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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고대 문명의 심장, 테베를 걷다

by 나그네 한 Mar 09. 2025
"여보야. 나 한 5일 정도 룩소르에 다녀올게! 허락해 줘!"


"5일? 5일 동안 나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집에만 있으라고? 룩소르는 왜 이리 많이 가는 거야? 이미 10번 이상 가지 않았어? 이제 그만 좀 가! 지겹지도 않아?"


"이번에 가면 1년 동안은 그곳에 가지 않을게! 부탁이야. 함께 가자고 해도 당신은 안 갈 거잖아. 나라도 혼자 가야지."


아내의 남편, 두 아이의 아빠. 겨울 방학으로 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아내는 5일 동안 남편이 홀로 여행을 간다는 말에 당황스러워한다. 하지만, 아내는 휴가 때가 되면 나와는 달리 여행보다는 집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내의 허락을 받아낸 나는 룩소르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GoBus main station - 하루에 여러 차례 룩소르에 가는 버스들이 있다.


'피라미드의 나라'

'파라오의 나라'

'나일강의 나라' 

'고대 문명이 처음 시작된 나라'

사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집트에 오면 한 번쯤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박물관에서 파라오의 미라를 보고 싶어 한다.  


평소 고대 문명,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방학, 휴일이 되면 이집트의 역사와 문명을 공부할 수 있는 곳 어디든 찾아다녔다. 이집트 여러 도시, 시골, 사막 등 가보지 않은 곳이 적을 정도로 이집트 곳곳을 누볐다. 이집트의 여러 도시와 시골을 누비며 가장 매력을 느꼈던 도시는 룩소르이다. 나의 인생에 룩소르는 거주지, 고향 이외에 가장 특별한 도시이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늘 그렇듯 나는 룩소르행 야간 버스에 올랐다. 좁고 불편한 좌석, 한쪽에는 덩치 큰 외국인 여행자가 앉아 있고, 에어컨 바람은 너무 강하다. 창밖을 바라보며 깜빡 잠이 들었다가 문득 눈을 뜨면, 저 멀리 사막 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난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일출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해가 뜨는 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바라보는 일이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의 장엄함은 언제나 새롭다. 내 취미는 늘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이다. 일출()로 시작하는 아침과 일몰(日沒)로 마무리하는 하루는 성실함을 요구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어디에서든 진짜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다.


이른 아침 룩소르 광장

아침 7시. 룩소르 광장은 아직 한산했다. 드문드문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한 상인들이 보인다. 하루에도 수많은 여행자가 몰려드는 도시이지만, 이렇게 고요한 순간을 마주하는 건 언제나 새롭다. 그러나 이 정적은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 후, 기차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외국인 여행자들, 그들을 태우러 온 마차와 택시, Tuktuk(삼륜 오토바이)과 허름한 15인승 미니버스가 광장을 가득 메운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말이 끄는 마차의 바퀴 소리, 거리의 상인들이 손님을 부르는 외침이 한꺼번에 뒤섞인다. 이 혼란스러운 순간 속에서야 비로소 '진짜 이집트'를 마주하게 된다.


이집트의 여행 성수기는 보통 11월부터 3월까지다. 해가 지면 쌀쌀하지만, 낮에는 반팔 차림으로도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다. 북쪽 지역(하이집트)보다 남쪽(상이집트)은 일교차가 크다. 사막 기후의 변덕스러움은 이집트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을 종종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성수기에 여행을 계획한다면, 여름옷과 겨울옷을 모두 챙기는 것이 좋다.


룩소르 나일강 선착장

버스에서 내린 후, 광장을 지나 룩소르 시내로 걸음을 옮긴다. 광장에서 10분만 걸으면 나일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전히 이 도시가 반가운 나는 천천히 룩소르의 아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강가에 서서 부드럽게 일렁이는 나일강을 바라본다. 잔잔한 물결 위로 크루즈선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전통적인 펠루카(Felucca) 한 척이 고요히 떠다닌다. 룩소르의 아침 하늘은 맑고 푸르며, 공기는 한층 더 상쾌하다. 나일강 건너편에는 룩소르 서쪽 유적지가 아련히 보인다. 햇살을 머금은 사원과 모래빛 건축물들이 이집트 고대의 숨결을 전하는 듯하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테베(룩소르)


룩소르(Luxor)는 고대 이집트에서 '테베(Thebes)'로 불렸던 도시로, 파라오들의 위대한 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며, 각각의 지역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과 죽음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래서 룩소르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이 도시는 수천 년 동안 권력과 신앙,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고대 이집트 왕국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시기의 수도였다. 파라오들은 룩소르에서 신을 섬기고, 전쟁을 준비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기념비적인 유산을 세웠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룩소르는 단순한 행정 수도가 아니라, 신과 인간이 연결되는 신성한 장소였다. 당시 이곳에서 이루어진 건축과 예술, 종교적 의식들은 이후 수천 년 동안 이집트 문명의 근간이 되었다. 강력한 파라오들이 이곳에서 나라를 다스렸으며, 나일강의 풍요로움 속에서 문화와 경제가 번성했다.


오늘날 룩소르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역사’다. 도시 곳곳에는 여전히 고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이어진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인들이 남긴 찬란한 유산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나일강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내가 룩소르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유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은 인간이 신과 운명을 이야기하고, 문명을 꽃피우며, 영원을 꿈꾸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룩소르에 서는 순간, 나는 역사의 한 장면 속에 직접 발을 들여놓는다.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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