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빛을 가늠하며 공중에 머물러.
어떤 날은 문장이 입술처럼 부풀어 오르고, 어떤 날은 아무리 불어도 움츠린 채 돌처럼 굳어 있다. 글쓰기는 공기와 불과 손끝의 기술로 이루어진 핸드 블로운 글라스 같다. 형태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손바닥은 뜨겁고, 눈은 뿌옇게 흐려진다.
처음엔 글이란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조형적이고, 계획적이며, 지시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것은 틀린 전제였다. 글쓰기는 계획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녹아내린 유리가 무심히 늘어지듯, 문장의 흐름도 예측을 배반한다. 순간의 호흡, 손목의 떨림, 무심한 실수가 리듬을 좌우한다.
글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앞에서 자라난다. 할 수 있는 것은 쓰러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 일, 재빨리 숨을 불어넣어 형태를 붙잡는 일. 유리공예가는 불어넣는 공기의 온도와 힘을 절묘하게 조절한다. 너무 강하면 깨지고, 너무 약하면 죽은 덩어리가 된다. 욕심은 문장을 부순다. 두려움은 문장을 얼어붙게 한다.
핸드 블로운 글라스에는 작은 기포들이 박혀 있다. 투명한 표면 속에 떠다니는 얼룩진 점들. 그것은 결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유리임을 증명하는 흔적이다. 문장 속에는 실수와 어색함이 섞여 있다. 완벽을 추구할수록 글은 부자연스러워진다. 이상한 비문조차 문장을 살아 있게 한다. 때때로 다 이해할 수 없는 고집스러운 기포들이 떠다닌다. 그것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믿는 쪽이 더 정직한 태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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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문장이 손끝을 타고 정확히 불꽃으로 들어간다. 놀라울 만큼 순조로운 날. 단어들이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고, 문장이 부드럽게 곡선을 따라 늘어난다. 밀어붙이지 않아도 되는 날, 마치 오래전부터 그 형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반짝이며 완성되는 문장. 유리의 결이, 온기의 흐름이, 손목의 리듬이 기이하게 일치하는 날. 공기가 열을 지나며 맺히는 그 완벽한 곡선 속에서, 잠시 눈을 감는다. 언어가 몸을 가진다. 그 순간만으로도 며칠의 실패는 충분히 보상된다.
물론, 살면서 몇 번은 글을 내려놓았다. 녹지 않는 덩어리, 휘지 않는 유리를 붙잡고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입술이 갈라지고 손끝이 아파도 아무런 형태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시간. 그런 밤에는 유리공방의 장인들이 떠오른다. 하루에도 수십 번 실패하고, 깨진 파편을 쓸어내고, 다시 불 앞에 서는 사람들. 그들은 유리를 '성공시키려' 하지 않는다. 다만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이 나오기까지, 수백 번의 실패가 있다. 다만 실패는 기록되지 않을 뿐이다. 책상 서랍에 초고가 쌓이고, 삭제된 문장들이 컴퓨터 어딘가를 떠돌아다닌다. 잊힌 문장들. 실패한 문장이 없었다면, 성공한 문장도 없었을 것이다. 부서지고 깨지고 일그러진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글을 만든다.
어느 날, 사무실에 놓인 핸드 블로운 글라스를 바라보다가 눈이 부셨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았다. 곡선은 삐뚤었고, 색은 미묘하게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그 안에는 시간을 견딘 흔적, 손의 떨림, 심장의 리듬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글도 마찬가지다. 매끈하고 균일한 문장이 아니라, 미세하게 떨리고 불규칙한 리듬을 가진 문장.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글이다.
때로는 너무 얇아서 금방 깨질 것 같은 글이 있다. 읽는 이에게 닿기도 전에, 손에 쥐는 순간 사라질 것만 같은 글. 그런 글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더 깊이 숨을 불어넣는다. 부드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그 문장이 투명한 빛을 받아 반짝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진다. 단단한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대할 때와는 다르다. 본능적으로 안다. 이 물건은 쉽게 깨어질 수 있다고, 그래서 소중하다고.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더듬어야 하는 글. 문장을 따라가다 문득 숨을 멈추게 되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글은 사람을 닮는다. 불 앞에서 녹아내리는 순간의 망설임, 한없이 부풀어 오르다 터져버리는 열망, 다시 손바닥에 얹혀 식어가는 허무까지. 모든 순간이 문장에 새겨진다. 망설인 자리에 글도 멈추고, 믿은 자리에 글도 빛난다. 그래서 글쓰기는 무섭다. 스스로를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유리처럼,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패하고 망가지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펜을 들고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언젠가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얇고 투명한 곡선을 쓰다듬듯 읽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주 작은 기포 하나에도 마음을 붙잡힐 수 있다면, 그 수많은 실패와 두려움은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천 개의 공장에서 찍어낸 유리가 있다. 모두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무늬. 하나하나 손으로 불어 만들어낸 유리는 저마다 다르다.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처럼 글을 쓸 수 없다. 오직 자기만의 불완전함, 자기만의 떨림으로만 쓸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아무리 숨을 불어넣어도 문장이 자라나지 않는다. 그런 날에는 불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직 형태를 가지지 않은 생각들이 천천히 녹아가는 시간을 견디는 것.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아도, 손끝에 남은 열기를 느끼는 것.
작은 불꽃 앞에 앉아 있다. 아직 식지 않은 마음을 두 손에 감싸 쥔 채, 조심스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투명한 기포가 공기 속을 떠도는 것을 바라보며, 다시 문장을 불어넣는다. 아주 천천히,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글쓰기는 핸드 블로운 글라스와 같다.
깨지기 쉽고, 실패하기 쉬운.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말로는 다 되지 않는 마음, 모양 없이 흩어진 생각들을 불 앞에 데려온다. 이 문장이 어디로 굽어질지, 언제 부러질지, 어떤 기포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만 나오는 무언가가 있다. 균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실수 위에 무늬가 생긴다. 그 조심스러운 완성, 투명하게 미완인 형태. 손끝에 남은 열, 한 문장의 온기. 단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느낀다면, 그 순간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몰랐던 형태가, 마침내 이 세상에 차갑게 놓이는 일.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