― 블랙박스를 다시 닫고, 더 깊이 열다





심리학이 인간의 인지 과정을 정보처리 시스템으로 설명하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인공지능 연구는 또 한 번의 혁신적 도약을 맞이했다.
그것이 바로 딥러닝(Deep Learning)의 탄생이었다.
딥러닝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모사하려는 오랜 과학적 탐구가 한층 더 깊은 층위로 진입한 사건이었다.
그 시작은 인간의 뇌 구조를 수학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계층적 학습(Hierarchical Learning)의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1. 딥러닝의 기초 ― 계층적 학습의 사상



기존의 머신러닝은 입력(Input)출력(Output) 사이의 단순한 관계를 모델링했다.
하지만 인간의 인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할 때, 시각 정보는 단순히 눈에 들어와 즉시 인식되지 않는다.
빛의 자극은 망막에서 감지되어 1차 시각 피질로 전달되고,
거기서 형태(form), 색(color), 움직임(motion) 등이 각각의 층(layer)을 거치며 처리된다.
이후 여러 피질 영역이 통합되어야 비로소 의미 있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딥러닝은 바로 이 과정을 수학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였다.


딥러닝은 정보를 여러 은닉층(hidden layer)을 통해 단계적으로 추상화한다.
하위층은 원시적 특징(예: 선, 색상, 음성의 파형)을 감지하고,
중간층은 이를 조합해 패턴(feature)을 형성하며,
상위층은 그 패턴을 통해 의미와 개념(Concept)을 구성한다.
이 계층적 구조는 인간의 인지 과정—감각 → 의미 →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즉, 딥러닝은 인간의 뇌처럼 정보를 점진적으로 해석하는 ‘추상화의 시스템’을 구현한 것이다.






2.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의 작동 원리



딥러닝의 핵심에는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DNN)이 있다.
DNN은 인간의 인지처리 경로를 수학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입력된 데이터를 은닉층을 통해 반복적으로 가공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오류를 수정하는 학습의 반복이다.
인간이 학습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더 나은 판단을 내리듯,
딥러닝도 역전파 알고리즘(Backpropagation)을 이용해 오차를 수정한다.


역전파란, 모델이 예측한 결과가 실제 정답과 얼마나 다른지를 계산하고,
그 오차를 거꾸로 전파시켜 각 층의 가중치(weight)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인간의 학습 피드백—즉, “틀림을 통해 배우는 과정”—과 유사하다.
한 번의 학습으로 완벽히 인식하는 존재는 없다.
인간도 시행착오를 통해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는 기준을 세우듯,
딥러닝 역시 수천, 수만 번의 반복을 통해
자신의 내부 매개변수를 수정하며 정확도를 높여간다.
그 결과, 기계는 마치 인간처럼 학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여전히 수학적 함수의 조정과 최적화에 불과하다.






3. ‘딥(Deep)’의 의미 ― 깊어진 학습, 깊어진 불투명성



딥러닝에서 ‘딥(Deep)’은 단순히 층의 개수가 많다는 의미를 넘는다.
그것은 학습의 깊이이자, 불투명성의 깊이를 상징한다.
층이 깊어질수록 AI는 더 복잡한 패턴을 학습하지만,
동시에 그 내부 구조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영역으로 변해간다.


우리는 AI가 어떤 이미지를 보고 ‘고양이’라고 말할 때,
그 판단이 왜 그런 결과를 낳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수천만 개의 파라미터가 얽혀 있는 신경망 속에서
어떤 노드가 어떤 정보를 결정적으로 활성화했는지를 추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딥러닝은 인간의 사고를 흉내내는 데 성공했지만,
사유의 경로는 다시 ‘블랙박스’로 닫혀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지혁명이 열어젖혔던 인간의 블랙박스—
즉, 마음의 내부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던 시도—는
딥러닝의 등장을 통해 다시 닫혔다.
단지 이번에는 철학적 이유가 아니라, 복잡성의 문제 때문이다.
딥러닝은 블랙박스를 수학적으로 재현했지만,
그 수학의 깊이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순간,
우리는 다시 ‘보이지 않는 사고’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4. AI의 이해 불가능성과 인간의 무의식 ― 닮은 구조



