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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Oct 31. 2024

시식회(詩食會)에 초대합니다.

체온보다 따스한 이영주

낭만적인 자리


이영주    


 

그는 소파에 앉아 있다. 길고 아름다운 다리를 접고 있다. 나는 가만히 본다. 나는 서 있고. 이곳은 지하인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그는 지하가 되었다. 어두우면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둠이 동그란 형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을 깨려면 서야 한다. 나는 귀퉁이에 서 있다. 형태를 만져 볼 수 있을까. 나는 공기 중에 서 있다. 동그란 귓속에서 돌이 빠져나온다. 나는 어지럽게 서 있다. 지하를 지탱하는 힘. 그는 아름다운 자신의 다리를 자꾸만 부순다. 앉아서, 일어날 수가 없잖아. 다리에서 돌이 빠져나온다. 우리는 10년 만에 만났지. 그는 걷다가 돌아왔다. 걸어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귀퉁이에 내가 앉아 있었다. 이 곳은 얼마나 걸어야 만날 수 있는 거지. 그의 다리에서 생생한 안내가 피어오른다. 그가 뿌린 흙 위에 나는 서있다. 이곳은 익숙하고 정겨운 냄새가 난다. 일어나기 전에 잠깐 동안 그는 앉아 있었는데, 동그랗게 어두워지는 자리였다. 내가 어지러워 돌처럼 흘러 나가는 자리. 소파에 앉아서 그는 흩어진 잔해를 본다. 아무리 오래 걸어도 집이라는 집은 없다. 고향이 없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바치지


출처>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문학과 지성사 2019.09.


시식평


어제 먹은 음식들을 기억해 내는 일이 가물거릴 때가 있고. 언제 먹었는지 기억해 낼 수 없는 음식들은 또렷해지곤 해


가늘게 채선 무를 밥 위에 얹은 음식을 먹으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투박한 밥그릇에 밥이 있고 녹아내리고 있는 폭설 같은 무가 식어가느라 김을 뿜어내고 있었지. 양념장으로 비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자 눈이 오면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받아먹던 내가 군소리 없이 밥그릇을 다 비워냈어.

같이 어떤 반찬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폭설이 내리던 밤을 기억하듯이

계속 떠올라. 멈추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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