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낙 신전의 돌에 새겨진 기도: 천 년의 속삭임
나는 신전의 수많은 기둥 사이를 지나며 고대 이집트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애썼다. 이 웅장한 공간이 주는 압도감과 경이로움은 여전했지만, 성소의 좁은 입구에 서자 무언가 전혀 다른 느낌이 찾아왔다.
성소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지는 듯했다. 방금 전까지 관광객들의 분주한 목소리와 신전의 활기찬 분위기가 어느새 희미해지고, 귀가 먹먹할 정도의 침묵이 나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돌벽이 외부와 이곳을 철저히 분리해 놓은 듯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조차 알 수 없는 경외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차올랐다.
성소의 어둑한 정적 속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마치 꿈처럼 희미한 형체가 내 앞에 나타나는 듯했다. 놀랍게도 그는 오래전 이곳에 섰던 파라오, 람세스 2세였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파라오이었지만 이 성소 앞에 섰을 땐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두렵진 않았나요?"
람세스 2세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낮고 무게 있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또한 신의 앞에서는 그저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네. 신이 나를 선택했지만, 성소 앞에 서면 항상 작아지고 겸허해지는 마음뿐이었지. 신이 과연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혹시 내가 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컸다네."
그의 대답에 나는 작은 공감을 느꼈다. 람세스 2세가 다시 성소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신 앞에서 비슷한 마음을 갖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 속에서 돌벽에 희미하게 새겨진 상형문자를 바라보자, 나 역시 파라오처럼 마음 깊이 기도가 차오르는 듯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조차 이곳에 오면 자연스럽게 침묵과 경외감에 휩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남아있는 엄숙한 고요함은, 시대와 종교를 뛰어넘어 인간의 깊은 내면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듯했다.
성소를 떠나 다시 빛으로 발걸음을 돌렸지만, 이 짙은 고요와 압도적 침묵의 여운은 오랫동안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성소에서 느꼈던 깊은 고요함과 묘한 긴장을 안고 다시 신전의 중심부로 나왔다. 눈앞에는 다시 관광객들의 발걸음과 이야기가 북적였고, 강렬한 햇살이 얼굴을 비추며 나를 현실로 불러냈다. 잠시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자, 저 멀리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기다란 오벨리스크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그것은 마치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오벨리스크를 향해 다가가는 발걸음마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차올랐다. 조금 전 성소의 깊숙한 곳에서 느꼈던 고요함과는 또 다른 설렘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오벨리스크의 웅장한 모습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 거대한 돌기둥을 나일강을 따라 먼 아스완에서 여기까지 운반하고, 저렇게 완벽히 세웠을까 하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이 오벨리스크는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운 것으로, 그녀는 고대 이집트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던 여성 파라오였다. 남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이 웅장한 오벨리스크를 카르낙 신전에 세웠다고 했다. 하지만 하트셉수트가 떠난 후, 후계자인 투트모시스 3세는 그녀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담은 문양들을 일부러 깎아 지워버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지워진 흔적들이 더 선명히 그녀를 기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 옆에 서 있던 한 여성이 오벨리스크를 올려다보며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어떻게 세웠을까요? 돌 하나가 정말 엄청난 크기네요.”
곁에 있던 남성이 이어서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현대 장비도 없이 수백 톤짜리 화강암 덩어리를 배로 옮기고, 이렇게 똑바로 세웠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정말 그 시대 사람들의 집념과 열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다른 여행자가 놀랍다는 듯 다시 말을 꺼냈다.
“맞아요, 직접 보니까 더 신기해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든 걸까요? 정말 신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오벨리스크를 향한 우리의 경외감은 아마도 이 돌기둥을 처음 마주했던 고대의 파라오나 제사장들이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르낙 신전의 화려한 주랑과 웅장한 오벨리스크를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예상치 못한 독특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집트 신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귀엽고 다소 친근한 형태의 거대한 돌 조각상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특별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거대한 풍뎅이, 이른바 ‘스카라베’ 조각이었다. 이집트 신화에서 스카라베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생명의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태양신 케프리(Khepri)를 나타내는 존재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매일 아침 태양을 굴리는 풍뎅이의 움직임은 곧 태양신 라(Ra)의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했다.
