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는 수도원에 들어간 아퀴나스에게 자신이 로마의 근교에서 일 년 간 체류했다고 편지에 썼다. ‘너를 보고 바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우선 너를 찾을 수가 없었고, 찾을 방법이 없었으며, 보지도 못한 채 그냥 돌아오기에는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다.‘
은이는 여기까지 쓰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이 과연 속을까? 내가 자신을 보기 위해 그 먼 곳에 갔다는 사실을 믿을 리 없었지만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그리고 수중의 돈이 거의 다 떨어졌기 때문에 나는 머물던 숙소에 혹시 직원으로 채용해 주는 것이 가능하느냐고 물었다. 숙소의 사장은 한인 여성이었는데… ’
은이는 거짓말을 술술 쓰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지? 뭐 어때, 재밌잖아. 어차피 배경만 이탈리아로 바뀌었을 뿐 대충 일 년 간 지내는 이야기와 숙소에서 직원으로 일한 것 등은 다 실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프랑스든 이탈리아든 중요하지 않다. 은이는 그냥 대충 거짓말로 쓰기 시작했다.
‘… 그렇게 나는 아시시에서 체류하게 되었어. ‘왜 아시시인가 하면, 난 성 프란체스코를 존경하기 때문이지.’ 비자문제가 걸렸지만 그건 3개월에 한 번씩 국경을 넘어갔다 오는 것으로 해결되었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아 알게 뭐람.’ 지난 일 년 간 난 게스트하우스의 신데렐라로 불리며 죽어라 일만 했어. 숙소 청소, 숙박객들의 빨래와 아침 식사, 하루에도 몇 번씩 이루어지는 체크인과 체크아웃 때문에 한 시도 쉴 시간이 없었지. ‘이건 모두 사실이긴 해.’ 가끔은 한식을 먹고 싶어 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요리도 해야 했어.‘
그럴 리가 있나, 나는 그럴듯한 한식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걸! 은이는 중얼거리며 킥킥대고 웃었다.
은이는 대충 글을 마치고 편지를 곱게 접어놓았다. 내일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침대에 누웠다. 비행기에 장시간 구겨져 있느라 온몸이 뻐근했지만 온갖 것들이 잔뜩 들어있는 트렁크를 보자 마음이 심란해져서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일어났다. 돌아왔다는 실감이 비로소 들었다. 은이는 수중에 있는 돈을 계산해 보았다. 한두 달 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쉴 수 있다. 하지만 전세금을 올려달라기라도 하면 어쩌지? 은이는 딱 일주일만 쉬고 다시 일하기로 했다. 어디서 일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지만 마음에 여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마음가짐이 생긴 것이다. 파리에서의 체류가 은이에게 남긴 것이라면 아마 그런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