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 Jan 22. 2020

페미니스트 여전사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이 영화는 공포영화입니다. <툴리>


Intro: 여성이 삼킨 '선악 지식의 열매', 페미니즘


최근에 유발 하라리 박사의 <사피엔스>를 읽었습니다. 인상 깊은 책이었어요. 제레미 다이아몬드 박사의 <총, 균, 쇠>와 흡사한 구성 방식이지만 또 새로운 시각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책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구절은 '행복'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사피엔스는 이제 원시 시대처럼 맹수나 굶주림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도 않고, 중세시대에 비하면 훨씬 적은 집안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세의 우리가 과연 그때보다 절대적으로 더 행복해졌다 말할 수 있을까요? 뭐, 하라리 박사의 결론은 '전혀 아닐 거다'였습니다. 저도 동의해요. 인간은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의 한계치가 있어서, 어떤 사람이 펜트하우스를 구매하며 10의 행복을 느끼는데 다른 사람은 움막을 지어놓고 10의 행복을 느끼거든요.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할수록 행복의 역치는 계속 높아만 지는 법입니다.



예전의 여성들은 그랬습니다. 이게 힘들고 고된 건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까. 시집살이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고, 명절마다 제사로 중노동을 하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집을 정리하는 것도 그냥 여자가 하는 일이었죠. 저희 어머니께 물어보잖아요? 그럼 '왜 요즘은 그렇게들 엄살인지 모르겠다. 애 키우는 게 뭐 그렇게 힘들다고.'라고 말씀하세요. 본인은 그것 보다도 훨씬 힘들었던 일이 많으셨겠죠.


그러나 '페미니즘'의 대두로 이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거예요. 새벽에 깨어 아이를 돌보는 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육아를 하는 엄마도 숨 쉴 틈이 필요하고, 엄마도 정신적인 케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사실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면 그냥 관성처럼 했을 텐데, (그리고 아마도 50대가 되어 혼란을 겪었을 텐데) 이게 부당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한 거죠.


쳇,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출처: 강철의 연금술사


선악과를 삼킨 겁니다. 이걸 알게 된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어요. 물론 페미니즘이 양성평등을 이끌어 낸다고 해서, 여성들이 이전 세대의 여성들보다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때는 그때의 행복이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여권 신장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 불행해지긴 할 겁니다. 진실을 알아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남성들로서는 날벼락이죠. 이전에도 이렇게 괜찮게 살고 있었는데, 괜히 페미니즘이 나타나서 날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육아의 의무 건 집안일이건 공평하게 나눠야 하고, 시댁에서의 간섭이 있으면 큰일 나죠. 직장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맞춰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부족하다네요. 어디까지 맞춰줘야 할까요?



남성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법


맞춰준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남성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려면 딱 두 가지만 있으면 돼요. 이해와 공감.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그 삶에 공감하면 맞춰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공평해 지게 됩니다. 그것도 안 되는 인간이라고요? 그건 뭐, 사이코패스 거나 결혼 잘못하신 거죠. 본인의 안목을 한탄하세요(...)


솔직히, 예전 <82년생 김지영>을 리뷰할 때도 가장 아쉬운 지점이 이것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에피소드들은 실제로 겪어왔던 여성들은 쉽게 공감하지만, 그 삶을 겪어내지 못한 남성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지만, 좀 아쉽다고 평을 남겼던 기억이 나요.


[김지영] 이 영화를 보자는 여친은 '손절' 하라고?


오늘 다룰 영화, <툴리>는 남성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입니다. 영화는 출산과 육아를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었어요. 영화는 시작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공포스러워집니다. 마를로(샤를리즈 테론)가 두 아이를 키우며 만삭의 모습으로 나오거든요. 무섭죠?


영화 <매드 퓨리오사>에서 주연을 맡은 페미니스트 여전사, 샤를리즈 테론이   출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잔짜잔! 23kg 찌운 완벽한 애엄마로 변신했습니다. 공포 아닌가요?  출처: 툴리


[매드맥스]  매드맥스는 페미니즘 영화일까?



Scene #1, 보살핌이 필요한 건 아기만이 아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두 아이중 하나, 조나는 자폐증세도 보이고 있습니다. 가벼운 자폐 증세라 충분히 아이의 눈높이에서 접근하면 증상이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세요. 애 셋 키우는 엄마가 제정신일 리가 있나요? 신경이 곤두서 있는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나는 엄마 속을 박박 긁어댑니다. 그때, 셋째 미아가 태어나죠.


감독은 이 지점에서 편집 방법을 바꿉니다. 일상의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 아주 짧은 숏들을 반복하는 건데요. 아이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깨고, 불을 켜고, 기저귀를 갈고, 모유수유를 하며 아이를 달래고, 아침에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리드미컬하게 편집합니다. 관객들은 아마 이 장면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낄 거예요. 대런 애러노브스키의 작품, <레퀴엠>에서 마약중독을 표현할 때 썼던 편집과 매우 흡사하거든요. <레퀴엠>을 본 관객들도 이 영화는 마약 중독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마약 중독을 체험하게 한다라고 했었죠. <툴리>도 같은 기법으로 육아의 공포를 체험시킵니다.


각 컷에는 약 1초 정도가 할애됩니다.  출처: 툴리


마를로가 계속되는 스트레스로 미칠 지경이 되었을 때, 마를로의 오빠가 야간 보모, 툴리(메켄지 데이비스)를 불러줍니다. <마션>에서 민디 박을 맡았던 배우네요. 툴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마를로의 집에 스며들어와 자신의 임무를 밝힙니다.