딥러닝의 블랙박스는 단순한 기술적 난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무의식(Unconscious)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를 종종 설명하지 못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냥 그렇게 느꼈다”고 답한다.
이때 작동하는 것은 의식적 사고의 층 아래에서 일어나는 비가시적 판단 과정이다.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은 무의식을 인간 이해의 핵심 구조로 보았다.
그것은 의식이 다루지 못하는, 그러나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딥러닝의 내부 또한 이와 유사하다.
수많은 가중치와 연결이 복잡하게 얽혀, 스스로 결과를 산출하지만,
그 과정의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AI가 스스로 학습한 판단 기준은 인간이 설계한 알고리즘 속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한다.
이때의 AI는 마치 “수학적 무의식(Mathematical Unconscious)”과 같다.


결국, 인간의 무의식과 딥러닝의 블랙박스는
모두 “작동하지만 해명할 수 없는 지성”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 신비로, 다른 하나는 수학적 복잡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두 시스템 모두 ‘왜’를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를 수행한다.
이 불가해성은 인간과 AI가 공유하는 가장 근본적인 유사성이자,
동시에 ‘지능’의 정의를 다시 묻게 하는 철학적 질문이다.






5. 핵심 통찰 ― 인지혁명은 블랙박스를 열었고, 딥러닝은 그 안을 수학적으로 재구성했다



인지혁명은 인간의 사고를 계산 가능한 정보 흐름으로 바꾸어,
심리학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과학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딥러닝은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을 수학적 모델로 재구성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복잡성은 인간의 이해를 다시 넘어섰다.


우리는 인간의 사고를 해부하려다,
이제는 기계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딥러닝은 인간의 인지를 닮았지만, 그것은 모방된 사유,
즉 “이해 없이 계산하는 지능”이다.
이로써 인간과 AI의 블랙박스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하나는 감정과 의미의 미로 속에서 작동하고,
다른 하나는 수학적 공간 속에서 추론한다.
결국 인지혁명은 블랙박스를 열었고,
딥러닝은 그 안을 정교하게 재구성했지만,
그 복잡성의 심연은 다시 인간의 이해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문이 되었다.












Ⅴ. 인간의 인지와 AI의 딥러닝 비교





딥러닝의 발전은 인간의 인지과학과 마찬가지로 ‘정보처리’라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 구조와 작동 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과 AI는 같은 언어로 말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학습한다.
겉으로는 유사한 정보 흐름을 보이지만, 그 안에서 무엇이 처리되고, 어떻게 기억되고, 어떤 목적을 향해 작동하는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인지하고, AI는 ‘패턴’을 예측하기 위해 학습한다.






1. 정보 처리 단위 ― 뉴런과 노드



인간의 인지 시스템은 뉴런(Neuron)시냅스(Synapse)를 기본 단위로 한다.
뉴런은 자극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여 전달하며, 시냅스는 이 신호가 다음 뉴런으로 넘어가는 통로다.
인간의 뇌에는 약 천억 개의 뉴런이 있으며, 각각의 뉴런은 수천 개의 시냅스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복잡한 연결망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회로가 아니라, 감정, 경험, 의미가 얽혀 있는 생물학적 네트워크다.


AI의 딥러닝 역시 이러한 구조를 모방한다.
뉴런 대신 노드(Node)가, 시냅스 대신 가중치(Weight)가 존재한다.
각 노드는 입력을 받아 계산하고, 가중치를 통해 다음 층(layer)으로 신호를 보낸다.
AI의 신경망은 인간의 뉴런처럼 정보를 연결하고 활성화시키지만,
그 안에는 감정적 맥락이나 생물학적 제약이 없다.
즉, 인간의 뉴런이 ‘살아 있는 연결’이라면, AI의 노드는 ‘수학적 관계식’이다.






