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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Oct 24. 2024

시식회(詩食會)를 시작합니다.

불꽃놀이를 하는 입술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고선경          



너에게는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난다  

   

투룸 신축 보증금 이천에 월세 구십, 어떻게 해야 너를 웃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두 시간 동안의 폭우, 일주일 동안의 아침, 유리병 속 무한히 터지는 기포     


현관에 놓인 신발의 구겨진 뒤축이 웃는 표정을 닮았어 너는 침대에 누워 있고 바람이 많이 부는 청보리밭에 가고 싶다 멸종된 기억을 가지고 싶다 너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릴 때 나는 사라진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아침의 어둠이 이젠 익숙해

그래도 같이 씻을까

산책을 갈까     


세상에서 가장 느린 산책로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네 손의 아이스크림과 내 손의 소다수는 맛이 다르다 너의 마음은 무성하고 청보리밭의 청보리가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처럼 쉬워 

    

무한히 터지는 기포

나는 너의 숨을 만져보고 싶다     


너는 머나먼 생각처럼 슬프거나 황홀한 곳까지 나를 데려갈 수 있다 이렇게 차가운 빛의 입자는 처음이야 아이스크림 속에도 휴양지가 있는 것 같아 매일 집에서 너를 보는데도      


놀랍지

세상에 없는 농담 같아          


마른 손 위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녹는 

이상한 열매가 사랑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느린 목욕시간

투명해지는 몸들이 자국을 가르치지     


사라지지 않는 생각이 나를 쓰다듬고 있어

생활이라는 건 감각일까 노력일까     


너와는 어디에서도 쉴 수 없어 미리 장소를 지워두었지 날씨를 오려두었지 향기만 남겨두었지 욕실용 슬리퍼가 바닥을 끄는 소리 어둠 속에 잠겨가고 우리는 우리의 미끄러운 윤곽을 읽는 데 몰두한다     


시간이 잼처럼 졸고 나는 불붙은 기억이 되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숨

뼈와 살이 좁혀진다     

 

출처> 문학동네 202. 2023.     


시식평>     

원리는 간단해 가압상태에서 설탕과 결합된 이산화탄소 가스가 사탕에 주입됩니다. 입안의 습기나 체온에 노출되면 이산화탄소 가스가 압력을 받아 터져 나오면서 ‘팝(POP)’하는 소리가 나는 거지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거야 혼자였다면 입을 한껏 벌리고 거울 앞으로 달려가 입안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즐겼을 거야 혼자서 입을 다물고 킥킥거리며 웃었어.      


행간에서 빠져나온 화약이 불꽃이 되어 온몸을 빠져나가 나가고 있는 거야.     


안쓰럽고 사랑스럽게.     

지금 당신 입안에서 터지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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