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 자매에게.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아서 편지라는 것을 다 쓰게 되었구나. 떠나기 전 혹시 몰라 집 주소를 받았으니 망정이지. 지금 이 순간 가장 궁금한 것은 네가 살아있는지에 대한 여부다. 살아있기는 한 것이냐?
나는 어학연수와 동시에 세례를 받기 위한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세례명을 받게 되었다. 내 이름은 이미 알았겠지.
답장을 받을 주소를 이 글 아래에 써놓겠다. 살아있다는 소식이라도 부디 전해다오. 주소를 겉봉투에 쓰지 않은 이유는 너도 눈치챘겠지만 나의 세례명이 돋보이길 바라서야.
나는 이곳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에도 연고가 있는 수도원이라서 수사가 되는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는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니 과정을 마친 때쯤에는 돌아갈 수 있겠지. 정확하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
이곳에서는 휴대전화를 쓸 일이 거의 없고 또 수사가 되는 과정 중에는 고립된 생활을 훈련받아야 해서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목소리라도 들을 생각이었는데 왜 휴대전화가 정지되었지?
학교 사람들 몇 명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네 소식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구나. 네가 그토록 고립된 사람이라는 것이 새삼 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왜 가슴이 시린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보다는 네가 사제에 더욱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구나. 너만 원한다면 함께 이곳으로 와서 사제가 되어도 좋았을 것을 그랬다. 아, 넌 여자라서 안 되는구나. 미안하다. 의도치 않게 종교의 차별적인 면을 드러내고 말았다.
혹시나 네가 나를 보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닌지 궁금해한 적도 있었지만 그럴 리가 없지.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아주 긴 편지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쯤 쓰고 나니 더 이상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이 이상 무슨 헛소리를 또 지껄이겠니? 늘 그랬듯이 이 편지도 반 이상이 헛소리로 채워질 테고 나머지는 아마 이상한 감상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그건 내가 비로소 수도원에 들어가기 직전 제법 심란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니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제발, 부디, 꼭! 답장을 해주길 바라. 한 줄이라도 좋다. 그냥 살아있다는 신호만 다오.
아퀴나스.
… 그리고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은이는 편지를 꼼꼼히 두 번 읽었다. 아퀴나스. 은이는 휴대폰을 들어 아퀴나스를 검색했다.
“… 미친놈.”
은이는 녀석의 세례명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이 이상 녀석과 어울리는 이름도 없을 것이다. 아퀴나스의 사상이라든가 생애 등은 녀석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고 녀석이 존경할 만한 인물도 아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녀석은 이 이름을 골랐을 것이다.
은이는 노트를 펼쳐서 연필로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 아퀴나스에게.
나는 살아있다.
그럼 안녕.’
은이는 마지막 줄을 지웠다.
‘… 나는 살아있다. 너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일 년 간 로마에 있었는데 결국 못 찾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