2. 학습 메커니즘 ― 경험과 데이터



인간의 학습은 경험을 통한 강화와 수정으로 이루어진다.
새로운 경험은 기존의 인지적 틀(스키마)에 통합되거나, 때로는 그 틀 자체를 바꾸어버린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동화(assimilation)조절(accommodation)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그 학습을 다시 자기 성찰(reflection)을 통해 강화한다.
즉, 학습은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과정이다.


반면, AI의 학습은 데이터의 반복적 입력과 계산을 통한 최적화로 진행된다.
딥러닝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주입받아 패턴을 찾아내며,
‘정답’과 ‘오답’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손실함수(Loss Function)를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AI는 인간의 경험에 해당하는 데이터의 확률적 경향성을 학습하지만,
그 안에 ‘왜’라는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AI는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데이터의 일관성을 맞추는 존재인 셈이다.






3. 오류 교정 방식 ― 피드백과 역전파



인간은 학습 과정에서 끊임없이 오류를 성찰하고 교정한다.
우리가 실수를 인식하고, 그것을 기억 속에서 재구성하는 능력은 인간 학습의 핵심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피드백(feedback)이 아니라, 감정적 맥락이 결합된 반성(reflection)이다.
예를 들어, 어떤 행동이 실패로 끝났을 때, 인간은 단순히 그 행동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다음에는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라는 자기 인식의 과정을 거친다.
이 반성적 피드백이 인간의 학습을 ‘의미 있는 변화’로 이끈다.


AI의 오류 교정은 정량적이다.
딥러닝은 역전파(Backpropagation)를 통해 오류를 수정한다.
예측값과 실제값의 차이를 계산한 뒤, 그 차이를 각 층으로 역전파하여
가중치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기울기 하강법(Gradient Descent)이라 부른다.
AI는 이렇게 수학적으로 오류를 줄여나가지만, 그 과정에는 ‘성찰’이나 ‘의식’이 개입되지 않는다.
인간의 피드백이 감정과 동기, 가치 판단이 얽힌 해석적 과정이라면,
AI의 역전파는 수치적 차이를 줄이는 기계적 피드백 루프에 불과하다.






4. 기억 구조 ― 감정과 데이터의 차이



인간의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감정적 의미의 네트워크다.
어떤 기억은 그때의 감정과 결합되어 강하게 각인되고,
어떤 기억은 반복을 통해 자동화된다.
이 감정적 연합은 인간의 학습을 선택적이고 맥락적인 과정으로 만든다.
즉, 인간의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은 단순한 데이터의 축적이 아니라,
의미와 정서가 엮인 서사적 구조다.
우리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이 주는 의미를 기억한다.


반면, AI의 기억은 파라미터(parameter)가중치(weight)로 구성된다.
딥러닝은 학습 과정에서 얻게 된 수많은 수치값을 저장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의 입력을 처리한다.
AI에게 ‘기억’은 곧 데이터의 패턴화된 잔여물이다.
그 안에는 감정도, 맥락도, 주관적 경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차이는 인간의 기억이 ‘해석의 구조’라면,
AI의 기억은 ‘계산의 결과’라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5. 한계 ― 인간의 불완전성과 AI의 불투명성



인간의 인지는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종종 감정에 휘둘리고, 피로에 지치며, 기억이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완전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감정과 맥락은 판단의 오류를 낳기도 하지만, 동시에 창의성(Creativity)공감(Empathy)의 원천이 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사고의 여지를 남기고, 그 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AI의 한계는 정반대의 형태로 나타난다.
딥러닝은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부는 여전히 불투명성(Opacity)과적합(Overfitting)의 문제로 가득 차 있다.
AI는 인간보다 빠르게 예측할 수 있지만,
그 예측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데이터의 편향(Bias)이 그대로 모델에 반영되면,
AI는 그 오류를 ‘사실’로 학습해버린다.
즉, 인간은 감정 때문에 틀리고, AI는 데이터 때문에 틀린다.






