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있습니다.
온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흡사 너무 긴 도화선을 바닥에 깔아 놓아 선을 타고 도는 불꽃을 바라봅니다. 지쳐서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책을 뒤적입니다. 매번 무언가를 해 먹을까 고민을 하다 냉장고를 뒤적여 봅니다.
시간을 먹고 있는 중이었어요. 낮엔 점심을 먹고 밤이 되기 전 저녁을 먹는 거죠.
스스로 무언가를 먹이는 행위는 지루하고 권태롭기만 합니다. 한동안 무엇인가 끊임없이 먹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매일 다른 것을 먹고 싶었고 양상추잎을 뜯어 물에 씻어 물기를 뺍니다. 오이를 썰고 양배추는 채칼에 사라질 때까지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소스를 골라 양념해 둔 등심은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 구워 작게 잘라 익혀내고 큰 접시에 담아 먹곤 하였습니다.
음식을 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간혹 나는 음식을 다 먹고 접시를 닦고 포크와 긴 나무젓가락과 스푼과 마지막으로 키친타월로 닦아낸 팬을 엎어 두고 마르기를 기다리며 산책을 나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냉동 딸기와 블루베리를 갈아 우유에 섞어 커다란 유리잔에 담아 저녁을 해 먹었습니다.
어느 날. 혼자 먹는 저녁이 너무나 초라하다는 걸 느낀 뒤로 그런 저녁을 멈췄습니다.
나는 아직도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설거지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혼자 음식을 먹는 것은 원치 않아 좋아하는 것도 쉽사리 포기하게 돼버렸죠.
밤은 깊어 가고 있습니다.
산책을 다녀와야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바깥공기가 차가운 귓속말을 계속합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귀는 흥분해서가 아닙니다.
내일은 안개가 피어오른 아침이면 좋겠습니다.
창밖으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로등 불빛과 자동차 불빛도 모두 삼켜버린 안개만 보입니다.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 건지, 아직도 안개가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안개는 아주 먼 곳에만 있습니다. 그 먼 곳에 다다르면 다시 사물이 명확해집니다.
다다르고 다다르다 도화선 끝을 찾지 못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