이 스카라베가 신전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단순히 장식이나 신화적 의미를 넘어서, 파라오의 권위와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고대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기 위해 스카라베 형태의 부적과 조각상을 곳곳에 설치했는데, 카르낙의 이 스카라베는 특히 왕과 제사장들이 제례를 통해 신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던 특별한 장소였다고 한다. 이 돌 스카라베의 표면에는 지금도 희미하게 남은 상형문자들이 그 시절의 간절했던 의식을 증명하고 있었다. 파라오는 이 스카라베 앞에서 직접 제사장들과 함께 의식을 치르며, 왕국의 안정과 영원한 생명을 간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이 스카라베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듯했다. 관광객들이 스카라베 주위를 천천히 돌며 소원을 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는 고대의 재생과 부활의 의미가 현대인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병을 앓는 가족의 건강 회복부터 시험 합격, 새로운 직장을 얻는 일까지 자신만의 간절한 바람을 이 돌조각 앞에서 속삭이며 걷고 있었다. 이 스카라베 주위를 일곱 바퀴 돌며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은 이들은 하나같이 진지한 얼굴로, 마치 신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듯 돌고 또 돌았다.
처음에는 다소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이 조각상을 세웠던 파라오와 제사장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이 돌 스카라베 앞에 서서 지금의 그들처럼 간절히 무언가를 빌었을 테니까 말이다. 파라오는 신으로부터 받은 권력이 영원하길 바랐고, 제사장들은 신의 응답이 지속되길 기원했다. 어쩌면 인간의 마음이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변치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이 스카라베의 존재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천천히 스카라베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그 동작은 여행객들이 이 돌 조각상을 돌며 각자의 소원을 비는 모습과 비슷했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었다. 돌 주위를 한 발자국씩 걸으면서, 고대의 파라오와 제사장들이 가졌던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수천 년 전, 이곳에서 그들은 어떤 소원을 품고 어떤 마음으로 이 돌 조각상을 세웠을까. 신의 응답을 기다리며 긴장했을 제사장들과, 자신의 권력과 생명이 영원하길 간절히 기도했을 파라오의 마음이 돌 틈새마다 깊이 스며 있는 듯했다. 동시에 내 주변의 여행객들 얼굴에도 시선이 갔다. 스카라베를 돌며 진지하게 소원을 빌고 있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 역시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신과의 교감을 갈망하며 돌 위에 마음을 올려놓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과거의 제사장들과 현대의 여행객들이 동일하게 공유하는 인간의 간절함을 느꼈다. 나는 소원을 빌진 않았지만,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진실한 바람과 기도를 느끼며, 잠시나마 그들과 깊이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카르낙 신전의 안쪽에서 만난 성스러운 호수는 마치 별세계처럼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신전의 먼지와 모래 사이에서 만난 이 푸른 호수는 파라오와 제사장들이 신 앞에 서기 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었던 정결의 장소였다. 실제 고대 이집트에서는 제사장들이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전 반드시 몸을 철저하게 씻었으며, 몸의 모든 털을 깎아 정결함을 유지했다고 한다. 신전 벽화에도 이러한 의식의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신체적 정결을 위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신을 마주하는 내적 준비와 겸허함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나는 호수 앞에서 눈을 감고, 그들이 몸을 씻고 정결 의식을 수행하던 모습을 조용히 상상해 보았다. 그 순간, 마치 꿈을 꾸듯 성수호의 가장자리에서 물속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파라오와 제사장들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완벽한 침묵 속에서 진지하고 엄숙하게 몸을 씻고 있었고, 몸의 모든 털을 깎아 완전히 깨끗한 상태로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지금 당신들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이렇게 몸을 씻으며 신 앞에 나아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나요?”
한 제사장이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렵다기보다는 신의 존재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준비라 생각합니다. 신 앞에서는 오직 순결하고 겸손한 마음만이 허락될 뿐입니다.”
그 곁에 서 있던 파라오 역시 나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진 권력과 지위는 이 순간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신 앞에서 나의 진심만을 보이기 위해 이렇게 나 자신을 완벽히 비우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답변을 듣고 깊은 공감과 감동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그들이 품었던 마음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신전의 성소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성수호의 잔잔한 물결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수천 년 전의 그들의 진지한 마음과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마음이 물 위에서 조용히 만나는 듯했다.
나는 성수호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신전의 출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뒤를 돌아보니 카르낙 신전의 화려한 기둥과 오벨리스크, 성소의 깊은 침묵과 성수호의 푸른 물결까지 모두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신전의 웅장한 모습 뒤로 감추어진,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문득 떠올랐다. 저 신전을 지은 것은 파라오의 권력이나 제사장들의 기도만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 뒤에서 침묵하고 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손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지만, 사실 이집트 제국을 움직였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그들이었을 것이다.
신전을 나서며, 이제 나는 화려한 신전과 왕들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던,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비록 역사 속에 묻혀 희미해졌지만, 지금 내 발걸음은 분명히 그들을 향하고 있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왕의 이름 아래 가려진 평범한 삶, 이름 없는 이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이집트의 진짜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신전의 영광 뒤편에 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만난다면, 지금보다 더 깊이 이집트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속에서 기대감과 설렘이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다.
사진: 나그네 한,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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