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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07. 2024

시식회(詩食會)에 초대합니다.

그녀가 계속 나와요. 심지아


상자들   


        

심지아


온갖 크기의 겨울이었다


상자를 따라 다른 겨울이 이어졌다


상자와 상자 사이로 빗자루처럼 문장들이 지나갔다


상자의 속도에 맞춰 걸을 수가 없구나


걸음을 잃지 않게 걸음을 치료 없이 그대로 둔다


상자는 상자의 위치를 벗어난다


위치로 가서 위치를 획득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은 손을 흔들어 위치를 들킨다


위치가 어디쯤일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장소다


상자에게는 서두름이 없고 눈꺼풀이 없다


상자는 눈을 붙일 수가 없다


없다 라는 말은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단어다


상자를 옮기려면


상자를 앞질러야 하는데


풍부한 세계가 자꾸만 나를 차지한다


상자의 속도에 맞춰 걸을 수가 없다


[출처] 신발의 눈을 꼭 털어주세요 문학과 지성사. 2023.05


시식평

아주 간단한 재료의 레시피는 말로는 할 수 없는 한 꼬집이나 적당한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 앞 마른오징어를 물에 불려 아내는 가위로 결 반대 방향대로 오징어 손질을 끝내면 남편은 일회용 장갑으로 밀가루 반죽을 입혀 뜨거운 기름 솥 안으로 오징어튀김을 튀겨냈다.

그렇게 얇고 자극적이지도 않으며 고소함을 오래 간직한 음식을 떠올릴 수 없다. 너무나 맑아 간장인지 물인지도 구분 못 할 양념장에 찍어 먹던 며칠이 지나도 기억나는 고소함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정비사업으로 사라져 버린 포장마차가 있던 자리엔 프랜차이즈 도넛 가게가 들어섰지만 어떤 시는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소비되곤 한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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