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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Sep 08. 2024

17. 재석이 사진을 보내오다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왜 아퀴나스죠? 그 친구가 아퀴나스를 특히 좋아했다던가 뭐 그런?”

“아뇨. 전혀요. 교리나 철학 면에서라면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데 왜 아퀴나스라는 이름을 붙인 거예요?”

“그 이유를 저도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기보다, 아마 그때도 몰랐을 거예요.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어감이 마음에 들었으려나요?”

“그쪽이 가깝겠네요. 굳이 따지자면요. 그냥 저절로 써졌어요. 아퀴나스라고 말이죠.”

“어떤 영감이라도 받은 모양이지요?”

“글쎄요. 어떤 영감이 왔을까요?”

“그걸 제가 어찌 알겠어요. 어쨌든 잘 어울려요, 그 이름이.”

“그렇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네. 그 이름을 쓴 본인이 모르니 아무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잘 어울린다, 끝.”

“끝.” 나는 들고 있던 티스푼으로 테이블 위를 세 번 때렸다. 땅땅땅.


재석이 녀석에게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아퀴나스에 대해 잘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현학적이고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녀석의 대답치고는 꽤 의외의 대답이었다. 녀석이 역사 속의 인물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좋아할 리는 없었지만 딱히 싫어할 일도 없는 것이, 녀석이나 나나 차라리 관심이 없다는 쪽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 것치고 아퀴나스라는 이름에 대한 나의 만족감은 상당히 큰 편이었다.

만족감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마치 아퀴나스 신부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재석을 모델로 아퀴나스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재석이 아퀴나스 신부라는 원본의 하위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퀴나스 신부는 재석이 녀석을 모델로 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캐릭터였다. 어쩌면 본인조차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술 더 떠서 재석으로 사느니 차라리 아퀴나스가 되는 게 나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성호의 장례식은 잘 치러졌을까? 이후로 재석은 연락하지 않았다. 나 또한 연락하지 않았다. 문제의 사진은 여전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건 그냥 누군지 알 수 없는 남자 1과 남자 2와 여자 1에 불과해 보였다.

한심한 착각을 한 데다 그걸 또 카페 사장한테까지 보여준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재석이 놈이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이성을 되찾아가던 중 재석의 문자를 받은 것이다.


녀석은 다른 말 없이 사진만 한 장 보냈다. 카페 마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둑한 길에서 휴대폰으로 받은 작은 사진이지만 문자창을 열자마자 무슨 사진인지 알아차렸다. 녀석도 ‘그 사진’을 본 것이다. 언제 봤을까? 언제 봤고 왜 내게 이걸 보냈을까? 이 자식은 왜 사진만 보내고 아무런 말이 없는 거지? 나는 집에 갈 때까지 답문자를 보내지 않고 집에 와서도 한참 고민하던 끝에 문자를 보냈다.


‘이게 뭐야?’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녀석이 곧 답을 보내왔다.

‘잘 봐봐. 뭐 생각나는 거 없어?’

‘흐릿한 사진이라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모를 리가? 네가 만들어낸 풍경인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끝까지 모르는 척할 것인가, 아니면 나 또한 이 사진을 보았느라 솔직하게 대답해야 하는가.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게 진짜 우리 사진일 리가 없고, 사진이 흐릿해서 식별도 안 되니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나는 솔직한 쪽을 택했다.

‘역시 너도 봤구나.’

‘응.’

‘넌 어디서 어떻게 봤냐?’

‘네가 본 식으로 봤겠지.’

‘… 성호가 네게도 메시지를 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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