엄마를 돌보러 왔다는 툴리.  출처: 툴리


여기서 우리는 남편의 역할에 한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에 따른 여성의 상실감을 다룬 영화들을 최근 많이 다뤘었는데요, 그중 특별히 기억나는 남편은 <결혼 이야기>의 찰리, <82년생 김지영>의 대현 같은 남편들이었어요. 분명히 '비교적 괜찮은' 남편이고, 자신도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은 있지만 겉돌면서 '도와주는'남자의 포지션을 잡은 남자들. 하지만 <툴리>의 남편 드류(론 리빙스턴)는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갑니다. (더 현실적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회사일 때문에 바쁘다곤 하지만 집에 와서 하는 일은 좀비 죽이기 게임이고, 아이가 울어도 한 번도 내려가 달래주지 않습니다. 말로만 괜찮냐고 물어보는 정도예요.


그래도 자기가 분담한 업무(육아의 일부분)는 충실하게 하고 있긴 하죠. 문제는, 육아 전체가 나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 아주 일부분, 자기가 배정받은 것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한단 겁니다. 자긴 분담한 육아 업무를 다 끝냈고, 충분히 육아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공평하게 나눈 게 아니죠. 하지만 그게 과연 드류가 나쁜 사람이어서 일까요? 드류는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마를로의 삶을 자신이 경험해 본 것이 아니니 모르는 거예요. 아마 드류도 <툴리>를 보았다면 깜짝 놀라고 변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Scene #2, 치료가 필요한 건 가족 전체


툴리는 그렇게 혜성처럼 등장해서 가족을 구원합니다. 아기를 돌보고, 엄마를 위로해요. 그녀에게 필요했던  실제적인 도움, 그리고 다정한 말 한마디까지. 그리고 가족들에게까지 관심을 보이죠. 마를로는 딸이 사춘기에 접어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와, 아들 조나의 자폐 증상에 대한 이야기. 드류와의 관계까지도 툴리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런 마를로에게 툴리가 말하네요.


26살이 이렇게 현명해도 되는 겁니까?  출처: 툴리


과연, 툴리는 엄마를 통해 가족 모두를 고칠 생각입니다. 먼저 그녀에게 여유를 찾아줘야죠. 마를로는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며, 좋은 엄마들은 컵케이크를 구워서 학교에 가져가고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고 하는데 자신은 그러기에 너무 지쳤다고 합니다. 툴리는 마를로를 대신해서 컵케이크를 구워놓고, 그녀가 여유를 찾고 선생님들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죠.


조나는 특수학교로 가서 더 '적합한'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게 되고, 마를로가 긍정적으로 변하니 딸과 긍정적인 대화도 가능해집니다. 엄마 한 사람을 치료했을 뿐인데, 가족 전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일종의 결합 같은 것인데, 구성원 각자가 하나의 고리를 걸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중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가족이 해체되는데,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가 엄마라는 포지션인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자신의 꿈이나 생활은 잃어버렸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살지 못하고 누구의 엄마가 되어버린 삶. 그 고리가 견고해지면 가정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게 마련입니다. 마를로가 해내는 이 놀라운 일들을 보세요. 별거 아닌 듯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족을 치유하고 있어요. 툴리는 이번 미션도 훌륭하게 수행해 냅니다.



Scene #3, 섹스가 사라진 이유


툴리가 마지막으로 치료해야 할 대상은 마를로의 남편, 드류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감지했거든요. 툴리가 마를로에게 묻습니다.


그렇지, 무슨 우디르도 아니고.  출처: 툴리


많은 가정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합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저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도 등장했던 에피소드이기도 하고,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섹스>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죠. 한번 볼까요?


특히 근친상간의 금기가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다시 등장하게 될 가능성은 자식을 몇 명쯤 낳은 후부터 급격히 증가한다. 그전까지는 젊음, 감각적인 패션, 나이트클럽, 해외여행, 알코올 같은 천연 최음제들 덕분에, 연인을 선택하는 무의식적인 기준인 부모의 원형이 상기되지 않도록 잘 방어해왔다. 하지만 이런 방어막들은 집 안에 유모차가 놓이는 순간,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여전히 내가 아내(혹은 남편)의 부모가 아님을 의식하지만, 이런 의식은 날마다 하루의 대부분을 '엄마'나 '아빠'의 역할을 하면서 보내다 보면 양쪽 배우자 모두의 무의식 속에서 점점 허물어지기 십상이다.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섹스>에서 발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역할극이 될 수도 있고, 일상에서 벗어난 호텔에서의 하룻밤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그것보다 조금 더 익스트림한 시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긴 하지만 이 부분은 자체 심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구해서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아이를 하나도 낳지 않은 몸이구나.  출처: 툴리



영화 <툴리>에는 가슴 아픈 장면들이 참 많습니다. 뭔가 먹먹하고 씁쓸한. 조깅을 하다 만난 젊은 여자아이가 자신을 두려움과 뭔지 모를 경멸이 섞인 듯한 눈초리로 보고 떠나는 것이나, 카페에서 만난 할머니가 '디카페인 커피도 카페인이 있다'며 커피를 마시는 임산부 마를로를 한심하다는 듯 보고 떠나는 장면 같은.


영화 전체가 하나의 공포영화 같았습니다. 감성이 너무 섬세했고요. 감독이 누구라고요? 제이슨 라이트맨? <주노>와 <인 디 에어>의? 완성도가 이 정도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군요. 역시 영화는 감독을 보고 골라야 합니다.


<툴리>는 두말할 필요 없는 명작입니다. 재미와 흡입력, 메시지 모두 만점이에요. 혹시, 이 영화 놓친 분이 계시다면 지금 관람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 이혼하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