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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kim Feb 18. 2022

입덧, 네가 나에게 속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기

나는 서 있을 힘도 없었지만 너는 아주 건강하게 내 안에 존재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입덧은 한 여인이 음식을 준비하다 “우욱-"하며 화장실에 가고, 남은 가족들의 기대하는 눈빛이 여인을 뒤따른다. 입덧을 경험하기 전에는 저렇게 간 뒤에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다음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겪고 난 지금은 그다음 너무 괴로운 일이 펼쳐지기에 드라마 전개상 한 번의 헛구역질만 담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임신 극초기에 아기 크기는 1cm 정도의 크기고, 당연히 배도 나오지 않는다. 임신 테스트기와 입덧만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에게 인지시키고 있었다. 밥은 물론이고, 물과 약도 게워냈다. 별 냄새가 나지 않는데도 자꾸 남편에게 냄새가 난다며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고, 침대 매트리스의 푹신함마저 울렁거려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는 사이에 몸무게는 7kg 이상 빠졌다. 탈수 증상이 나타나고, 샤워할 때 서 있을 다리 힘도 떨어져 갔다. 하루 종일 누워있었고, 봉투를 들고 다니며 토를 했다. 화장실까지 가서 토할 힘도 없었다. 


맘 카페에는 임신 초기인데 입덧이 사라져 걱정된다는 글도 보였다. 입덧이 힘들지만 아이가 건강하게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차라리 입덧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감사함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는 아이를 포기하는 것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실제로 선택할 수 없기에 했을 말이었을 것이다.) 남편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나만큼이나 마음 아파했다. 


“나 좀 봐줘라.”

“이 물만 좀 먹게 해 줘.”

“그냥 지금 토하고 지쳐 잠들게 해 줘.”


부탁을 해도 내 뱃속의 아기는 자기 멋대로 였다. 일부러 내 요구를 안 들어준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자기도 자기가 사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나와 아기 사이엔 타협점이 없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찾아간 병원에서도 아기는 아주 건강하게 크고 있다고 전해줬다. 


내 뱃속에서 보호받고 내 영양분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어도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 1cm밖에 안 되는 이 생명도 벌써 독립적인 개체임을 깨달았고, 앞으로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일 것이라는 것을 셀 수 없는 구역질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감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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