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작게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있다. 나는 너의 뒷모습을 본다… 고 쓴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있다. 그토록 꿈꾸던 이 작고 평온한 우리의 공간에.)
은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파리에서 돌아온 지 석 달 남짓 지난 후였다. 서울로 돌아오고 난 후 남편에게 파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들려주었다. 그는 화를 내거나 냉소하는 대신 떠나지만 말아달라고 매달렸다. 우리의 관계는 한 번도 뜨거워 본 적이 없었고, 어느 한쪽의 마음이 변하거나 식으면 헤어지는 데 동의하는 계약서를 쓰는 게 좋을 지도 모른다는 식의 언급을 그가 먼저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꽤나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가 그의 심리에 예상치 못한 역동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나 못지않게 스스로의 반응에 당황해하는 남편을 보며 그에게 스스로 납득하고 정리할 시간을 주면 서로 크게 상처받지 않고 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은 이 모든 것이 비겁한 변명이라는 것을 그때도 알고 있었다. 나는 단지 절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고, 은이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메일을 썼다. 은이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 3개월간의 시간을 은이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은이에게서 답장이 없어도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았고, 언제든 남편이 나를 포기하거나 혹은 내게 정 떨어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어쩌면 은이가 그럴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조급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냉소가 내게 어울리는 옷이라고 믿었고, 뜨겁게 타오른 감정은 식는 것도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은이에 대한 내 감정이 뭔지도 몰랐다. 그저 예민하고 여리지만 그만큼 좋은 감각을 타고난 은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좋았고 그게 계속되길 바랐다. 내가 자신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길 바라는 유치한 자기애를 은이가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죽기 전 내게 메일로 보낸 글을 읽고서야 내가 은이에 대해 아는 것보다 은이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이는 나의 얕은 바닥을 함께 있을 때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나를 사랑했다.
은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은 우리의 관계를 눈치챘던 그 장기투숙객이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게스트하우스 사장에게서 내 연락처를 힘들게 얻어냈다면서, 내게 꼭 전해야 할 것 같았다며 은이의 죽음을 알렸다. 그가 전한 은이의 마지막 동선은 이러했다. 조식에 쓸 바게트를 사 오는 길에 평소에 이용하지 않던 노선의 메트로를 탄 그는 파리 시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파리 남쪽 외곽의 역에서 ‘실족했다.’ 은이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작고 마른 동양인 여자가 가볍고 자유로운 새처럼 날아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나는 현실감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고, 계속 바게트가 신경 쓰였다. 그렇다면 바게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게트도 함께 떨어졌을까? 은이는 바게트를 사면 면포로 싸서 천으로 만든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 모습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기억났다. 그 바게트는, 은이의 바게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게트도 함께 떨어졌을까? 멍하게 듣고만 있던 나는 선로에 나뒹굴고 있을 더러워진 바게트를 생각하며 오열했다. 은이가 죽었다는 것은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회사에 무단결근한 채 전화로 짧게 퇴사를 통보하고는 파리로 떠날 준비를 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은이의 죽음을 전했다. 남편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빠르게 짐을 빼고 이혼 관련 서류를 정리했다. 비행기를 타고난 후에야 은이의 죽음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물 한 모금조차 목구멍을 넘길 수 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파리에서, 내 얼굴을 본 게스트하우스 사장은 말없이 은이의 유골 가루와 함께 유품을 전해주었다. 은이의 부모는 가난했고, 외국에서 일어난 사고 소식을 들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은이 시신의 화장비용을 댄 사장에게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는 듯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지만, 담배를 끼고 있는 그의 손가락이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렸다.
게스트하우스 사장은 은이가 머물던 방에 내가 묵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 방에 머물며 나쁜 결심을 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는 거의 닿을 정도로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대고는 위협하듯이 말했다. ‘은이를 기억할 사람은 이제 너밖에 없으니, 살아남아서 너를 추모하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질책하듯 내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불고는 와인을 마시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사양하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나는 은이의 유골함이 들어있는 상자를 품에 안고, 은이의 작은 트렁크를 끌고서는 근처 호텔로 갔다.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죄책감이 나를 잡아먹어 나의 존재 또한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며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바라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은이의 트렁크를 열어서 그 아이의 많지 않은 짐들을 간신히 만지고, 바라보았다. 트렁크의 맨 아래쪽에 내가 선물로 사준 와인병, 그리고 낡은 노트가 있었다.
은이는 상처를 받으면 글로 써서 승화시키는 오랜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가 나에 대해 쓴 글처럼 파리로 떠나오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담담한 문체로 쓰여있었다. 나는 글을 통해 재석과 성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은이는 성호와의 관계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되었지만 그 상처로부터 살아남았고 그래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 메트로의 승강장에 서있는 은이의 등을 떠민 것은 나다. 하지만 누가 그 아이를 머나먼 타국의 승강장에 세웠지? 은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넘길 누군가를 나는 필사적으로 찾았다. 그렇게 선택되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걸 가지고도 단 하나를 갖지 못해 목숨을 버린 낭만적인 성호, 그리고 수호. 그 희생양을 기꺼이 제단에 올린 재석, 그리고 아퀴나스 신부.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의 모티브를 제공하게 된 그들에게 나는 조금도 미안하지 않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이제 은이를 기억할 사람은 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 어떻게 하면 은이라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은이가 내게 보낸 글을 훼손하지 않은 채, 주체가 계속 은이인 채로, 은이가 죽지 않고 살아서 행복해지는 글을 남길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냈다. 은이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쓰게 만드는 것, 살아남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회고하는 은이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은이와 겨우 한 달을 함께 보냈을 뿐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나의 글 속에서 은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쓰면 쓸수록 은이는 내가 알던 그 아이와는 조금씩 다른 개체로 성장해 나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써나갈수록 은이는 나를 닮아갔고 이게 얼마나 기만적인 일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은이는 은이가 아니었다. 결국 소설 속 소설의 은이는 은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었지만 소설의 화자인 ‘너’에게는 그 이름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은이를 글쓴이로 상상한 나의 소설은 그렇게 중단되었다. 소설을 포기한 지 십 년 하고도 몇 년이 더 흐른 후 느닷없이 네가 찾아왔다. 너, 매일 나를 찾아오는, 내가 쓴 소설 속 소설의 내용을 들려주는, 사랑과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청년의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가까워진 은이. 아니, 은이일리도 없고, 은이가 아닐 리도 없는 이름 없는 존재.
네가 준 이력서에는 이름이 없었다. 카페 문을 밀고 들어오는 네 모습을 봤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 했지만 이력서를 보고 나서야 나는 네가 ‘내가 쓴 것’이라고 확신했다. 백지에 가까운 이력서를 보고 아무렇게나 질문을 해도 내 말이 다 맞다는 듯 대답하는 천진한 너의 모습은 연민을 자극했다. 그런 네게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겼고, 너는 내가 쓴 은이의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들려주기 시작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새롭게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은이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내가 쓴 것이 아닌 네가 쓴 것이 되었다는 것을. 내가 그려온 네가 이제는 나를 포함한 이 세계를 새롭게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 말이다. 그건 내가 쓴 것과 같은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네가 들려주는 변주곡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비워놨던 네 이름을 이제는 제대로 채워 넣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이가 생전에 갖고 싶어 했던, 내게 남은 유일한 것, 나의 이름. 내일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면 너는 비로소 완성되고, 나의 사랑은 완결될 것이다.
(엔드 체인지: 테니스 경기에서 한 세트의 경기가 끝난 후 서로 코트를 바꾸면서 경기를 진행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