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일렁이는

느린 방향, 엇갈린 리듬, 떠다니는 문장들

by 적적

한 번도 오리배를 타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타 보았다면 그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 경험은 대개 아름답고, 약간은 어설프고, 조금은 웃기다.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인공의 새. 너무 현실적인 백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낭만. 연인은 그 안에서 마주 앉아, 두 다리를 양쪽 페달에 넣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속도를 맞춘다.


그들은 방향을 이야기한다. “조금 오른쪽으로 틀까?” “이제 좀 쉬어도 돼?” 페달은 맞추기 어렵고, 오리배는 원하는 만큼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때로는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호수 가운데서 멈춘다. 다리는 아프고, 얼굴엔 웃음이 남는다. 실상은 불협화음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데이트’라 부른다.



글쓰기를 떠올릴 때면, 이 장면이 따라온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늘 누군가와 오리배를 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면의 또 다른 존재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문장과, 어딘가에 남은 감정의 잔해와 나란히 앉아 페달을 밟는 일.



글을 쓰는 일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늘 누군가를 마주 보게 된다. 혹은 마주 보려 애쓴다. 과거의 자아이기도 하고, 이해받고 싶은 독자이기도 하며, 아직 언어로 옮기지 못한 감정이기도 하다. 오리배의 좌석처럼, 서로 다리를 껴안고 복잡하게 얽힌 채로 마주 앉는다.



방향은 좀처럼 같아지지 않는다. 한쪽은 왼쪽으로 돌고 싶어질 때, 다른 한쪽은 오른쪽으로 향하고, 문장은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언어는 옛 풍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을 쓰려했지만, 글은 자꾸 상처를 떠올린다. 기쁨을 적으려 했지만, 손끝엔 외로움이 묻어난다.



삶에서 무언가를 표현하려 할 때, 그 ‘무엇’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오히려 몸을 타고 흐르고, 도망치고, 때론 대신 써 내려간다. 그것이 글쓰기의 아이러니다. 문장을 만들지만, 문장은 사람을 해체한다. 진심이라 느끼는 순간조차, 그 진심은 누군가에게는 허위처럼 읽힌다.



삶을 설명하려는 무의식적 욕망. 감정은 흐르고, 시간은 쌓이는데, 그 사이에서 의미를 만들어야만 하는 존재. 마치 호수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것처럼, 의미의 페달을 밟는다.

의미란 결코 균형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울어진 순간, 엇갈린 리듬 속에 진짜 무언가가 숨어 있다. 방향을 잃었을 때, 가장 깊은 부분과 마주치게 된다. 몰랐던 목소리,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문장.

누군가는 글쓰기를 고독한 일이라 말하지만, 그 문장에는 한 줄을 더해야 한다. 글쓰기는 고독한 동시에 깊이 관계적인 일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말을 거는 일이며, 이해받지 못했던 이들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다. 아주 오래전, 마음을 남긴 사람에게 늦은 편지를 쓰는 일이기도 하다.



오리배를 탄 연인처럼, 언어라는 호수 위에서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서로 다른 리듬을 견딘다. 상대가 너무 빨리 달려도, 너무 늦어도, 일시적인 불균형을 감수하며 함께 있는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문장과 마음 사이의 엇박자를 견딘다.



어느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균형이 찾아온다. 한 문장이, 딱 맞는 감정과 만나는 순간. 아주 짧고, 정확한 이해의 시간. 그것은 바람이 멈춘 호수 위에서, 오리배가 방향을 잃지 않고 곧장 나아가는 감각과 비슷하다.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다시 페달은 엇갈리고, 방향은 흐트러진다. 그러나 바로 그 짧은 경험이 계속 페달 위에 머물게 한다. 그 몇 초의 일치를 위해, 다시 글을 쓰고, 다시 오리배에 오른다. 사랑을 할 때도 중심을 잡으려 애쓰고, 상대의 리듬에 맞추려 한다. 그러나 언제나 어긋난다. 그 어긋남을 아름답다 여기는 마음. 그게 사랑이다. 글도 마찬가지.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이어지는 호흡.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일 것이다. 어딘가에서 끊긴 말들을 다시 이어 붙이고, 말하지 못한 것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는 일. 그것은 고백이고, 질문이며, 때론 용서다. 우리는 매번 묻는다.



지금 이 문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누구와 이 문장을 타고 있는가.



대답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모든 움직임 속에서도, 결국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비록 한 바퀴 빙 돌아 제자리일지라도, 그 안에서 사람은 새로워진다.



오늘도 페달은 밟힌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이 느린 오리배에 오른다.

어쩌면 쓰고 있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방향'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단지 표현이 아니라, 구출의 시도였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말들을 시간의 물 위에 떠내려 보내는 일. 연인과 오리배를 타는 일처럼, 그것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아름답고, 피곤하면서도 근사하다.

한 사람이 너무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다른 한 사람은 힘이 빠진다. 한 사람이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 하면, 다른 한 사람은 떠나간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끝까지 같은 페달을 밟아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는 독자가 될 수도 있고, 과거의 자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들일 수도 있다.



어떤 날은, 오리배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햇빛이 너무 강하거나, 호수의 물빛이 지나치게 평온해서. 그러나 그러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타는 법을 잊었어도, 방향을 잃을 걸 알면서도, 다시 글을 쓰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과 닮았다. 이해되지 않아도 다시 하게 되는 일.

아주 가끔, 딱 한 번 방향이 맞을 때가 있다. 문장과 마음이 완벽한 리듬으로 움직이고, 오리배는 물살을 가르며 부드럽게 나아간다. 그 짧은 순간이 주는 기쁨은 오래간다. 마치 누군가와 눈빛을 나누며 미소 짓는 짧은 순간처럼.



오늘도 이 불완전한 동시성 속으로 몸이 던져진다. 문장과 나란히 앉은 오리배는 다시 물 위로 나아간다. 돌아서더라도, 멈추더라도,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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