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속의 카르낙 신전
2년 전, 2월의 룩소르.
카이로보다 한층 따뜻해진 공기가 온몸을 감싸던 그때, 난 가족 여행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신들의 도시, 고대 문명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 그리고 한낮의 태양이 서서히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곳.
이번 여행의 내 목표는 나의 가족 모두가 오랫동안 동경했던 룩소르의 유적을 직접 눈으로 보게 하고, 손으로 만져보게 하며 그 시간을 느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달랐다. 함께한 가족은 나를 포함해 아내, 12살 아들, 그리고 4살 딸. 거기에 지인의 가족까지 더해지면서 제법 큰 그룹이 되었다. 그러나 여행의 시작부터 난 가이드 역할을 해야 했고, 아내는 어린 딸을 돌보느라 힘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는 찬란한 유적보다도 더운 날씨와 지루한 이동이 먼저 다가왔다. 12살 아들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파라오도, 신전도, 웅장하게 서 있는 기둥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멋지게 찍혔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듯했다. 4살 딸에게는 카르낙 신전이 거대한 돌무더기에 불과했다. 웅장한 석주가 늘어선 대열주실 앞에서도, 하늘을 찌를 듯한 오벨리스크를 보면서도, 그녀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큰 돌맹이를 왜 보는 거야?”
이 아이에게 이집트 문명은 단순했다.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서 있던 피라미드는 그녀의 눈에 ‘큰 세모’였고, 수많은 신들의 신전은 ‘커다란 돌덩이들’ 일뿐이었다. 그때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대의 사람들도 우리가 그들의 유적을 이렇게 바라볼 거라고 상상했을까?”
역사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시선과, 무심하게 그 앞을 지나치는 아이들의 시선. 그 사이에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 땅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 보고 싶어졌다.
룩소르. 이곳에 새겨진 손길과, 흐르는 시간의 결을 따라가 보려 한다.
카르낙 신전 앞에서 태양을 올려다본다. 빛은 강렬하고, 하늘은 맑고, 신전의 돌기둥과 탑문은 그 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나는 그 아래 서서, 3500년 전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그때도 이 태양은 같은 자리에서 이 신전을 비췄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갔던 사람들은 서로 다른 태양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름진 얼굴, 깊은 눈매, 그리고 거대한 위엄. 금장 지팡이를 쥐고, 무거운 왕관을 쓴 채, 단호한 걸음으로 신전을 향해 나아가는 한 노인.
람세스 2세.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난 바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이 길을 걸어왔고, 오늘도 태양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가 멈춰 섰다. 그리고, 세월이 묻어나는 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람세스다. 신들의 아들이며, 태양이 내린 왕이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태양을 향하고 있었다. 신전을 넘어, 저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왜 이곳을 지나가고 계십니까?”
그가 천천히 신전을 가리켰다.
“태양이 저기 있다. 나는 그 태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의 뒤를 따라오는 무리가 보였다. 흰 옷을 입은 제사장들이 조용히 그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 역시 태양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제사장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왜 태양을 경배하는 것입니까?”
그중 한 제사장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태양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파라오는 그 태양의 자손이며, 우리는 그와 함께 신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나는 다시 람세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없이 신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에게 태양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태양 아래에서 태어났고, 태양 아래에서 살았다. 그리고 태양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 그는 다시 신전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람세스 2세는 거대한 석문을 지나 신전 안으로 사라졌다. 제사장들이 그 뒤를 따르며 낮은 목소리로 기도문을 읊조렸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신전 입구에서 멈춰 선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신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조용히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손을 모으고 있었고, 누군가는 신전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외와 갈망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손은 거칠었고, 피부는 태양 아래서 탄 듯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신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파라오와 제사장만이 신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 신전을 올려다보았다. 수백 개의 거대한 석주들이 태양을 향해 뻗어 있고, 그 위에는 신들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었다. 람세스는 신과 함께하며, 제사장은 그를 따르며, 백성들은 신전을 올려다볼 뿐이다. 나는 다시 파라오를 바라보았다. 그는 신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태양을 향해 나아갔지만, 이 사람들은 여전히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태양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신전을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게 돌렸다.
