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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Nov 03. 2024

시식회(詩食會)에 초대합니다.

겨울 바다를 걸어요 김승일

유리해변   


김승일      



같이 유리 깔던 여자는 어제 해변에서 눈이 맞은 어떤 남자와 밤만 되면 어디로 가 눈이 맞은 남자의 앞에 사랑이란 단어를 꺼내 보였다 여자는 남자에게 너를   


사랑해   


그런 말을 할 줄도 알았구나 너 이 밤 나는 바닷가의 모래 시장에 서서 나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모래 속에 섞고 있다 하는 일이다 자루에 든 다양하게 깨진 것들을 해변 위에 뿌리다가 지쳐   


피곤해   


거기 누워 꿈을 꾸면 못 일어나면 나는 내가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 꿈속에서 해변 위에서 그 사람은 깨어난다 여긴 어딜까 그 사람은 맨발이다 걸을 것이다 발에 아픈 유리 조각 수십   


조각이   


박혀 피가 흘러 얘기 들은 적 있어 유독 특히 아름다운 해변만 골라 유리를 깔고 가는 남녀 이야기 공감할 수 없는 얘기 어째서 여기 이 해변이 유독 특히 아름답나요?   


순례를   


떠난 거야 남녀 한 쌍이 유리를 깔고 떠난 해변들 그는 이해하고 싶은 거야 뭐가 그렇게 아름답고 특별한지 경이로운지 수많은 시인들이 관광객들이 밑창이 잘 두꺼운 아주   


무거운   


신발로 갈아 신고 해변에 서서 서로에게 동의한다 참 아름답지? 사상이 떠오르지? 참 경의롭지? 여자는 남자에게 넌 아름다워 해변에서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유리해변   


모래사장 내 꿈속에서 그 사람은 친구 없는 사람이구나 그 사람은 가족 없는 사람이구나 그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이해를 한다   


이해를   


해야 한다 유리해변을 이해하고 싶은 그는 유리를 깔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 아픈 것들을 모래 속에 섞고 있다 하는 일이다 온 몸에 수십개의 유리조각이 박힌 채로 나는 여기 해변에 누워 피를 철철   


흘리면서   


잠에서 깨어 너무 많이 박혔다고 생각하였다 몸에 박힌 불투명한 이 유리들은 그 여자와 내가 이제 깔아놓은 것 어제 내가 너와 여기 깔아놓은 것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꿈 속의 일들   


잠에서 깨어 너무 많이 박혔다고 생각하였다 몸에 박힌 불투명한 이 유리들은 그 여자와 내가 어제 깔아놓은 것 어제 내가 너와 여기 깔아놓은 것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꿈 속의 일들   


꿈에서도   


나는 했다 유리 까는 일 꿈에서는 혼자 했다 유리 까는 일 조금 있다 어디 갔던 당신이 오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아름답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사랑이란 일 꿈속의 일 조금 있다 당신이 와서   


너   


어째서 온 몸에다 피칠갑했어? 뭘 했길래 온통 몸에 유리가 박혀? 빨리 씻어. 씻겨줄게. 울먹이면서 끔찍해 끔찍하단 말만 하였다 살갗이 바닷물에 닿아서   


쓰려?   


끔찍해 네가 눈을 질끔 감고서 끔찍하단 말만 계속 반복할 때에 그건 내가 이해하는 유일한 단어 해변에 유리 까는 어떤 사람은   


이해했다   


나는 가끔 이해받았다   


[출처] 문학과 지성사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2019.


시식평    

너는 가끔 너의 닫힌 부엌으로 초대해 처음으로 생각한 레시피라며 냄비를 데우고 버터를 녹이고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들을 마른 접시에 내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릇 바닥의 양념을 깨끗이 닦아내곤 웃어주었다.    

그것은 지독히 행복한 일이었으며 나는 늘 식탁을 두드리며 박수를 보냈었다.

너는 최고의 상상력으로 식탁을 꾸밀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나는 그 상상력으로 허기가 진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도 기억해내지 못하면서.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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