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퀴나스 신부는 여전히 말이 많았다. 은이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눈으로는 계속 인파를 훑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수호의 모습이 그렇게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은이는 낮은 포복으로 자리를 피하는 수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럴 리가… ’
“자매님?”
‘분명 어디에 있을 텐데… ’
“자매님!!” 아퀴나스 신부가 큰 소리로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은이는 화들짝 놀랐다.
“아, 왜, 왜요?”
“대체 뭘 찾는 거예요? 내 얘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사제를 이렇게 섭섭하게 해도 됩니까?”
“왜 안 되는데요? 여기까지 나왔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죠? 뭔 사제님이 욕심이 많으시네.”
“뭔데요, 뭘 찾는데요?” 아퀴나스 신부가 집요하게 물었고, 은이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좀 전에 수호를 봤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지 뭐예요?”
“… 그래요?”
“응. 분명 봤어요.”
“자매님.”
“네?”
“그런데 왜 내게 존댓말을 쓰죠?”
그제야 은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퀴나스 신부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만칼라가 주는 위엄에 기가 눌리니 존댓말이 절로 나오네요.” 은이가 대답했다. 아퀴나스 신부는 손바닥으로 로만칼라를 가렸다가 보였다가를 반복했다. “이러면 어떻게 말할 건데요?” 은이는 그의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공항을 나섰다. 서울로 가는 공항철도를 타러 가다가 창 밖으로 얼핏 수호를 본 듯도 했다. 하지만 아퀴나스 신부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보러 와서는 만나지도 않은 이유가 있을 테지. 수호가 온 걸 알면서도 굳이 녀석을 찾아보지도 않는 이유가 있을 테지. 은이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실은 수호 형제와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어요.” 아퀴나스 신부는 열차 안에서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을 했다.
“무슨 말다툼이요?”
“그냥 사소한 말다툼이었어요.”
“말다툼이 어떻게 가능했죠? 휴대폰 쓰기도 조심스럽다면서 이메일도 아닌 편지를 해대던 분이.”
“… 시내 외출이 가능해진 후에 수호 형제가 로마로 찾아온 적이 있어요.”
아퀴나스 신부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대해 말하듯이 목소리를 꾸며서 가볍게 말했지만 은이는 그 말투에 대해 잊지 않고 있었다. 뭔가를 감추고 싶을 때 녀석이 쓰던 어색한 말투.
“수호가 갔었군요? 하긴 수호는 예전에도 유럽여행을 자주 가곤 했으니까요.”
“네, 여름휴가라고 하더군요. 5월이 덥기는 하죠.” 아퀴나스 신부가 대답했다.
“그래요, 5월에 미리 가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은이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아퀴나스 신부는 잠시 말을 끊고 은이의 얼굴을 힐끔 바라봤다. 은이도 ‘왜, 뭐?’라는 듯이 그를 힐끔 봤지만 실은 아퀴나스 신부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설마 내게 둘의 관계에 대해서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야? 고백성사를 들어줘야 할 사제가 되려 나 같은 무신론자에게 고백성사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대체 왜 이래?’
“흐음.” 은이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하듯 들여다본 아퀴나스 신부가 신음소리를 길게 뺐다.
“뭔데, 아 왜요?”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응?”
“보통 이쯤 되면 내게 물어볼 것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수호와 무엇 때문에 싸웠느냐라든가, 뭘 어떻게 싸웠길래 오늘 공항까지 나와서 만나지도 않고 그냥 돌아가느냐 등등. 그런데 왜 안 물어보고 말을 피하죠?”
“그렇죠.” 은이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럼 이제 얘기해 봐요. 이 어색한 반응은 뭔가요?” 아퀴나스 신부가 집요하게 물었다.
“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 했던 모양이죠. 그냥 넘어가주려고 했는데 굳이 그렇게 말하니 그럼 이제 물을게요. 왜 싸운 거죠?”
“비밀이에요.”
“이야… 사제가 되면 좀 바뀔 줄 알았더니.”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은이를 바라보며 아퀴나스 사제가 엄숙한 표정으로 성호를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