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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Oct 22. 2023

제7화. 피해자라는 고통의 단물

배드민턴을 제대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기본기를 잘 가르쳐준다는 선수출신 코치에게 레슨신청을 했다.

라켓 잡는 법, 기본 스텝, 스윙부터 다시 배워야 된단다.

레슨 첫 날 10분 조금 넘게 레슨을 받고

땀을 비 오듯 쏟았다.

뭔가 가벼워지면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도 마음먹은 대로 새 출발이 가능할까?


마흔의 문턱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장기 상처와 그림자들,

도돌이표 붙은 악보처럼

되풀이 되고 있는 상처의 굴레,

좌절된 욕망과

널뛰는 감정

그리고

실패한,

원치 않는 나의 세상들.


파국으로 치달은 부부관계 뿐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는 첫째

손톱을 물어뜯는 둘째

아이들 친구 엄마들로만 채워진 인간관계

대출을 끼고 전월세를 전전해야하는 신세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주식에 투자된 쌈짓돈

체계적으로 관리된 적이 없는 수입과 지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나의 일자리,

결혼 10년 차인 서른 여덟의 성적은

점수를 매길 수조차 없는

실패자의 성적표.


당시 나는 분노와 열패감에 쉽게 휩싸였고,

동시에 ‘이건 다 너 때문이야~~’를 외치고 있었다.


사건이 주는 충격으로

사건을 과대하게 인지하고

사건의 맥락은 축소하려는 심리가 극심하게 출렁였다.

남편을 ‘가해자’,‘나쁜 놈’,

나는 ‘피해자’, ‘희생자’ 위치에 올려놓고

남편을 향해 화를 내는 상태에 곧 잘 빠져들었던 것이다.

상담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로 마음을 먹었다.


S는 화를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화난 상태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화 날 수 있다,

화 날만 하다고 허용하고

어떤 욕구가 좌절되었는지, 그 좌절감과

욕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왔다.


동시에 내가 피해자의 위치에 고정되지 않도록

도전해왔다.


“감정을 우리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구요!”

정확히 이해는 못했지만, 일단 “네”라고 대답했다.

“화를 내서 얻는 이득, 만족이 있어서,

내가 화를 계속 선택한다, 붙잡는다고 가정하는 거예요!

화를 내면, 좋은 게 뭐가 있을까요?“

뭔 말인지 긴가민가했다.

“나는 화를 내도 돼요. 남편은 다 받아줘야 해요.

남편은 확실히 잘 못했으니까요.“라고 동문서답 같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툭 던졌다.

“아~ 그 말은 ‘남편은 확실히 잘못 했고,

나는 화낼 자격이 있어요. 내 화는 정당해요.‘라는 뜻인가요?“

라고 다시 물어왔다.


‘내 화는 정당하다.

나는 정당하다, 잘못이 없다.

너는 틀렸고, 내가 옳아!‘

내가 옳다는 생각이 주는 은근한 만족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옳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어떨 것 같아요?”

“나도 잘못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해요”

“내 잘못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 어떨 것 같아요?”

“내 책임을 받아들여야할 것 같아요.”

“책임을 받아들이면 어떨 것 같아요?”

“내가 변해야할 것 같아요.”

“변한다면 어때요?”

“어렵고 하기 싫어요”




tip. 감정을 억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정에 매몰되는 것도 감정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감정은 누르고 모른 체할 것도 아니고 붙들고 있을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이런 저런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부당한 일’과 ‘의로운 울분’이 정상적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죄없는 피해자가 되는 것은 은근한 단물, 이득이 있다. 때때로 경제적 보상까지 따르기도 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를 원망하면, 자신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원망하는 피해자의 위치에 있으면 매일 한계 속에서 ‘나는 나약하고 상처받았고 무력하다’는 자기 이미지에서 묶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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