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싫어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엄마 속을 많이 썩였던 것 같다. 당시 몸이 지금과 달리 무척 약하였다. 정말 바람이 세게 불면 날아갈 정도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몸무게가 18킬로그램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무척 학교 가기 싫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은 체구로 고개를 넘어 십 리 길을 걸어야 했다. 걷는 것도 싫었지만 아침에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는 것이 싫었다. 보일러가 없던 때라 아침에 찬물에 씻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래서 잘 씻지 못해 손은 항상 터있었고 때가 꼬장꼬장 끼어있었다. 콧물이 그땐 왜 그리 많았는지 소매는 언제나 코를 닦아 번들거렸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내는 딴 세상 사람처럼 듣는다. 나를 장인어른 시대 사람처럼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살아도 같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산 것은 아니다.
신발도 깜장 고무신이라 겨울에는 양말을 신어도 발이 너무 시렸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히 내게 엄청 고통이었다. 엄마는 나의 손을 이끌고 얼마를 같이 간다. 가다 보면 감나무 밭을 지난다. 엄마는 빨갛게 잘 익은 홍시를 따서 내게 주었다. 약간 서리를 맞은 홍시는 더욱 달았다. 이렇게 엄마의 손을 잡고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초등학교 6년 내내 개근상은 한 번도 못 받았다. 6학년 때 한 번 정도 결석하거나 조퇴한 학생에게 주는 전근상이 다였다.
차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가 생겼다.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인데 이름도 비슷하다. 이 친구와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한 번 빼놓고는 같은 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친구는 그래서 내게 특별하다.
학교에 가는 길은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어린 나이에 무서웠다. 그래서 친구와 나는 항상 같이 다녔다. 내가 숙제를 안 하거나 시험을 못 봐서 나머지를 하면 이 친구가 기다려 주었고 그 친구가 나머지를 할 때는 내가 기다려 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볼 것이 많다. 갈 때는 바쁘게 가기 때문에 눈에 안 들어오던 것이 돌아올 땐 여유가 있어 이것저것 눈에 들어온다.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맑은 시내가 흘렀다. 친구와 나는 돌아오는 길에 시내에서 물장난도 하고 고기도 잡았다. 발로 더듬더듬하면 발바닥에 꼬물꼬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발밑으로 살짝 밀어 넣으면 쉽게 고기가 잡혔다. 이렇게 잡은 고기가 모래무지다. 모래를 파고 들어서 지은 이름 같다.
고개를 넘어올 때 아무리 둘이 같이 가도 조금은 긴장한다. 당시에 늑대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 금방이라도 나타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고개를 넘었다. 고개 정상쯤에 좌우에 나무들이 많았다. 커다란 나무도 있었고 우리들과 비슷한 키의 나무들도 있었다. 친구와 나는 각각 자신의 나무를 정했다. 그리고 매번 고개를 넘어 다니며 바라보며 빙그레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도 커갔고 우리들의 나무도 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