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얄리 Oct 22. 2023

제6화. 반복되는 상처

배드민턴은 라켓으로 하는 운동이다.

라켓의 그립을 제대로 잡는 건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그런데 그립 잡는 버릇이 잘못 들어

임팩트 있게 공을 쳐야할 때 그립이 돌아가고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초기 경험이 죽을 때까지 간다는 무서운 속담인데 

인생 뿐 아니라 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초보 때는 우리 몸이 난생 처음 접하는 

새로운 동작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기간이다. 

만약 이 때 잘못된 동작을 받아들이면

뇌와 근육이 잘못된 정보에 익숙해져버려 

아주 자연스럽게 잘못된 동작을 보이게 된다. 

그러면 잘못된 동작으로 인해 

부상이 많이 오기도 하고, 

발전에 한계를 빨리 경험하게 되면서

실력향상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나의 경우,

인생과 배드민턴 모두 초장에 스텝이 꼬인 셈이다.


인생초기의 불운은 

동생이 태어난 날 인생 최초로 애착대상을 상실한데 그치지 않았다.

이후 지속적으로 ‘심리적 엄마’가 부재했다.

엄마는 바쁘거나 아프거나 신경질적이거나 그도 아니면 지쳐있었다.

나는 세심하게 돌봐지지 못했다.

돌봄 대신 엄마 심부름을 하며 동생을 챙기거나 

어른의 도움 없이 내 일을 알아서 해내야 했다.

어려서부터 나의 감정과 욕구는 뒷전이었고, 존중되지 못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떤 남자아이가 내가 소변을 보고 있는 

화장실 문을 열어젖힌 일이 있었다.

설거지 하는 엄마 곁에서 그 사건을 얘기했는데 

엄마는 그 남자애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같은

(지금 생각할 때)어처구니 없는 반응을 했다.

내가 그 순간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고 수치스러웠을지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그런 감정들을 이해받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말하기 전보다 더욱 위축되고,

내가 뭔가 잘못된 느낌까지 덧붙여 받아야했다.

아마 내가 아프고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에

엄마는 늘 그렇게 무감각하지 않았나 싶다.


어린 시절 나의 주 양육자인 엄마는 

바쁘고, 자주 아프고, 신경질적이고

그리고............................................. 잔인했다. 


아빠는 달랐을까?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내가 옷을 사달라고 하면

‘니가 옷을 벗고 있냐? 라떼는 말이야~ 먹을 게 없어서~’

라는 자기연민 어린 레파토리를 반복할 뿐

나의 필요나 감정에는 무심했다.


더 어릴 때 더 강렬한 기억으로는

미술시간에 뭘 만들어 와서 

아빠한테 자랑스럽게 보여줬는데.

아빠의 반응이 기대와 달리 무미건조하고 냉랭했던 장면.

내 존재가 거부당한 느낌, 

아빠가 나를 보고 있지 않다고 느꼈던 기억이다.

그의 세계에 나는 없었다.

아빠는 나만 안 보는 게 아니라

가계의 재정, 자신과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도 눈을 감고 살았다.

아빠는 바둑과 화투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썼고,

그러다 엄마에게 주기적으로 혼이 나는 삶을 살았다.


남편은 부모가 나한테 한 짓을 똑같이 했다.


남편이 원하는 것은 나를 통한 안정감이었다.

그 안정감을 바탕으로 일과 운동, 사람들에 몰두했다. 

그것들이 나보다 중요했다. 

전반적인 재정, 주거, 여가시간, 인테리어 모두

구애하던 때와 달리

점점 남편 입맛대로 남편위주로 돌아갔다.

내가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관계는 더욱 긴장되었고, 

남편은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나를 버렸다.


S와 함께 심층적인 내면 아이 작업을 하기 전까지

엄마는 아빠 대신 가정을 책임지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람,

아빠는 배운 게 없어 무능하고 무뚝뚝하지만 성실하고 가족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 삶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 깊은 상처를 파헤치자

그들은 자신들에 매몰되어 

어린 자식의 고통과 필요에는 무감각하고, 무관심했던 잔인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놀랍도록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남편은 가정적이고 헌신적이고 성실한 듯 했지만 동시에 

자기 위주였고, 나의 고통과 필요에 잔인하리만치 무감각하고 무관심했다.


tip.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린 시절에 형성된 부모에 대한 이미지가 성인이 된 후에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의식적으로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채워줄 사람을 선택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상처 받았던 어린 시절의 사건을 또 다시 결혼생활 가운데 재현할 수 있는 배우자를 찾는다. 만약에 부모가 어린 자녀를 잘 돌보고 좋은 것을 제공했던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부모가 우울하고 불행했다면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우울한 배우자를 찾아다니게 된다. 어렸을 때 상처를 받았던 그대로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또 다시 끌리게 된다는 거다. 이것을 반복강박이라고 하는데, 이는 오래된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무의식적 열망에서 비롯된다. 오랜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새사람을 만나도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전 05화 제5화. 사건에 가려진 맥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