“태양은... 우리를 비추지만,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다시 신전을 바라보았다. 람세스에게 태양은 곧 신이었다. 그는 신의 현신이며, 그의 길은 신전으로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태양은 그저 하늘 위에서 빛나는 존재였다. 그들을 따뜻하게 비추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존재. 신전 안과 밖. 파라오와 백성. 태양의 아래에서, 우리는 같은 빛을 받지만 다른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신전 안쪽에서 관광객들이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여기, 뭔가 기운이 이상하지 않아?”
“응, 마치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돌들 사이에서 뭔가 느껴져.”
나는 미소를 지었다. 35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어떤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태양신의 기운인지, 아니면 수많은 세월 동안 이곳을 지켜온 돌들의 기억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곳이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카르낙 신전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양옆으로 늘어선 스핑크스들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의 스핑크스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다르다. 사자의 강인한 몸을 가졌으면서도, 머리는 사자가 아닌 양이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천천히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수십 개의 돌조각들이 줄지어 앉아 고요히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강렬한 태양 아래, 이들은 변함없이 신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라니... 처음에는 낯설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조합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양은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양은 신성한 존재였다. 아문-라는 종종 양의 머리를 한 모습으로 그려졌고, 신전에서 키워지는 특별한 양들은 신과 연결된 생명으로 여겨졌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힌두교인들이 소를 바라보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소가 신의 현현(顯現)으로 여겨지고, 신성한 존재로서 보호받듯이, 이집트인들에게 양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양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신의 현신 앞에서 감히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집트의 무덤 벽화에서는 수많은 제물들이 신과 파라오에게 바쳐지는 장면을 볼 수 있지만, 양이 제물로 바쳐지는 그림은 찾아볼 수 없다. 양을 죽인다는 것은 신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파라오조차 감히 양을 희생제물로 삼지 않았다.
나는 스핑크스의 둥근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마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깊고도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었다.
사자의 강인함과 양의 신성함.
이 조합은 이곳이 단순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길은 신을 맞이하는 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1년에 한 번 신이 직접 지나갔다.
옵페트 축제.
테베에서 가장 성대한 의식이었다.
축제의 날이 되면, 신전의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던 아문-라의 신상(神像)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신전 안은 환호성과 경배로 가득 찼다.
제사장들은 신상을 황금으로 장식된 배(聖船)에 모셨다. 이 배는 신이 머무는 성스러운 곳,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태양의 배와도 같았다. 이 배가 신전 문을 통과하는 순간, 길 양옆에 서 있던 수많은 군중이 손을 들어 기도를 올렸다.
“태양의 신이 지나가신다!”
카르낙 신전에서 룩소르 신전까지, 이 길을 따라 배는 천천히 움직였다. 제사장들이 어깨 위로 배를 들어 올리고, 의식용 음악과 찬송이 울려 퍼졌다. 수많은 향이 피워지며 공기는 짙은 향기로 가득 찼다. 그 길을 따라 스핑크스들이 신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었다. 이 길 위를 오가는 파라오와 신을 보호하는 존재였다. 룩소르 신전에 도착한 후, 신은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며 새로운 힘을 얻었다. 이 의식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었다. 이 순간, 사람들은 신이 정말로 이곳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태양신이 자신의 백성들 곁을 지나가고 있다고.
며칠 후, 신은 다시 카르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길 위를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이 언제 다시 오 실지를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지금, 3500년 후의 이 길 위에 서 있다. 태양은 여전히 이 길을 비추고 있고, 스핑크스들은 여전히 길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문득 관광객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핑크스가 움직였다는 이야기 들었어?”
“한밤중에 어느 스핑크스 하나가 고개를 돌렸대.”
“정말? 신이 돌아오려는 걸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스핑크스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태양 아래 고요히 앉아 있었다.
350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 길을 떠난 적이 없는 존재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옵페트 축제 때,
신이 이 길을 지나갈 때,
그리고 사람들이 신을 올려다볼 때,
누군가는 정말로 스핑크스가 움직였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람세스 2세도 걸었던 길,
신이 지나갔던 길,
그리고 사람들이 신을 기다렸던 길을 따라.