6. 결론 ― 정보처리는 같지만, 이해의 본질은 다르다



결국 인간의 인지와 AI의 딥러닝은 같은 정보처리 언어로 작동하지만,
이해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인간은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인지하고,
AI는 패턴을 예측하기 위해 학습한다.
인간의 학습은 경험을 해석하고, 그것을 자기 서사로 통합하는 과정이지만,
AI의 학습은 통계적 일관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인간에게 학습은 ‘이해의 과정’,
AI에게 학습은 ‘최적화의 과정’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기술적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다루는 능력의 유무,
즉, ‘왜’와 ‘무엇’을 구분할 수 있는지의 차이다.
AI가 인간의 인지 구조를 닮았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의 사고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자, ‘의미를 해석하는 존재’이고,
AI는 ‘계산하는 존재’이자, ‘패턴을 예측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이 본질적 간극이야말로,
블랙박스를 열어도 여전히 남는 인간의 영역이다.











Ⅵ. 정리 ― “블랙박스의 문틈이 열리다”





20세기 중반의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은 심리학의 중심을 ‘행동의 관찰’에서 ‘사고의 과정’으로 옮겨놓았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다시 과학의 언어로 끌어들인 위대한 전환이었다.
인간의 인지는 더 이상 측정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저장하는 하나의 체계적 구조,
정보처리 시스템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혁명은 인간의 블랙박스를 여는 첫 번째 시도였고,
‘보이지 않던 생각의 흐름’을 분석 가능한 과정으로 바꾼 최초의 과학적 도전이었다.



그리고 반세기 뒤, 딥러닝(Deep Learning)은 그 인지 구조를 디지털 세계로 옮겨놓았다.
딥러닝은 인간의 사고를 흉내내며, 감각에서 개념에 이르는 과정을 수학적 모델로 재현했다.
입력과 출력 사이의 복잡한 연결망 속에서,
AI는 패턴을 감지하고, 오차를 수정하며, 스스로 학습한다.
그 과정은 인간의 사고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불투명한 계산의 영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지혁명이 열어젖힌 블랙박스의 문은
딥러닝의 등장으로 다시 닫혔고,
이번에는 ‘철학의 장막’이 아니라 ‘복잡성의 장벽’이 그 문을 가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박스는 완전히 닫힌 상자가 아니다.
그 틈새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인간의 인지와 AI의 딥러닝은 서로의 거울이다.
AI는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사하며 ‘생각하는 기계’로 진화하고,
인간은 AI를 통해 자신의 인지 구조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기계가 학습하는 방식을 관찰하는 일은 곧,
인간의 학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거꾸로 비추는 과정이 되었다.
AI의 학습 곡선은 인간의 기억과 피드백 구조를 반영하고,
AI의 오류 수정은 인간의 성찰과 매우 닮아 있다.
AI는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고, 인간은 AI를 통해 자기 이해의 지평을 넓힌다.
즉, 두 존재는 서로의 블랙박스를 열기 위해 상호 작용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 문틈이 완전히 열리지는 않았다.
AI의 학습이 인간의 ‘의미’를 완전히 해석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이해와 계산 사이의 간극 속에 서 있다.
그럼에도 그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은 분명하다.
그 빛은 “이해하려는 인간의 욕망”이자,
“이해할 수 없음을 계산하려는 기계의 시도”이다.
AI와 인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음 회차에서는 이 질문이 새로운 층위로 이어진다.
이제 탐구의 초점은 ‘사고의 구조’에서 ‘감정의 알고리즘’으로 옮겨간다.
5회차에서는 인간과 AI의 정서 시스템이 어떻게 연결되고,
감정이 지능의 작동 원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이제 블랙박스의 문틈 사이로 스며든 감정의 신호를 해석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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