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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Oct 13. 2024

37. 결심


나는 기사를 실었던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와 말투에서 연륜이 느껴지는 상담사에게 연결되었다. 최근에 은퇴한 언론인 모씨의 회고담을 기사에 실은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묻자, 상담사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요란하게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와 클릭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최근에는’ 그런 기사를 실은 적이 없다는 대답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렇다면 지난 몇 년 안에 그런 기사를 실은 적이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상담사가 다시 자판을 두들기더니 ‘최근은 아니고’를 강조하며 7년 전에 그의 회고담이 실린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대답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아직 질문이 남았다. 그 기사가 왜 갑자기 삭제되었는지 물어봐야 했다.


“고인의 요청으로 기사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했습니다.” 잠시 기다리라던 상담사가 이번에는 한참 후에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고인? 고인이라고?’ 은퇴한 언론인의 이름을 검색한 후에야 그가 일주일 전에 지병으로 별세했다는 부고 기사를 보게 됐다. 그렇다면 기사를 삭제한 것도 일주일 이전 어느 때쯤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뭐라도 남기고 싶어 하는데 이 사람은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제 고인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어떤 단서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다음 날 카페 사장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카페 사장이 위로하듯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두들겼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어제는 내가 미친 줄 알았잖아요.” 내가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미친 거게요? 그 기사 같이 봤잖아요.” 카페 사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나는 웃어 보였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이상한 오싹함이 다시 찾아왔다. ‘그랬던가? 내가 사장에게 그 기사를 보여줬던가…?’

“아, 생각해 보니 제가 본 건 사진뿐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사장이 빠르게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렇죠?” 내가 대답했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라….’ 사장이 자신의 실수를 수정하는 속도는 항상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실수를 하지 않는 편이니까 그럴 것이다. 저런 유형의 완벽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약점을 잡히기 싫어하는 법이니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거리를 두면서 완벽하게 친밀하다. 저런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 사람은 그게 어렵지 않은 것일까?

“무슨 생각해요?” 사장이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지난번에 들려줬던 영화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을 창조한 작가를 찾아가서 원고를 태워 소멸한 것조차 그 소설에 쓰여있던 걸까요?”

사장은 답하지 않고 가만히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계속 말하라는 듯한 눈빛.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계속 말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소설의 주인공에게 자유의지 비슷한 것이 하나라도 있었는지, 그 죽음이 정말 자신의 의지가 맞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순간 카페 사장의 얼굴에 고통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항상 유지하던 평정심이 일순 무너지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의 감정이 그를 때리고 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카페 사장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고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요?” 카페 사장이 대답을 피했다고 느꼈다. 나는 더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다.

“모르겠어요. 그 영화가 아니어도 인간들이 평소에 무심코 믿고 있는 완벽한 자유의지라는 것이 허상이라고,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야 모두들 공평하게 자유의지가 박탈된 상태겠지만,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라….”

“… 있다고 생각해요.” 사장이 내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그에게 자유의지가 있었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그의 죽음이 소설의 결말과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소설 속 세계에서 그는 독립된 하나의 개체라고, 작가의 손을 떠나 숨을 쉬는 하나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라고… 생각해요.”

평소의 사장 답지 않은 격정적인 대답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사장과 나는 서로의 눈을 보며 가만히, 꽤 오래 그렇게 마주 보고 서있었다. 그의 눈이 말하는 것을 읽고 싶었다. 뭔가 알고 있고, 뭔가 말하고 있는 눈. 하지만 동시에 절대 말해주지 않겠다는 결심이 서린 눈.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나는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냅킨에 사직서를 갈겨쓰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퇴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의지로,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를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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