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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Oct 16. 2024

40. 아퀴나스 신부의 다이어트를 돕다.


은이는 수호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아퀴나스 신부는 조문을 다녀왔다고 전했다. 수호는 죽기 전, 아마도 내게 문자를 보낸 직후, 휴대폰을 박살 내버렸다고 했다. 아니,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고 했던가? 경찰에서 휴대폰을 복구하면 그가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낸 대상이 은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참고인 조사를 이유로 자신을 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은이는 은근히 경찰이 부르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문자를 보여줘야지. 과연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그런 것들을 상상하면 아퀴나스 신부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방적인 관계였죠. 제가 보기에는 그랬어요.’ 이렇게 대답하며 신부님을 보호하리라.


수호는 부인과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고, 가정 불화로 인한 오랜 우울증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단순 종결되었다고 아퀴나스 신부가 전해주었다. 휴대폰을 파쇄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경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문자가 전달될 것을 은근히 바랐지만 결국 수호의 문자를 아퀴나스에게 전하는 일은 온전히 은이의 몫이 되었다. 은이는 그 문자를 아퀴나스 신부에게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제법 오래 고민했다. 수호의 죽음 직후에는 아퀴나스 신부의 충격이 너무 커 보여서 수호의 문자까지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미적거리며 몇 달이나 지난 후에야 은이는 아퀴나스 신부에게 문자를 보여줘야겠다 마음먹었다.


“저기, 신부님, 실은 말해야 되는데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요.” 은이는 카페의 맞은편에 앉아 디저트를 포크로 크게 잘라 찍고 있는 아퀴나스 신부에게 말했다. 아퀴나스 신부는 포크를 잠시 멈추고 눈을 들어 은이의 얼굴을 보고는 이내 다시 포크로 찍은 케이크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한 입 가득 넣은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아퀴나스 신부가 대답했다.

“말씀하시죠.”

“신부님 요즘 살쪘어요.”

“아.” 아퀴나스 신부가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힘 없이 접시에 떨구었다.

“스트레스를 단 거로 풀면 안 돼요.” 은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게 잘 안 돼요. 하지만 좋은 지적이었어요.” 아퀴나스 신부가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확실히 막 입국했을 때에 비해 뱃살이 꽤나 두둑해 보였다. 그 모습은 제법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이런 녀석에게, 아니 신부님에게, 수호의 문자를 보여줘도 되는 것일까? 은이는 다시 갈등했다.

“좋아요. 말하지 않은 게 또 하나 있어요.” 은이가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아퀴나스 신부가 팔로 뱃살을 감췄다. “또 뭐죠?”

“실은 수호가 죽던 날 내게 문자를 하나 보냈어요.” 은이가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조심스럽게 말하고는 아퀴나스 신부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눈을 몇 번 껌벅이고는 시선을 다른 곳에 향하고 뭔가 생각하더니 물었다.

“어떤 문자죠?”

“보시겠어요?”

은이가 휴대폰을 꺼내 저장해 놓은 문자를 보여줬다. 아퀴나스 신부는 큰 표정 변화 없이 문자를 가만 보고 있었다. 말없이 문자만 몇 분을 들여다보던 아퀴나스 신부가 은이에게 휴대폰을 돌려줬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눈만 껌벅이며 서로를 보고 있었다. 은이가 그렇듯 아퀴나스 신부 역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의 표정이었다. ‘그렇지, 이런 문자를 보고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은이가 한숨을 조심스럽게 쉬었다.

“그 문자는… ” 아퀴나스 신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세상을 뜨기 직전에 보낸 것 같네요? 시간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수호의 죽음을 알리려고 전화를 했을 때… ”

“몰랐어요. 밥 하느라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신부님 전화받고서야 확인했어요.”

“그렇군요.”

“그래요.”

“그… 내용이 좀 이상한 것 같죠?”

“글쎄요, 뭐 저야 모르죠. 알고 싶지도 않고.”

“어떤… 생각을 할 수도 있을 만한 문자이겠지만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아퀴나스 신부가 약간 머뭇거리며 에둘러 말했다.

“어떤 생각 같은 것 안 했어요. 그냥 전해 달라고 부탁해서 전한 것뿐이에요.”

아퀴나스 신부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케이크가 반 이상 남아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손대지 않았다. 식욕을 잃은 모양이었다. ‘최소한 그의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겠군.’ 은이는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은이와 아퀴나스 신부는 이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않게 되었다. 딱히 무슨 이유라든가 그런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연락하는 빈도가 서서히 줄어갔다. ‘대체 왜일까?’ 은이는 가끔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는 했다. 한때 그들-어쩌면 수호의 일방적인 감정이었을지 모르겠지만-의 관계를 내심 응원한 적도 있지만 이제 와서 굳이 그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아퀴나스가 성직자가 된 후에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성직자라는 신분이 주는 그 적당한 거리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은이는 잘 알고 있었다. 아퀴나스 신부와 비밀을 공유하는 일은 그 거리감을 좁히는 일에 속했고, 은이는 정말이지 그러기를 원치 않았다. 어쩌면 사제복에 진짜로 열광한 것은 아퀴나스가 아닌 은이 자신이었을 것이다. 은이는 진심으로, 옷의 상징적인 두께가 만들어내는 거리감이 둘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지구의 대기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그들이 연락을 완전히 단절한 것은 아니었다. 아퀴나스 신부는 수호의 추모일을 자기 멋대로 정하고는 그날 수호를 찾아가자고 은이에게 연락을 했다. 추모일은 그들이 파리에 가서 테니스 경기를 본 날이었다. ‘이 신부님 역시 제정신은 아니야… ’ 은이는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그와 함께 수호의 무덤을 찾았다. 수호를 찾을 때면 아퀴나스 신부는 와인을 한 병 들고 왔고, 은이는 꽃다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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