카르낙 신전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가자, 눈앞에 거대한 기둥들이 숲처럼 펼쳐졌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압도적인 장관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대열주실(하이포스타일 홀). 134개의 거대한 석주가 마치 숲처럼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신전을 떠받치는 돌의 숲과도 같았다. 기둥 하나의 높이가 20미터에 이르니, 빽빽한 기둥들 사이로 들어서면 마치 인간이 아닌 거대 존재들의 영역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기둥에 손을 댔다. 거친 돌의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곳곳에 아직도 원래의 색이 남아 있어, 3500년 전 이곳이 얼마나 찬란한 색채로 빛났을지 상상해 보았다.햇빛이 기둥들 사이로 스며들며 공간을 신비롭게 물들였다. 이집트의 태양이 돌 위에 내려앉아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 빛을 따라 한 걸음씩 내디뎠다.
이 거대한 기둥의 숲은 단 한 명의 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세 명의 위대한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가 각 시대마다 신전을 확장하며 이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들은 왜 이토록 신전에 집착했을까?
아멘호테프 3세. 신과 동등한 존재가 되고자 한 왕이었다. 그는 이집트가 가장 부유했던 시기에 다스린 왕이었다. 전쟁이 거의 없었고, 나일강이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전쟁보다도 건축과 신앙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카르낙 신전의 대열주실을 처음으로 확장했다. 그에게 신전은 단순한 경배의 장소가 아니라, 왕이 신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세티 1세. 세티 1세는 강력한 정복군주였다. 그는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둔 후, 그 업적을 신에게 바치고자 했다. 그는 아버지 람세스 1세의 짧은 통치를 이어받아, 신전의 규모를 키우고, 아름다운 부조를 새기며, 왕조의 위엄을 더욱 강조했다.
람세스 2세. 영원히 기억되고 싶었던 왕. 람세스 2세는 90년 가까이 살며,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 통치한 파라오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후대까지 영원히 남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흔적을 신전 곳곳에 남겼다. 대열주실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졌고, 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문구가 곳곳에 남아 있다. 나는 기둥 위에 새겨진 글씨들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신과 하나가 되고 싶었던 왕들의 야망을 읽을 수 있었다.
기둥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곳에는 수많은 문자와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히에로글리프(Hieroglyph).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한 문자로, 일반적인 글자가 아닌 상형문자였다. 그림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완전한 글자 체계였다. 새, 뱀, 벌, 눈, 태양, 사람 형상 등이 조합되어, 왕의 업적을 기록하고 신들에게 기도를 바치는 문장이 되었다. 나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그 문양을 따라 그려보았다. 이 문자가 새겨질 당시, 이곳은 신과 왕만이 드나드는 성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이곳을 지나던 파라오들은 기둥에 새겨진 신들의 이름을 읽고, 자신이 신과 연결된 존재임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문양들은 훼손되어 있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지워진 듯, 표면이 거칠게 긁혀 있었다.
나는 그 흔적을 손끝으로 느꼈다.
사라진 신성한 문자.
왜 히에로글리프는 지워졌을까? 이 신전이 처음 세워질 때, 이곳은 신과 왕을 위한 곳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집트의 종교와 왕조가 변하면서, 이전 왕들이 남긴 이름과 신들의 형상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파라오는 자신의 이름만을 남기길 원했다.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전 신을 부정했다. 그들은 신들의 이름을 망각하게 만들고, 과거 왕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했다. 나는 문자가 깎여 나간 기둥을 바라보았다. 그 흔적은 마치, 이곳을 지나간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리 글자가 지워졌어도, 이 기둥들은 여전히 서 있었다. 왕들은 사라졌고, 종교는 변했지만, 대열주실의 석주들은 여전히 태양 아래 서 있었다.
만약, 이곳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다면?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멈췄다. 태양 아래 찬란히 빛나던 대열주실을 지나, 그 옆으로 난 좁고 어두운 공간에 홀로 들어섰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곳.
높은 돌벽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위쪽 천장의 작은 틈으로 한 줄기 빛이 흘러들어와, 그 빛은 마치 무언가를 드러내려는 듯 벽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우고 간 흔적들, 그러나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는 상형문자와 부조. 과거의 손길이 새겨놓은 이 흔적들이 아직도 이곳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 공간이 어떤 장소였을지 상상해 보았다.
이곳이 한때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열주실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토록 깊은 고요가 흐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신전 곳곳을 거닐고 있었지만, 이 좁은 공간 안에서는 그들의 소리마저 희미했다. 마치 시간이 이곳에서만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나는 상상해 보았다.
이곳에 파라오가 홀로 서 있었다면?
혹은, 제사장이 신의 계시를 기다리며 기도를 올렸다면?
3500년 전, 이 벽 앞에 서 있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까?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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